유럽연합(EU)은 전 세계 ESG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다.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EU는 지속가능금융 액션플랜(2018), 유럽 그린딜(2019), 녹색분류체계 발표(2020), 유럽 기후법 채택(2021), 지속가능금융공시 실시(2021), 기업 지속가능성보고 지침(2021) 등 ESG 제도를 가장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EU는 ‘지속가능금융 액션 플랜’을 가장 먼저 수립하고 발표했다. 이 플랜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자본흐름 유도, △지속가능성 관련 이슈를 리스크 관리의 핵심에 반영, △금융의 투명성 및 장기주의 확산이라는 3대 축에 10대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권고안이 아닌 ESG 법·제도 패키지 정책이다. 녹색분류체계, 지속가능금융공시(SFDR), 그리고 기업 지속가능성보고 지침(CSRD) 등 EU의 ESG 관련 정책은 모두 이 액션 플랜의 10대 조항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녹색분류체계는 어떤 활동이 녹색경제 활동인지를 분류·판별하는 기준으로, EU는 2020년 7월 세계 최초로 법률을 발효하고 그린워싱 기업이나 금융상품·회사채 등을 선별해 환경친화적 투자를 지원한다. SFDR은 기관투자가의 지속가능성 관련 의무를 강화하는 법으로, 올해 3월부터 시행되었다. CSRD는 이미 시행 중인 비재무정보공시(NFRD)의 적용범위와 공시 수준을 더욱 강화한 개정안으로, 2022년에 채택해 2024년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EU의 ESG 법·제도는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지만 프랑스의 ‘에너지 전환법’에 따른 ESG 정보공개 의무 적용 결과는 향후의 성과를 짐작할 단서를 제공한다. 2015년 통과된 ‘에너지 전환법’은 상장기업, 은행, 투자기관 모두에 기후변화 관련 재무리스크를 연차보고서를 통해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시행 이후, 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유로지역의 금융기관들과 비교한 결과, 프랑스 기관투자가들이 화석에너지 회사에서 발행한 증권·채권·주식의 투자자금을 평균 39% 정도 줄였다. 약 280억 유로(약 38조 원)에 해당하는 자금이 재조정되었다.
EU의 이 같은 ESG 규제 강화는 EU 시장의 진입장벽이 그만큼 높아지고, EU 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로부터의 ESG 정보공개 요구가 증가하고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망 실사법1)과 SFDR은 EU의 ESG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공급망 유지도 어려워지고 EU 금융기관들로부터의 자금조달도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그러나 EU의 규제 강화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공급망 실사법이 시행되면 EU 기업의 공급망이 ESG 중심으로, 실사가 가능한 공급망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편중된 현재의 EU 공급망에 우리 기업들이 편입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EU 기준으로 ESG 데이터를 정밀하게 구축해 적극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언제든지 ESG 경영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ESG가 경쟁력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20일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행정명령 중 하나가 바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이다.
그의 행정부 경제팀에는 ESG 투자를 선도하고 있는 블랙록 출신들이 핵심 요직에 포진했다. 역대 최연소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인 브라이언 디스는 블랙록의 지속가능투자 최고책임자 출신이며 재무부 부장관과 부통령 경제자문도 블랙록 출신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1년 3월 상장기업들의 ESG 관련 공시 강화를 위해 규정 또는 지침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의 자율에 주로 맡겨왔던 미국에서도 의회가 나서 상장기업들의 ESG 정보공개 의무화를 위해 ‘ESG 정보공개 및 단순화법(The ESG Disclosure and Simplification Act)’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미국의 ESG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인종 간 형평성 추구, 노조 지지, 최저임금 인상, 산업안전 이슈에 대해서도 공개적 지지를 밝혔지만, 상대적으로 거버넌스(Governance)와 사회(Social) 이슈에 있어서 진전을 보여온 미국은 환경(Environment) 이슈를 우선하고 있다.
5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관련 금융리스크에 관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Climate-Related Financial Risk)’을 발표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백악관 기후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재무장관 및 관리예산실(OMB)장과 협의해 앞으로 120일 내에 기후 리스크를 공개하는 정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재무장관이 기후 관련 금융 위험을 어떻게 정책에 통합할 수 있는지에 관해 180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셋째, 노동부 장관은 180일 이내에 NEC 및 국가 기후 고민과 협의를 거쳐 연방정부 퇴직금에 관해 ESG 요소를 포함한 기후 관련 위험 요인을 담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한다.
ESG 투자에서 중시하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나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등에 따르면, 기업은 리더십과 거버넌스, 경영전략, 비즈니스 모델, 지표와 목표, 위험관리, 운영 및 성과, 이해관계자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또한 탄소중립(넷제로)을 향한 탄소발자국 추적은 이제 원재료, 제조과정, 배송과 폐기 등 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 전체가 바뀔 것을 요구하고 있다. ESG를 통해 경영활동을 변혁하려면 예산과 전담조직, 충분한 자원이 투입돼야 하는 것이다. ESG 투자, 특히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시하는 임팩트 투자가 기업경영의 변화를 돕고, 이에 더해 정부가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기업은 물론 사회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지난 4월 8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 계획에서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청정에너지 생산 인센티브로 대체하기로 했다. 풍력·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생산 및 첨단 배터리 등 에너지 저장장치 생산세액공제 및 투자세액공제를 10년 연장해 ‘클린 전기’ 생산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기관·산업계·학계에서도 새로운 글로벌 기업 평가개념인 ESG 도입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산업의 개방은 성숙한 발전 단계에 접어든 중국 경제 수준에서 새로운 발전 패턴을 구축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2018년 이후 중국은 일련의 금융산업 및 자본시장 개방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며 개방에 속도를 내는 추세다.
