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사진 한경DB
기업이 수립하고 실행하는 수많은 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쟁력 확보를 통한 지속가능성 증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 장기화 때문에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 다른 경영환경 변화와 달리, 코로나19 사태는 거의 모든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무적 성과가 초라한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결코 높을 수 없다. 재무적 성과가 탁월해도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로 대변되는 비재무적 성과가 낮은 기업 역시 지속가능성이 높을 수 없다. 이윤창출 과정에서 절차적 공정성과 사회적 정당성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은 이해관계자들과 장기적인 공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SG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ESG의 경영 내재화를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증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들은 금년 초부터 그런 움직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신년사에서부터 ESG에 관해 언급했고, ESG 위원회 신설, ESG 전문가 영입 등 다양한 형태로 ESG 내재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 부처에서도 ESG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ES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국회에서 ESG 포럼이 개최되기도 했다. 국내 미디어에서도 ESG 기사가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1) ESG 경영을 통한 기업의 지속가능성 증진은 단순히 해당 기업만이 고민할 이슈가 아니다. 협력업체, 투자자, 소비자, 지역사회, 구직자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산업경쟁력, 더 나아가서는 국가경쟁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경제구조상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최근 5년간 총 매출 중 해외 매출의 비중은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경우 약 61%이며, 매출 상위 5대 기업은 약 76%를 차지할 정도다. 따라서 ESG 경영의 성공적 안착을 통한 지속가능성 증진을 위해 ESG와 관련된 글로벌 경영환경의 특징이 통상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1)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 (BI GKINDS)’에 따르면, 국내 주요 미디어에서 다룬 ESG 관련 기사는 2012년 68건에 불과하던 것이 2020년 3,886건, 2021년 현재 1만6,244건으로 급증했다.
자료: 삼정KPMG 경제연구원
ESG 관련 글로벌 경영환경 특징 중 하나는, 주요 국가들이 산업정책을 통해 기업 차원의 이슈인 ESG 경영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정책은 특정 분야를 선택적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개입 또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성장을 위해 산업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정부 정책이다. 그동안 많은 국가에서 시행되어온 산업정책들은 다양한 대의명분이 있지만, 자국의 산업 보호라는 공통의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산업정책은 보호무역 강화라는 비난을 받으며 주변국과의 통상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이 있는 경우 비록 지금은 경쟁력이 없지만 향후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시도다. 경쟁 열위의 자국 산업을 대상으로 각종 정책을 시행해 적어도 경쟁상의 동등성(Parity)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최근 주요국의 ESG 관련 산업정책은 경쟁열위보다는 경쟁우위를 지닌 산업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현존하는 경쟁우위를 적극 활용해 추격자와의 격차를 더욱 넓히는 것에 주요 목적이 있다. 유럽의 그린 딜(EU Green Deal)이 대표적이다. 2050년까지 유럽연합(EU)을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기존 기후변화 정책과 환경정책을 확대한 정책 패키지다. 국가 간 탄소누출의 리스크를 억제하려는 취지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2)는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에 있어서 EU는 이미 많은 진척을 이루었다. 1990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성장으로 대변되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61% 증가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23% 감소했다. 영국도 경제성장과 탄소감축을 동시에 달성하는 탈동조화(Decoupling)에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2)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중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
자료: ‘TCFD가 한국기업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WWF)
EU 집행위는 지난 7월 14일 ‘핏 포 55(Fit for 55)’라는 입법 패키지를 통해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역량을 집중하지 않았거나 투자 여력 자체가 부족한 다른 나라, 특히 개도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관련 규제를 통해 보호무역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대(對)EU 수출 규모나 주력 산업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EU가 추진하고 있는 자연친화적 정책이 많은 기업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통상 패턴의 재편을 가져올 수 있다.
환경정책을 새로운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작됐다. 예를 들어,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 강국 중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총 30년간 3단계의 장기 산업정책, ‘중국제조 2025’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이 주도하고 정부는 유도한다’라는 방침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친환경 성장을 주요 목표의 하나로 선정했으며, ‘에너지 절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 분야가 10대 핵심사업에 포함되어 있다. 중국 제조업 분야의 저원가 비교우위가 현저히 약화되고 있고 환경보호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녹색제조’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기후변화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자 실존적 위협으로 판단, 환경보호라는 목표와 분야별 공약을 무역정책과 밀접히 연계하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019년 27.8%로 다른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독일 21.6%, 일본 20.8%, 이탈리아 16.6%, 미국 11.6%, 영국 9.6%)에 비해 여전히 높은 편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특히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의 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도 ESG를 더 이상 기업만의 이슈로 방임해서는 안 된다.
