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에서 농산물의 관세 및 비관세 조치 완화는 가장 어려운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세계 최대 경제권이자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과 국경보호 수준을 낮추면서 직접 경쟁한다는 것은 농지 등 농업자원이 부족하고 고령화 및 도시화로 농촌 활력이 위축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커다란 도전이자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한·미 FTA의 농산물 개방 수준은 97.9%로 지금까지 체결한 모든 FTA 중 가장 높다. 다만, 주식인 쌀은 다른 모든 FTA에서처럼 양허에서 제외했다. 국내외 가격 차이가 크고 기존 관세율이 높은 품목들은 현행 관세를 유지하는 대신, 일정 물량(Quota)까지 무관세를 적용하되 쿼터 초과 시 관세율을 적용한다. 국내 수확 및 유통 기간과 수입이 겹칠 때 계절관세를 적용해 보호하면서 현행 관세를 유지하거나 장기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쇠고기·돼지고기·인삼 등 30개 품목에는 세이프가드를 설정해 수입 증가로 국내 산업의 피해가 우려될 때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수 있다. 특히 쇠고기는 세이프가드 조치 시 발동물량과 세율을 정하고 기준세율 40%를 2026년까지 철폐하기로 했다.
FTA의 가장 직접적이고 두드러진 경제효과는 무역증대다. FTA가 발효한 2012년을 기점으로 그 전후 10년간 수출입액을 비교하면 양국 간 무역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가 시사하는 점은 첫째, 무역창출 효과가 일관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수출과 수입 모두 뚜렷하게 증가했다. 둘째, 대미 무역에서 전체 상품보다 농수산물의 수출입 증가율이 더 높게 나타난 사실이다. 이는 FTA의 효과나 산업 피해가 상대적으로 농수산업에 두드러짐을 뜻한다. 셋째, 비록 FTA 이후 농수산물 무역수지 적자가 더욱 커졌으나 그 수출이 수입보다 더 큰 폭의 증가율을 나타낸 점이다. 이와 같은 고무적인 사실은 농수산업 안에서 무역자유화의 손익이 다르게 나타남을 시사한다.
이전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했으나 이내 물러섰던 미국이 다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합류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만약 그럴 때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양허 대상에 쌀을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수입 위생 조건으로서 지역화 원칙과 국영기업에 의한 수출보조 금지 등의 명문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 혹, 2018년에 경험했듯이 FTA 10주년을 맞아 미국의 재협상 요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국내 대책 측면의 우선 과제는 농식품 부문의 혁신 및 경쟁력 제고와 더불어 FTA 체결에 따라 피해를 받은 농업인 지원책을 확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중 FTA 발효 후 5년간 시행한 폐업지원제를 2020년 12월에 종료했는데 그 연장이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추가적인 FTA 개방이나 지속적인 피해 발생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FTA 피해보전직불제가 확실한 안전망으로서 기능하도록 개선하는 방안도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1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석유화학 분야는 전방산업 수요 확대 흐름, 유가 상승분의 제품 단가 반영 등의 영향으로 월간 수출금액이 50억 달러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표적인 경기순환형 업종인 석유화학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호황 국면에 이어질 수 있는 불황 국면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
탄소중립은 우리 기업에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내건 ‘2050 넷제로(Net-Zero) 선언’과 탄소국경세 도입 등 환경 공약도 우리 석유화학 기업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겪고 있는 최근 상황도 우리 석유화학 업계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은 혹독한 경제제재를 단행하고 있어 우리 기업의 석유화학 제품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2019)에 따르면 석유화학 부문의 한·미 FTA 수혜품목 수는 산업 규모 대비 제한적이나 석유화학 대미 총 수출액은 2012년 21억 달러에서 2018년 27억 달러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미 FTA 수혜품목의 수출액은 7억 달러에서 16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났으며, 연평균 관세절감액은 4,800만 달러였다. 특히 석유화학 수출금액 대비 관세절감액 비중은 전체 평균 2.8%를 웃도는 4.6%로 석유화학이 다른 품목에 비해 한·미 FTA 관세인하 효과가 더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유화학산업은 석탄·석유 등 에너지 가격 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고유가 시기에 가격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FTA 활용이 필수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팬데믹 초기인 2020년 영업이익률이 4%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맞기도 했으나, 2021년에는 수출 551억 달러라는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최대 실적의 주요 원인이 급등한 유가 덕분이기에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오미크론 출현, 유가 변동폭 확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2022년 팬데믹 영향에서 벗어나 경기가 회복한다면 글로벌 화학 시장 내 수요 확대, 국내 공급능력 증가로 수출액과 수출량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화학업계는 점차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 한편 탈석유화를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미래차 등과 연계된 고부가가치 기술·제품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하고, 미국의 그린뉴딜을 기회 삼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제조업 생산의 12.7%, 수출의 12.1%, 고용의 11.5%를 담당하며 국민소득·수출 증대,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크게 기여한 국가경제 기간산업으로 성장해왔다. 또한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들이 생산생태계를 형성하면서 소재‧부품부터 판매‧서비스에 이르는 광범위한 전후방 연관 산업으로 국내 전체의 산업발전과 일자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자동차산업의 국내 생산은 2011년 466만 대, 수출은 2012년 317만 대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속 감소해 지난해에는 각각 346만 대, 204만 대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사이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해 양국 자동차산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전임 트럼프 행정부 요청에 따라 2019년 1월 1일 한·미 FTA 개정 협상 및 개정의정서가 발효했다. 동 개정에 따라 당초 합의한 미국의 화물차(픽업트럭 등) 관세(25%) 철폐 시점을 2021년에서 2041년으로 20년 연기했다. 추가적으로, 미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경우 한국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수도 제조사별로 연 2만5,000대에서 5만 대로 확대했다.
