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o-Pacific

인·태 지역을 둘러싼 아세안과 인도의 관점

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사진 한경DB

2017년 미국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 Pacific)’을 지역 전략으로 공식 표명한 이래, 인도·태평양 공간 개념이 기존 아시아·태평양 공간 개념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인·태는 인도양 국가임에도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태경제협력체(APEC)’ 등 아태 지역 정치·경제 다자협력체 참여국 인도를 고려해 인위적으로 가공된 공간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결합한 인·태 공간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확보한 영토 때문에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의 77%와 병력 8,000명, 국민 200만 명이 인도양 지역에 있는 프랑스도 포함한다.

2021년 10월 3일 필리핀 인근 남중국해에서 미국·영국·일본 항모 4척을 포함해 총 6국 17척의 함정과 1만5,000여 명의 병력이 참가한 가운데 중국 견제를 위한 ‘항행의 자유 작전’이 실시되고 있다.(출처; 미 해군)
아세안의 관점, 아세안 중심성 붕괴 우려

인도양과 태평양을 결합하는 인·태 지도 한복판에 동남아가 위치한다. 그러한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국가는 미국의 인·태 전략 추진으로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역내 다자협력 논의는 아세안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아세안은 미국이 인·태 전략의 하나로 다양한 소다자 안보협력체를 추동하고 이의 확대와 연계를 추구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이러한 미국 주도 소다자 안보협력체가 아세안을 제치고 역내 다자협력의 주요한 기제로 부상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아세안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협의체) 국가는 정상회담 및 외교장관 회의 시마다 아세안 중심성을 존중하겠다는 것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한편, 안보적 측면에서 미국이 인·태 전략의 일환으로 남중국해에서 펼치고 있는 ‘항행의 자유 작전(FONOP; Freedom of Navigation Operaton)’에 관해 아세안 내에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에서 남중국해 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국제법적 근거가 미약한 ‘구단선(Nine Dash Line)’에 입각해 남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아세안 국가 중 중국과 (잠재적) 영토분쟁 중인 국가는 미국이 주도하는 FONOP을 환영한다. 물론, 이들 국가도 미국의 FONOP으로 인해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싱가포르 소재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가 수행한 2022년 동남아 인식조사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 국가를 택해야 하면 중국을 택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81.8%인 라오스, 81.5%인 캄보디아는 미국 주도 FONOP을 반대하고 있다.
인·태 지역에서 투영되고 있는 미국의 또 다른 안보전략은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과 해상상황 인지 능력 배가에 기여하는 것이다. 동남아 지역은 중국과의 영토분쟁뿐만 아니라 해적, 불법어업, 인신매매, 환경오염, 대형 해난 재해 등 다양한 비전통적 안보 이슈가 복합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동남아 개별국가와 지역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가 해양안보를 주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갖추고자 하는 ‘정보·감시·정찰(ISR; 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장비와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장비 사이에 차이가 큰, 이른바 ‘ISR 공백’ 때문이다. 한정된 예산의 제약 때문에 다수의 동남아 국가가 위성·무인기 등 고가의 탐지 자산을 구비하기 어렵다. 따라서 해양안보에서 동남아 역외 국가의 기여를 수용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인·태 지역 주요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고 선박과 항공기의 공여를 넘어 해안경비 시스템, 해안경비 레이다 기지국 등을 설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남중국해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를 통해 총 34대의 무인 항공기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남중국해 4개국의 ISR 능력 강화에 기여 중이다. 일본과 호주, 인도도 미국과 발맞추어 동남아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에 기여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가 비전통적 안보 이슈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세적 해양활동에 대한 대항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등 쿼드 국가의 기여는 단·중기적 관점에서 동남아 해역 안정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양능력 배양을 위한 쿼드 국가의 기여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쿼드 국가가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한 헤징을 염두에 두고 역내 해양안보 이슈에 개입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합이 동남아에서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세안 국가는 미국이 안보전략으로 출발한 인·태 전략에 지경학적 측면을 가미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기치로 인프라 투자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2021년 6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7 회담에서 ‘더 나은 세계 재건(3BW; Build Back Better World)’ 계획으로 명명된 대규모 인프라 추진 사업을 이끌어냈다. 2021년 9월에 개최된 쿼드 정상회담에서는 4국 정상이 기존 양자 및 3자 협력을 넘어서는 4자 인프라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아세안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도 수용하면서 미국·일본·호주가 제안하는 인프라 투자 사업도 병행해 수용하고 있다. 아세안 입장에서 인프라 건설 시장은 광대하며, 미국과 중국이 반드시 경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 정상들이 2021년 9월 24일 백악관에서 첫 대면 회의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인도의 관점, 반중국 감정 고조