ESG와 관련된 글로벌 경영환경의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리딩 기업들의 다양한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글로벌 리딩 기업들은 이니셔티브(Initiative)라는 이름의 산업별 새로운 규범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대의명분이 가지고 있는 타당성 때문에 각종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기업들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그룹 혹은 비엘리트 그룹으로 양분돼 있다. RE1003)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이 환경 캠페인에 참여한 기업의 숫자가 2015년 51개에서 2021년 7월 현재 319개로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에너지 규제라는 새로운 진입·무역 장벽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도 RE100 참여 여부, 심지어 참여한 순서를 해당 기업의 차별화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BASF)는 올해 말까지 전체 제품 약 4만5,000개에 대해서 원료 구매부터 공장 출시까지 전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의 총량을 공개하기로 천명했다. 탄소배출의 구체적 현황을 제품별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화학산업 차원의 이니셔티브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리딩 기업들의 또 다른 역할은 협력업체에 대한 압력을 통해 해당 생태계의 ESG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가치사슬 관점에서 협력업체의 ESG 실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글로벌 리딩 기업들이 협력업체에까지 RE100 동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애플(Apple)은 전 세계 협력업체 110개 이상이 애플 제품 생산을 위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글로벌 리딩 기업들이 산업별 각종 새로운 규범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를 통해 생태계 전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은, 해당 기업들의 경제적 위상에서 찾을 수도 있다. 글로벌 리딩 기업들의 매출액이 웬만한 국가의 GDP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각종 이니셔티브의 대의명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ESG 관련 새로운 규범을 따라가지 못하는 협력업체는 기존 계약관계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변화는 결국 통상에서도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글로벌 전략을 수립할 때 진출 국가나 파트너 선정 기준이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와 더불어 멕시코가 미국 기업들의 ‘오염 피난처(Pollution Haven)’로 전락한 것은 멕시코의 느슨한 환경규제와 저렴한 인건비, 취약한 노동 법규 때문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인권침해를 통해 만들어낸 환경침해 제품의 가격경쟁력, 수출경쟁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3)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약속한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한데 모여 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크게 늘리기 위해 협력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
ESG와 관련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글로벌 경영환경 특징은 ESG 경영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향후에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탄소중립(Carbon Neutral)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이상 증가되지 않도록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통해 기대하는 최선의 결과는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소극적’ 접근방식을 통해서는 지구환경의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탄소중립이 아니라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를 기업이 ESG 경영을 통해 실천하는지 여부가 앞으로는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나누는 기준이 될 것이다.
탄소 포집·활용·저장(C C US; Carbon Capture·Utilization· Storage) 기술을 확보한 영국 에너지 회사 드락스(Drax)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고 공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케아(IKEA)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국가 차원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은 CCUS 기술을 국가 차원의 핵심전략으로 간주해 기술개발을 집중 지원하거나 세액공제 혜택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관련 기술력은 경쟁국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각국이 최근 시행하고 있는 산업정책들은 주로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오르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신산업 육성을 통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2030년 세계 최고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반도체 성장 기반 강화 등을 세부과제로 설정했다. 이렇듯 다양한 산업정책들의 공통 목표는 해당 산업에서의 글로벌 리딩 기업과 관련 생태계 육성을 통해 국가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거나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로 대변되는 개별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의 산업정책들이 통상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다.
ESG 시대에 산업정책이 통상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의 설치 및 운영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4)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한데, 자연자본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NFD; Task 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가 벌써 등장했고, 탄소중립을 맞추기도 힘든데 탄소 네거티브가 논의되고 있다. 이렇듯 통상에 직간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ESG 관련 각종 글로벌 이슈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개별기업이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영자원이 소모된다. 동일 정보를 기업마다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경우 경영자원의 불필요한 낭비가 초래된다. 상대적으로 경영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특정 이슈별로 관련 정보를 수집해서 공유하고, 그런 정보가 지니는 실무적·통상적 시사점을 제공하는 개방형 플랫폼의 ‘정보 제공’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4) 기후변화가 기업의 재무적 부분에 미치는 영향 관련 프레임워크로 TCFD가 권고되었지만, 최근에는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이 확대되면서 TNFD가 2021년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공식 출범했다.
ESG 경영을 추구할 때 기업들이 직면할 수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은 ESG 관련 규제나 제도의 미비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다. RE100과 관련된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이 국내에서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여건 때문에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해당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유지될 수 있겠지만, 통상 관점에서 국가적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플랫폼의 ‘의견 수렴’ 역할을 통해 ESG 관련 규제나 제도의 개선방향에 대해서 기업 전체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듯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기업 전체의 의견이 모아지면, 정부 및 산업정책 수립이 필요한 대상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이다. 아직 생소하거나 준비가 부족한 이슈들을 파악해 ‘정책 도출’로 이어져야 한다. 최근 중국을 포함해 영국, 유럽, 북미 지역에서는 바이오차5)를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대표적인 탄소 네거티브 기술로 분류하고 있다. 글로벌 석유기업 셸(Shell)을 포함한 많은 기업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기술로 바이오차를 홍보·육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바이오차를 활용한 온실가스 저감기술이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정부 정책의 확립과 시범도시 추진 사업 등 구체적 실천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ESG는 기업경쟁력 증진과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시대적 요구이자 기회다. ESG 시대에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각종 제도 및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통상과 가치사슬 관점에서 한국 및 한국 기업의 역할을 재검토하고 ESG 관련 기존 규칙을 단순히 따르는 수동적(Rule Follower)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규칙을 제시(Rule Setter)하는 선제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SG가 초래한 새로운 통상환경의 시대에 ‘글로벌 선도국가,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 도출을 위해 기업과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ESG 생태계 구성원 모두가 미래지향적 집단지성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5) 각종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한 폐기물과 바이오매스를 열분해함으로써 얻을수 있는 자연모사 토양유기물(SOM; Soil Organic Ma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