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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무게중심 이동

김경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

미국은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5개국을 순방할 때 새로운 아시아 전략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했다.
2018년 5월에는 기존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개칭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지역을 확대한 것은 지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정치적·전략적인 공간으로서도 미국 국익에 가장 중요한 최우선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에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자국을 “인도·태평양 국가”로 정의했다.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중요성은 지정학적·경제적 무게중심이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국의 이익에 대단히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군 역시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 역시 인도·태평양을 미래의 국제질서가 결정될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및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넓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유럽연합(EU) 개별국가는 물론 EU 차원에서도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식화하고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육해상으로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BRI)’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경제적 중요성 부상

미국과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는 이유는 전략적·경제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인도·태평양은 동북아, 인도양 국가들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인도양은 아시아와 유럽과 중동을 연결하는 바브엘만데브·호르무즈·말라카 등 세계 3대 해협을 끼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로 인해 인도의 지정학적·경제적·전략적 가치도 커졌다. 미국이 인도를 주요 안보 파트너로 지정하면서 양자 관계는 거의 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 지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하며, 전 세계 해상 교역의 60%가 통과하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 대국이 몰려 있고 신흥국의 경제적 잠재력 역시 크다. 또한 11개국이 회원국으로 참가해 2018년 출범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전 세계 GDP의 13%, 무역의 15% 규모이며, 한국·중국·일본과 아세안 등 15개국이 가입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올해 발효됐다. 이 지역이 세계경제의 무게중심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미국 인·태 전략과 중국 일대일로의 충돌 지점

인도·태평양 지역은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미·중 간 역내 주도권 확보를 위한 최대 격전지가 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가장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 질서를 위협하는 최대 도전 국가로 중국을 지목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이 대상국들의 도로·철도·항만 등 기초인프라 건설을 통해 ‘공동발전’과 ‘인류번영’을 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중 간 전략적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쟁점은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다. 남중국해는 전 세계 해상 교역의 30%를 차지하는 요충지이자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의 보고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주변국들을 압박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응해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and Overflight)’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남중국해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고 있다.
대만 문제 역시 미·중 간 첨예한 사안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고 있으며, 대만해협에서 공세적 무력시위를 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대만에 무기지원 등을 하면서 관계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대만 역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열린 기회의 공간이자 미·중의 최대 격전지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패권 도전을 견제하기 위해 지역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와 쿼드(Quad)를 강화하고, 한·미·일 3각 협력, 영국·호주와 오커스(AUKUS) 3자 안보협력체를 결성하는 등 안보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중국 포위를 위한 태평양·대서양 벨트가 구축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한 미국은 40조 달러 규모의 ‘B3W(Build Back Better World)’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인프라 투자 촉진 등 경제협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으며, 러시아와도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반미 연대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인도·태평양 지역은 세계경제 중심이자 남중국해·대만·한반도가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다. “열린 기회의 공간”인 동시에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가장 치열한 최대 격전지다.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미·중 간 전략 경쟁 심화로 인한 충돌을 우려하고 있으며, 강대국 주도의 안보질서 형성으로 자국의 자율성과 역할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