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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으로 보폭을 넓혀가는
세계의 중추 국가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 사진 한경DB

‘인도·태평양’은 주요 국가들의 ‘전략 개념(Concept of Strategy)’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지정학적 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지역 개념(Concept Of Region)’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중추 국가 대부분이 전략적 관점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관여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이 글에서는 우선 인·태가 새로운 지역 개념으로 떠오른 배경과 전략의 기원을 간략히 검토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인·태 전략 동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 주요 거점 항구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 인도양,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로 이어진다.

인도·태평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양’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인도양은 세계 3대 해협으로 알려진 바브엘만데브(Bab-el-Mandeb)·호르무즈(Hormuz)· 말라카(Malacca) 해협을 품고 있다. 아시아를 중동과 유럽으로 연결하는 주요 ‘해상 통신로(SLOC; Sea Lanes of Communication)’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세계 무역과 에너지 자원의 원활한 수송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양 양단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과 호르무즈 해협은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 중요한 ‘관문(Choke Point)’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관계이던 독일과 일본은 인도양을 통해 군사적 연결점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했다. 독일과 일본의 인도양 공략이 성공했다면 2차 세계대전의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해양 전략가들은 이러한 전략적 가치 때문에 인도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아시아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중부 사령부와 태평양 사령부는 인도양을 통해 군사 적인 연결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인도양의 해양질서는 이러한 미국의 패권적 질서 아래서 안정적으로 관리돼왔다. 하지만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역 개념’으로서의 인도·태평양과 중국의 부상

중국이 사용하는 원유 80% 정도가 ‘호르무즈 해협 → 인도양 → 말라카 해협 → 남중국해’를 통해 수입된다. 만약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호르무즈와 말라카 해협을 틀어막으면, 중국 경제는 한순간에 마비되고 국가전략에도 심각한 차질이 발생한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2010년부터 인도양의 해양 수송로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이난섬에서 시작해서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 파키스탄에 해군기지를 장기 임차했고, 동아프리카의 거점 국가 지부티의 오보크항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군사기지를 구축했다. 이러한 노력은 ‘진주 목걸이 전략’이라고 불리는 해군기지 네트워크 구축 전략으로 이어졌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중 ‘일로’, 즉 ‘해양 실크로드’는 인도양을 공략해 해양 수송로를 장악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하지만 ‘현상변경’을 시도하는 중국의 전략은 ‘현상유지’를 희망하는 국가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연결성(Connectivity)’을 유지해왔지만 중국의 배타적 영향력 확보 시도는 이러한 연결성을 위협하고 있다. 연결성 유지의 중요성은 역설적으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역 개념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지역 개념은 늘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아시아에서는 ‘아시아·태평양(Asia Pacific·亞太)’이라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지역 개념이 우세했으나 지금은 ‘인도·태평양(Indo Pacific·印太)’이라는 해양과 해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역 개념이 이를 급속히 대체하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다면 미국·인도·호주·일본과 같은 국가들은 현상유지를 원한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4국은 각각의 인·태 전략을 구비해 지역에 관여하고 있고, 또 쿼드(Quad)와 같은 협력 기제를 만들어 협력하며 인도양과 태평양의 연결성 강화를 위한 ‘해양안보’와 ‘해양협력’ 제고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발표한 인도·태평양 행동 계획

  1. • 인도·태평양에 새로운 자원 공금
  2. •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주도
  3. • 대(對)중국 억지력 강화
  4. • 자율적이고 단결된 아세안 강화
  5. • 인도의 지속적 성장과 지역 리더십 지원
  6. • 쿼드의 구현
  7. • 한·미·일 ‘3각 협력’ 확대
  8. •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탄력성 강화에 협력
자료:백악관
인도·태평양 전략의 진화

