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윤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사진한경DB
2021년 3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목표로 코로나19 위기극복 및 경제회복을 기저에 두고 노동·인권·환경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시에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전임 정부와 차별화된 통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해에도 미국은 당면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며 중국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동맹국을 포함한 무역 파트너들과 공급망 협력에 초점을 맞춘 관계 재건에 힘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기조는 중국에 대한 통상정책에서 더욱 명확히 확인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강압적·불공정 무역관행이 미국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미국의 기술 우위를 위협하며 공급망 교란을 통해 자국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판단, 2021년 전반에 걸쳐 강경한 대(對)중국 무역정책을 실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도입된 對중국 고율 관세를 유지하고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 접근을 제한했으며, 홍콩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는 사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홍콩 정상화에 관한 행정명령”을 1년 더 연장했다. 아울러 정치안보적 측면으로 호주에 핵잠수함을 지원하는 오커스(AUKUS) 협정(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연합체)를 발표하는 한편, 3국 정상들과 함께 중국의 영향력 및 권위주의에 대응할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최근 미 의회는 인권침해를 문제 삼아 관련 제품의 수입을 금하는 법률안을 의결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실히 진정되지 아니하고 일부 국가의 공급망 교란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자체 공급망 회복 및 안정을 위한 리쇼어링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쇼어링 정책은 이미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중국에 대한 견제수단 중 하나로 활용돼왔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초기인 지난해 2월 24일 주요 공급망의 취약성을 평가하고 탄력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국가안보보좌관실 및 경제정책보좌관실로 하여금 100일 이내에 보고할 것을 명령하고, 6월 8일 파악된 공급망 취약점을 분석해 문제해결을 위한 주 또는 연방 차원의 보조금 및 산업 정책을 수립한 바 있다. 이에 비추어보면 특별한 국제정치 또는 경제적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새해에도 2021년에 수립한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며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역사적 유대, 경제적 연대, 군사적 상호유용성 등으로 맺어진 동맹국들과의 정치·군사·경제적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비공식 협의체) 이외에 2021년 9월 오커스를 출범한 데 이어 11월에는 미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와 합동훈련(호주·캐나다·독일 해군도 참여)을 실시했다. 미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동맹국 중심의 경제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동맹경제협력체제를 통한 공급망 재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비준된 국가에서 새해 발효되는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출범을 목표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IPEF가 기존 무역규범들이 다루지 않는 공급망 탄력성, 탈탄소화, 근로자 표준 및 인프라 구축, 디지털 분야의 표준과 규범 제정까지 포함하는 강력한 새로운 무역협정으로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친노동 규범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차세대 무역규범으로 설정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는 유가증권, 첨단기술, 통신, 인권 및 노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중국에 대한 견제조치를 잇달아 실시했다. 구체적으로 차이나텔레콤·차이나유니콤·차이나모바일 등 중국의 3대 통신사를 비롯해 국영기업, 방위 및 감시 기술 관련 기업 등을 중국 군산복합기업으로 지정해 미국인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인권을 문제 삼아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한 면으로 제조한 의류의 수입통관을 금지하고 중국 선단이 어획한 수산물 전체에 대해 유통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을 내렸다. 2022년에도 중국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강경대응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에 5개국(호주·중국·일본·대한민국·뉴질랜드)이 추가돼 총 15개국이 참여하고 2020년 11월 체결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은 일본·호주·멕시코·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해 2018년 1월 타결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이와 별개로,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2021년 11월 ‘공급망·디지털 경제·기후변화’를 새로운 의제로 포함한 IPEF를 들고 나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소개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RCEP에 공식적으로 가입했다. 이후 2021년 10월 1일 정부가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 12월 2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조만간 발효될 예정이다. 또한 지난 12월 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교역과 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적·전략적 가치 등을 고려해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한다”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2013년 우리 정부가 CPTPP의 전신인 TPP 가입을 검토한 지 약 8년 만에 공식적으로 CPTPP 가입이 추진됐다. 