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한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방식을 목표로 구성한 3가지 핵심 요소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탄소중립 바람도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데 선진 각국이 공감하며 개선 의지를 담은 것이다.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신설하고, 녹색분류체계를 만드는 등 ESG 제도화에 앞장서고 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ESG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ESG는 통상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7월 14일 ‘유럽그린딜’ 핵심 12개 법안 패키지를 담은 ‘핏 포 55(Fit For 55)’를 발표했다. 핏 포 55에는 2030년까지 EU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55%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탄소국경세)와 관련한 내용도 비중있게 실렸다.
수입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한 뒤 비용을 물리는 CBAM은 2023년 1월 1일부터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전기 등 5개 분야에 우선 적용되며 3년의 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 전면 도입될 예정이다. 생산지와 상관없이 환경비용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규제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EU의 CBAM 도입 배경엔 자국 산업 보호 목적이 깔려 있다. 또 상대적으로 탄소배출 부담이 적었던 개발도상국의 ‘무임승차’를 막는 효과도 있다. CBAM은 ESG 철학을 기반으로 통상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준 사례다.
철강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내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국제 회계업계에선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의 기능을 분리해 ESG를 전담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기존 회계 체제는 IASB가 맡고, ESG 분야는 별도의 새 위원회가 만드는 준칙에 따라야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이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국제회계기준(IFRS)을 준용하고 있는 수많은 국가와 기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업에 대한 대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어서다. 한국도 이 같은 글로벌 회계업계의 영향을 받아 비상장 기업과 ESG 분야를 담당할 별도 회계기준위원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ESG가 가져올 통상환경의 중대한 제도적 변화라는 평가다.
지난해 전 세계 ESG 투자자산 규모는 40조5,000억 달러(약 4경 6,453조 원)로 2012년의 13조3,000억 달러 대비 8년 새 3배 증가했다. 이 중 ESG 펀드 규모는 지난해 하반기 최초로 1조 달러(약 1,147조 원)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녹색채권 글로벌 누적 발행 총액도 1조 달러를 웃돌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경우 지난해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최우선 순위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꼽고, 사업모델에 기후 위험을 미반영한 기업 244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ESG를 업무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펀드매니저들이 적극적으로 운용전략을 짜는 액티브 펀드에 ESG 요소를 반영토록 했다. ESG 공시 미비를 이유로 볼보의 이사회 의장 연임을 반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기관의 빨라진 ESG 투자 시계는 한국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블랙록이 주주 제안 표결에 참여한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12개 사에서 2020년 27개 사로 2배 이상 늘었다. 블랙록은 2018년 현대자동차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한 반대, 2020년 한전의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와 관련한 서한 발송, LG화학의 인도공장 가스누출사건에 대한 개선요구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ESG 경영을 촉구하는 글로벌 투자사의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녹색분류체계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을 산업별로 정의하고 판별하는 분류체계로 EU가 주도하고 있다. 민·관 투자자금이 친환경 산업으로 유입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 한국은 환경부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K-Taxonomy)를 마련 중이다.
정부는 K택소노미 제정 이후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의 비재무적 정보 공시 의무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매출, 투자비율 등을 모두 녹색과 비녹색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녹색분류체계가 자리를 잡으면 기업 자금조달이나 투자유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해 통상환경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ESG 경영에 대한 요구는 운송수단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탄소배출이 많은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수소차로 대표되는 친환경차가 대세로 떠오르면서다. 각국은 내연기관차를 줄이고, 친환경차를 보급하는 데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충전 인프라를 국비로 설치하는 게 대표적이다. 자동차업계에 이 같은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평가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 전기차 56만 대 판매를 달성하고 2040년까지 모든 제품을 전기차·수소차로 바꾸기로 했다. 기아차도 2030년까지 전기차를 85만 대 판매, 전기차 비중을 34%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배터리업계는 우려보다 기대가 크다. 배터리산업은 친환경차 보급 속도에 따라 급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다만, 원료부터 생산 및 가공까지 배터리 공급망을 완성한 중국은 넘어야 할 산이다. 운송수단 혁명의 시대에 글로벌 패권을 잡기 위한 각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