인도·태평양 전략의 대주주는 단연 미국이고, 미국의 인·태 전략은 미·중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역내 질서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태가 전략 개념으로 진화하는 데에는 호주와 일본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호주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중간에 위치한 국가다. 인도양과 태평양의 연결성 유지는 호주의 ‘사활적(Vital)’ 이익에 해당한다. 중국의 부상이 기존 역내 질서를 흔들기 시작하자 호주는 가장 먼저 인·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개념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용어와 개념의 정착에 호주가 선도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호주의 인·태 전략은 초기에만 하더라도 미·중 경쟁 과열 방지 및 원만한 인·중(印中) 관계 지속과 같은 방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오커스(AUKUS)와 같은 안보협력체와 다양한 해양훈련을 주도하면서 중국 견제의 첨병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태를 구체적인 ‘전략 개념’으로 발전시킨 국가는 일본이다. 현재는 쿼드로 알려진 ‘안보 다이아몬드(Security Diamond)’로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을 견제해야 한다는 구상도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 아베 총리는 2016년 ‘도쿄 아프리카개발 국제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 Pacific)”을 일본의 새로운 외교전략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 후 일본은 호주와 함께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역내 안보협력과 개발협력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등 거버넌스 구축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미국이 인·태 전략을 채택하는 과정에도 일본은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쿼드 4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는 공백이 발생했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소진되고 있던 미국의 외교·안보 자원을 아시아로 전환하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추진했었다. 오바마의 아시아 전략은 외교·안보·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을 총망라하는 다면적인 아시아 관여 전략이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아시아 재균형의 핵심전략 기제였다. 미국 주도로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을 이뤄내며 자연스럽게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TPP가 국내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TPP와 아시아 회귀 전략을 백지화했다. 사실 트럼프는 중국 견제에만 꽂혀 있었지 아시아에 체계적으로 관여할 의향이 없었다. 그런데 초강경 대중 정책을 추진하면서 트럼프판(版) 아시아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발생했고, 마침 아베가 “자유롭고 개방된 인·태”를 적극 홍보하며 권유하자 이를 자신의 아시아 전략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2017년 아시아 순방길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태”가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길에서 자신의 인·태 전략의 핵심이 역내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and Overflight), 법치(Rule of Law), 억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Coercion), 주권(Sovereignty), 시장질서(Private Enterprise and Open Market)”의 수호 및 강화라고 했다. 쿼드 4국의 인·태 전략은 각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이러한 전략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미·중 경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 아세안(ASEAN)은 ‘인·태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 ASEAN Outlook on the Indo Pacific)’이라는 전략보고서를 선보였는데, 자유롭고 개방된 역내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쿼드 4국의 인·태 전략 목표와 대동소이하다.
인·태 전략은 지역의 국가와 제도에 외교적으로 관여하며 공통의 이익을 도출하면서 대상국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에 없는 두 가지 전략 자산을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국이 공들여 관리해온 동맹과 국제제도라는 전략 자산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러한 전략 자산을 활용하기는커녕 동맹과 국제제도를 경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우를 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인·태 전략을 수정 보완하면서 추진하고 있다. 우선 전략의 다면성을 확충했다. 트럼프의 인·태 전략도 공식적으로는 군사·안보·외교·경제를 망라한 다양한 분야의 관여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군사·안보 영역에 치중돼 진행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역내 인프라 구축에 공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의 국내 정책 중 하나인 ‘더 나은 재건(3B; Build Back Better)’의 국제판이라고 할 수 있는 ‘3BW(Build Back Better World)’를 제안하며 중국의 일대일로에 적극 대응하려는 태세다. 인프라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 거버넌스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데 “규칙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쓰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이 밖에도 외교적 관여를 강화하고 있고,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외교를 추진하면서 중국을 옥죄고 있다. 동맹과 제도를 적극 활용하며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복원을 도모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각국 구상

한국

  1. • 신남방정책
  2. • 외교 다변화

“아시아 협력을 통해 만들어가는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

미국

  1. • 인도·태평양 전략
  2. • 중국 견제

“미국과 세계는 인도·태평양 평화와 번영에 기여, 이 지역은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중국

  1. • 일대일로 구상
  2. • 미국 견제, 아시아 맹주 도약

“어떤 나라들이 다른 국가의 이익을 해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냉전 만들도록 하지 않을 것”

일본

  1. •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2. • 중국 견제, 아시아 맹주 지위 수호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실현 위해 지역 평화와 번영에 공헌”

호주

  1. • 아세안·호주 전략 파트너십
  2. • 중국 견제, 지정학적 교두보

“호주의 인도·태평양 구상 참여와 아세안의 균형적 위치가 아세안과 호주 사이의 긴밀한 관게에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최근에는 유럽의 인·태 관여가 단연 눈에 띈다. 유럽연합(EU)뿐 아니라 유럽의 주요 국가인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가 각각의 인·태 전략을 마련해 인·태 지역으로 전략적 관심을 전환하고 있다. 유럽 국가의 인·태 전략은 다 전략적 목표가 다르고 미국 인·태 전략과의 협력 정도도 차이가 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경제적 관점에서라도 인·태의 관여가 절실한 상황이다. 영국은 최근 ‘아세안 대화 파트너(ASEAN Dialogue Partner)’ 지위를 획득했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해놓을 정도로 역내 관여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전통적 해양강국의 지위를 이용한 인·태 해양안보 관여는 괄목할 만하다. 프랑스는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만 놓고 보면 가장 중요한 ‘인도양’ 국가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인·태 관여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의 인·태 해양안보 관여는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일이 전통적 해양강국이 아니고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은 2021년 영국, 프랑스에 이어 3600톤급 호위함 바이에른(Bayern)호를 역내에 파견하는 결정을 내렸다. 역내 해양안보와 해양협력의 제고는 중국 견제와는 무관한 사안이라는 입장이고, 이러한 독일의 입장은 한국의 외교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의 인·태 전략과 인·태 지역 관여는 전반적으로 바이든의 인·태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외에도 세계의 중추 국가들이 각각의 전략을 구비해 인·태에 대한 관여의 보폭을 넓혀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태가 안보·경제·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고, 따라서 이 지역에 대한 관여가 국가 이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통합된 지역 개념으로서 인·태는 세계 인구의 약 60%가 살면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창출하고 있는 곳이다. 인·태는 세계경제 성장에 3분의 2 정도를 기여하고 있고, 2030년에는 신흥 중산층 90%가 이 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달성하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의 차기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업그레이드해서 본격적인 한국판 인·태 전략을 마련해 역내 관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