2021년은 중국의 제14차 5개년 발전 계획이 시작하는 해로, 중국이 고속성장 단계에서 품질 발전 단계로 진입하는 시작점이다. 경제의 고품질 발전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개방을 통해 글로벌 협력을 추진하고 전 세계 다양한 기업, 자금 주체가 들어와 경쟁함으로써 시장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중국은 외국 금융기관의 시장 접근을 완화하고, 외국인투자 네거티브 리스트를 폐기하는 등 금융 개방 정책을 실시했다. 2018년 이후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인 MSCI, FTSE 지수가 중국의 A주식(중국 내국인 전용 주식)을 평가 인덱스로 포함하면서, 중국시장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이 증가했으며 이 같은 추세로 인해 중국의 금융시장이 글로벌 자본을 원활히 흡수하기 위한 ESG 기준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 또한 커졌다.
ESG 개념이 먼저 도입된 선진국의 경우 민간 주도 상향식 발전과정을 거쳐왔다. 반면 중국은 최근의 금융산업 개방 기조에 따른 시대적 흐름을 타고, 또 중국 정부의 ‘2030년 탄소피크, 2060년 탄소중립’이라는 중장기 개발 기조에 맞춘 하향식 발전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ESG 개념이 도입된 것은 3여 년에 불과한 초기 단계로, 산업별 ESG 정보공시 도입 정도에는 차이가 있으며, 강제력과 실용성이 부족해 기업 또한 표면적인 정보량에만 집중하며 품질 면에 있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국 금융시장 개방과 시장 매력 상승으로 외국 금융의 투자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글로벌 기준에 맞춘 기업 정보공시 도입이 시급해졌다.
중국은 타국과 다른 개발 단계와 조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구의 ESG 평가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자국에 적합한 중국식 ESG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환경(E) 측면에서 서방국가는 화석에너지를 배제하지만, 중국은 석유석탄의 효율적인 사용을 장려한다. 또 사회적 책임(S)에서 해외는 ‘인권’ 등이 평가기준 지표로 널리 사용되나, 중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자국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ESG 평가 지표의 가중치 또한 외국과 동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ESG 글로벌 기준 도입은 향후로도 꾸준히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ESG 글로벌 기준 도입은 중국 금융시장의 원활한 글로벌 자금 조달로 이어져 자국의 자본 자원 배치에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금융 개방과 더불어 중국식 ESG가 발전해가는 양상을 분석해 우리 산업, 기업에 던지는 시사점을 도출해낼 시간이다.
올해 9월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주제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오는 11월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이 제출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이행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 ESG 정책에 큰 영향을 주는 국제기구 및 국제기관 중에서 세계 산업계와 금융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기구는 유엔(UN), 세계은행(WB), 유럽은행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대표적이다. 각 국제기구 성격에 따라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는데, 파리기후협약 수립은 대표적인 주도적 국제 정책이다. 반면 흐름을 만들기 위한 정책도 있다. 예를 들어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유엔이 설립에 관여한 책임투자원칙주도기구(PRI)는 2006년 출범 시 서명한 기업이 63개에서 올해 1월 3600곳 이상이 됐다. 간접적으로 미치는 자산 규모 영향만 지난해 기준 103조 달러(11경7,986조 원)가 넘는다. 책임투자라는 전 세계적 흐름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 돈을 직접 움직일 수는 없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PRI 대비 10분의 1 규모의 8조7000억 달러를 움직이지만 투자 권한, ESG를 접목한 상장지수펀드(ETF; Exchange-Traded Fund) 구성, ESG인덱스 선별, 액티브 상품 운용 등 PRI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영향력이 훨씬 크다.
유럽연합(EU)의 핵심 관심사인 녹색산업 이슈와 금융 이슈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배경에는 파리기후협약을 비롯해 EU, 미국 등 주요국의 그린뉴딜 정책이 있다. 그린딜로 가기 위해 막대한 녹색자원과 사회적 금융이 필요한데, 이를 ESG 채권과 펀드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으며 국제기구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자금흐름 촉진이다. 예를 들어 유엔 사무총장 주도로 세계 최대 투자은행 30곳이 공동으로 설립한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글로벌 투자자 연대(GISD)’ 역시 지난해 9월 공동성명을 통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 사회적 채권 발행 활성화가 중요하며, 이 채권들이 민간 국제금융기구인 ICMA(International Capital Market Association)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ICMA가 주도하는 ESG 채권(녹색채권·사회적채권·지속가능연계채권) 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올 들어 상반기 발행 기준으로 상위 10위권 국가에서만 이미 1700조 원을 넘어섰다. ESG를 통해 조성된 막대한 자금이 기후대응, 탄소저감을 위한 그린 금융과 코로나19 이후 사회를 재건할 사회적 재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도 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 ‘UN SDGs협회’ 역시 ICMA의 녹색채권원칙(GBP), 사회적채권원칙(SBP)의 옵서버 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ESG는 특히 유엔과 193개 회원국이 제정한 UN SDGs(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