인도는 2017년 11월 미국이 인·태 전략을 공표한 이후, 미국 인·태 전략에 유보적 입장을 견지했었다. 그러나 2020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 지역인 갈완 계곡에서의 양국 군인들 간 ‘몽둥이 충돌’로 인해 인도에서 반중국 감정이 격해지면서 인도가 쿼드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호주의 말라바(Malabar) 군사훈련 참여를 불허했던 인도가 2020년부터 호주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영토분쟁에 더해, 인도에서 중국 위협론이 고조된 이유는 중국이 일대일로의 기치 아래 인도가 맹주국임을 자처하는 남아시아 및 인도양 지역에서 항만 등 기간산업 건설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인도양 지역에 잠수함을 출몰시키는 등 군사 활동을 증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는 중국·파키스탄 관계 증진을 우려한다. 중국이 파키스탄과 공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의 해양능력 배양에 기여하고 있다.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의 경우 인도가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 카슈미르 일부를 통과한다.
인도는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String of Pearl Strategy)’에 대비해 미국·호주·일본 등 쿼드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는 2020년 동맹이 아닌 국가와 체결할 수 있는 최상위 협정 중 하나인 위성 데이터 교류를 위한 ‘기본 교류협력 협정(BECA; Basic Exchange and Cooperation Agreement)’을 체결했다. 인도와 호주의 안보협력도 증진하고 있는데, 양국은 2015년부터 2년마다 정기적으로 양자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인도와 일본의 양자 안보협력 역시 점증적으로 증진하고 있다. 이처럼 쿼드의 틀에서 미국·인도·일본 삼자 안보협력이 촉진되고 있다.
인도는 쿼드 국가 외 역내 국가와도 안보협력을 증진 중이다. 스리랑카·몰디브·마우리티우스(Mauritius)·세이셸(Seychelles)을 포함한 인도양 도서 국가들과 접촉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인도가 인도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걸프만과 서인도 지역,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힘의 투사 능력을 증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마우리티우스와 세이셸에 군사 기간시설을 건설하려고 한다. 중국이 스리랑카를 포함한 인도양 국가에 공세적인 항만투자를 통해 수원국을 채무의 덫에 빠뜨리면서 부채 상환을 명분으로 수원국의 항만을 군사적 거점으로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도양 국가에 대한 인프라 투자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한편, 인도는 인도네시아·베트남·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와의 방산 및 위성 협력도 증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인·태 공간에서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례로 인도는 인도가 쿼드 및 역내 국가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중국 봉쇄 전선에 동참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는 쿼드를 4국이 인·태 지역 제반 안보 의제를 협의하기 위한 포럼으로 운영하거나 재난 구호, 전염병 퇴치, 에너지, 기후변화, 사이버 안보 등 비전통적 안보 의제를 다루는 ‘기능적’ 협력의 틀로 유지하고자 한다. 인도가 2021년 3월 쿼드 장관급 회담을 정상급 회담으로 격상시키는 데 동의한 이유 중 하나는 쿼드가 추진하는 인·태 지역 코로나 백신 공급에 인도가 생산기지 역할을 한다는 실용적 이익 때문이었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이유는 아니었다.

  • 인도는 인도가 쿼드 및 역내 국가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중국 봉쇄 전선에 동참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는 쿼드를 4국이 인·태 지역 제반 안보 의제를 협의하기 위한 포럼으로 운영하거나 재난 구호, 전염병 퇴치, 에너지, 기후변화, 사이버 안보 등
    비전통적 안보 의제를 다루는 ‘기능적’ 협력의 틀로 유지하고자 한다.
흔들리는 비동맹주의와 전략적 자율성의 미래

아세안과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주의와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중시해왔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지역 전략인 일대일로와 인·태 전략이 경합하면서 아세안과 인도의 전통적 외교 노선이 도전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 양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환경을 최대한 피하려고 아세안은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보고서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연계성, 경제협력, 비전통적 안보 등에 중점을 두고 인·태 정책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인도 또한 인도·태평양 이니셔티브(IPOI)에 명시된 해양안보, 해양환경 보호, 연계성, 조난구조, 해양능력 배양 등에 중점을 두고 자국의 인·태 정책을 펼쳐나가면서 쿼드를 군사·안보적 협의체보다는 코로나 백신, 보건, 환경, 첨단기술, 공급망 등 기능 분야 협력체로 끌고 가기 위해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세안과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 확보 여부는 미국의 인·태 전략에 이들 두 주체가 얼마나 협조하는가에 있다기보다는, 중국이 역내에서 얼마나 공세적인 군사정책을 펼칠 것인가에 좌우될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을 제외한 아세안 다수 국가와 인도는 그들의 인·태 전략을 펼치는 데 있어 안보적으로 미국에 접근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고자 할 것인데,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일정 기간 명확한 우선순위를 정립하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