한·미 FTA 체결 등의 효과로 2021년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서 쉐보레·크라이슬러 등 미국 브랜드 판매는 일본을 제치고 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계 브랜드 판매대수보다 미국 원산지 판매대수가 두 배 가까이 많은데, 이는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미국산 자동차의 가격경쟁력 상승에 기인한다. 한국은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11년에는 미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대상국 중 12위였으나 2020년에는 9위로 부상했다. 반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전체 수출대수는 2017~2021년 연간 80만 대 수준으로 정체되고 있으나, 한국지엠의 대미 수출은 증가했다. 국내 미국계 투자기업인 한국지엠이 한·미 FTA를 적극 활용해 양국 시장에서 영업활동을 강화한 결과다. 특히 한·미 FTA에 따른 관세 철폐에 따라 한국지엠(소형차)과 미국지엠(중대형차) 간 생산차종이 보완적 관계로 발전했다.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시장 판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한·미 양국 간 자동차 무역불균형 문제가 다소 완화되고 있으며 향후에도 그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절대량 기준으로는 미국의 대(對)한국 수출대수가 한국의 대미 수출대수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해 향후 미국의 무역역조 문제 제기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러나 한국 시장 규모는 미국 시장의 약 10분의 1 수준으로 상호 수출입 규모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단순히 수출입의 절대량을 비교하기보다는 시장점유율로 비교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자동차업계가 제기한 한국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 국제통상관계 및 자동차 기준 글로벌화 차원에서 개선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개선을 토대로 양국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미래차 관련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개발과 교차투자 확대 등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철강산업을 둘러싼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연중 이어졌던 원·부자재의 수급 및 물류의 불안정성이 올해는 전쟁위기까지 겹쳐 커지고 있는 데다 세계 각국의 무역구제조치나 비관세장벽 등 여타 철강 수출을 가로막는 규제가 확대되고 다양화되는 추세다.
한·미 양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은 과거 세계무역기구(WTO) 철강 무관세 협상을 통해 2004년부터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를 폐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2012년 한·미 FTA 발효 당시에도 철광석·합금철·스크랩 등 원·부자재를 제외한 모든 철강제품에는 무관세 기조가 유지됐다. 다만 자국 내 안보 위협을 이유로 부활된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미국은 캐나다 및 멕시코를 제외한 수입산 철강제품에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했으며 이후 한·미 FTA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철강 수출에 대해서는 관세가 면세되고 2015~2017년 평균 수출의 70% 수준에서 수입쿼터가 부과됐다.
2012~2021년 한국의 대(對)미국 철강수출은 2015년 정점 이후 점차 줄어들어 연평균 1% 감소했으며 한국의 대미국 철강수입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1.1% 감소한 상황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구제조치 완화 혜택이 예상됐으나 FTA 체결 이후 미국의 대한국 반덤핑·상계관세 건수는 오히려 늘어났으며 관세 면제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증가가 예상됐던 철스크랩 수입 역시 상당폭 감소했다. 철강산업의 경우 한·미 FTA 체결 전부터 무관세인 상황이었기에 한·미 양국 간 교역은 FTA 체결의 영향보다는 시장 상황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232조 관세 부과의 예외 적용 사례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한·미 FTA로 확보된 양국 간 신뢰관계는 통상분쟁이 심한 철강산업에서 향후 좀 더 유연한 통상 여건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감산을 통한 철강산업 개혁과 탄소저감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선진국에서의 탄소중립을 향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원료확보 추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환경 및 기후 문제와 결부된 새로운 철강 통상규범의 등장이 예상된다. 이미 EU는 지난해 철강산업이 포함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2026년 시행을 예고한 바 있으며, 미국은 EU와 연대해 글로벌 공급과잉 개선 및 탈탄소화 기여를 위한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 협정(Global Sustainable Steel Arrangement) 확산을 주도 중이다. 조강생산량 세계 6위, 수출 세계 3위, 그리고 탄소집약도가 높은 고로 중심의 한국 철강산업은 새로운 통상규제의 큰 영향에 놓여 있기에 관련 이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한·미 FTA 등 기존 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한 대응방안의 조속한 수립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