한편, IPEF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특별히 공식적인 관심을 표명한 바는 없지만 2021년 11월 19일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수장인 캐서린 타이(Catherine Tai)로부터 IPEF에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받은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 정리한 바와 같이, 2022년 우리나라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복잡다단하게 혼재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미·중 경쟁이 점차 양국 간 경쟁을 넘어 각국의 동맹국들을 포함하는 진영 대립의 추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 제안하고 있는 IPEF는 미국의 對중국 전략의 중심축이 동북아에 머무르지 않고 아세안 및 인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경제협력체가 혼재하는 새로운 통상환경에서 우리나라는 협정 간 관계를 면밀히 정립하고 각 협정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냉철한 협정별 국익을 계산해 협정 가입 또는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가 국제사회에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됨에 따라 각국의 환경보호 조치와 기존 국제통상규범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긴장관계의 근본적인 원인은 각국의 환경보호 조치가 부과하는 의무와 기존 통상규범이 부과하는 의무의 성격 및 범위의 본질적인 차이에서 비롯한다. 전자는 환경보호를 위해 상품 또는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추가적인 국내 환경규범 준수를 요구하는 반면, 후자는 사유를 불문하고 가입국으로 하여금 통상의 장애가 되는 조치를 새롭게 실시하지 말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국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환경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다루고 있는 작금의 추세를 고려하면, 환경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통상규범 동향을 파악하고 변화에 미리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환경보호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EU의 새로운 통상규범들에 주목해야 한다. 2019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2050년까지 기후중립(Climate Neutrality)을 목표로 탄소배출 감축을 목표로 하는 ‘유럽 그린딜’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EU 경제를 온실가스 배출,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을 수반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저탄소 녹색경제로 전환시키려는 EU의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 평가된다. 유럽 그린딜은 2050년까지 모든 온실가스의 배출을 제로로 하는 경제의 달성을 최상위 목표로 설정한 뒤 기후변화·에너지·순환경제·빌딩·수송·농업·생물다양성·재정·국제협력 등에서 향후 정책방향 및 구체적 실행계획의 일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EU는 최근 유럽기후법, 강화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법률(안)(Fit for 55% Package) 및 이에 포함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미세플라스틱 관련 규제 등을 쏟아내며 환경문제를 통상 이슈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무역정책 방향도 EU의 정책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성장·양극화 등 기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와 비대면 수요 급증, 기후위기의 시급성 등 사회·경제적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2020년 7월 한국의 경제·사회 구조를 선도형 경제, 저탄소 경제, 포용 사회로 전환하려는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계획의 핵심 주축 중 하나로 우리나라는 ‘그린뉴딜’을 제시함으로써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한 글로벌 대응에 기여하고,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대응해 지속 가능한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기초로 국경 간 거래에서 환경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는 환경 및 기후변화와 관련한 최신 통상정책의 흐름과 동향에 이목을 집중해야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기로 대변되는 미·중 무역갈등에서 촉발된 누란지위의 다자무역체제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자체제의 혼란 속에서 각국은 자국 법령을 근거로 한 일방적인 통상조치들을 발동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미국이 중국 등 특정 국가의 무역에 있어 불공정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자국의 1974년 통상법 제301조상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환경보호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EU가 수립하고 있는 각종 환경규제 법안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같이 각국은 무역제한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자국 법령을 상황에 따라 제정 및 활용하면서 자국 기업과 거래하는 국외 기업에까지 그러한 규범에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규모 및 절대적 무역량 차이에서 비롯한 통상 협상력의 차이를 고려하면 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다자무역체제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2020년 11월 30일 WTO 상소기구의 마지막 남은 상소위원이 퇴임한 이래, WTO의 분쟁해결 기능은 사실상 정지되고 다자무역체제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더구나 한반도는 단순히 경제적 논리만으로 통상교섭을 진행하기엔 어려운 외교안보적 문제도 짊어지고 있는 특수한 지역에 위치한다.
결국, 우리에게는 2022년이야말로 통상교섭에의 실리인 ‘나무’와 동북아시아 안정과 안보인 ‘숲’을 모두 고려하는 종합적인 경제외교안보 전략이 절실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