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가 더욱 강화되면서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대러 경제제재는 글로벌 공급망과 세계 통상환경, 그리고 국내 기업과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의 러시아 수출통제 조치 내용과 대러 경제제재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자 | 이상준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토론 제시어 |
#1미국의 러시아 수출통제 조치 #2FDPR과 면제국가 리스트 #3 대러 경제제재의 파급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발표한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는 상당히 느슨했다.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초강경 모드로 전환해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기존에 있던 대량살상무기와 핵물질, 바이오 등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는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 내용을 좀 더 엄격하게 운영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러시아의 주요 금융기관을 배제하는 등 앞으로 제재를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대러 경제제재는 세계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지역과 품목에 따라 영향력 차이가 큰데, 지역으로 보면 서유럽 국가는 러시아가 에너지와 원자재 주요 공급국인 데다 대러시아 수출량도 많아 공급망의 모든 면에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비롯해 철·구리·니켈 등 광물과 곡물 등에도 영향이 있다.
문제는 이보다 더한 상황이 올 경우다. 만약 앞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러시아를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 대우하지 않게 된다면 서방 체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맞서는 구도로 신냉전 체제가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통상환경은 지금 예상보다 훨씬 더 악화될 수 있다.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 구조는 크게 외교적 제재, 개인 및 조직에 대한 제재, 그리고 무역 제재로 나뉜다. 외교 제재는 주요 인사들의 여행 제한이나 비자 발급 중지, 각종 스포츠 및 문화행사 교류 중지 등 일종의 망신주기를 통한 방식이다. 개인 제재는 이례적으로 지금까지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푸틴 대통령과 성인이 된 두 딸, 외무장관, 국방장관, 군총사령관 등 주요 인사에 대해 해외자산 동결 및 입국금지 등의 조치를 포함한 것이 특이한 사항이다.
미국의 무역 제재는 근본적으로 서방에서 직접 군사력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그에 준하는 조건들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예상한 초기에는 가벼운 제재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러시아를 최혜국대우에서 제외하고, 에너지 수출을 막고, 스위프트 배제와 해외자산 동결 등을 통해 그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특히 군수용으로 쓰일 수 있는 ‘이중용도통제제품’은 수출거래통제 리스트(CCL)로 만들어 전자(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 센서·레이저, 항법·항공전자, 해양, 항공우주 등 7개 분야, 57개 품목 및 기술 항목에 대해 자국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사용된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미국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에너지 등의 결제대금을 루블로 받겠다고 공표했다. 지금까지 세계화를 통해 낮아진 무역 관련 거래 비용이 증가해 우리나라, 특히 중소기업에서 많은 어려움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은 1997년 처음 시행됐다. 미국은 이전에 국가안보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외국인, 외국 기업 또는 단체 등을 규제하기 위해 이들을 ‘Entity List(우려거래자 리스트)’에 등재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트럼프 행정부 때 ‘수출통제개혁법(ECRA)’을 제정하여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ECRA는 사실상 미국 내 법이지만, 다른 국가에서 수출할 때에도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소프트웨어, 기술이 들어간 상품을 수출하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미국은 대러시아 ECRA 대상품목의 수출요건을 강화하는 조치들을 발표했다.
FDPR이란 한마디로 적성국이 될 수 있는 국가의 생산력을 약화시켜 전쟁할 수 있는 역량을 줄이려는 미국의 조치다. 지금까지 글로벌 가치사슬(공급망)은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상업적인 목적에 맞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최적화된 제품 설계, 생산 및 무역 구조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4차 산업혁명기의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이 가치사슬에서 제외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미래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미국이 이런 방식을 택하는 건 명확한 의도가 있다. 민주주의에 연대하는 국가들에게만 경제적 협력, 국제 분업에 참여시키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글로벌 산업 구조의 변환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한국의 FDPR 면제를 빠르게 포함한 이유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 구도에서 한국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리는 대결 구도에서 유럽과 러시아의 갈등구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한국이나 일본, 호주 등 비서방 국가의 참여는 명분을 중요시하는 미국에 의미가 아주 크다.
FDPR에서 면제됐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57개 목록에 대해 상황허가를 받도록 하는 개정된 전략물자수출입고시를 지난 3월 26일자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물류 관련 부분들이 불편해진 것이다. 현재 모스크바로 가는 직항이 사라지면서 모든 물류비용이 증가하고, 루블화 변동 폭이 커짐에 따라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금결제 방식 역시 복잡해졌다.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고, 천연가스 판매대금을 루블로만 받겠다고 하면서 거래가 매우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본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에는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앞으로 기업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시적이라도 자금 융통이 가능하도록 대출 등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또한, 이런 피해를 적극적으로 피할 수 없더라도 관리는 가능하도록 기업이 할 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사항을 쉽게 알려주는 다양한 기회와 자리를 마련했으면 한다.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두 나라가 에너지와 식량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비축된 식량과 에너지로 괜찮아 보이지만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와 곡물은 모두 수입품으로, 지금부터 곡물과 에너지 수입선에 대한 긴급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체 무역에서 지난해 기준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 1.6%, 수입 2.8%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는 러시아 수출통제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최대 0.06%p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금융기관에서는 러시아 경제가 국가부도(디폴트) 위기에 빠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 한국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러·우 전쟁의 시나리오에 따라 경제적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그게 어떤 시나리오든 러시아의 비즈니스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미래를 보고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역금융을 좀 더 완화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와의 거래에서 금융결제 방식을 루블화 대신 더 안정적인 원화로 거래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대러시아 제재 조치는 국제사회와 한국으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수출통제는 이미 시행됐고, 더 강력한 제재 조치를 적용할 것이다. 한편 한국은 이에 어느 정도 동참하면서 일정 부분은 국내 상황에 맞게 조율해 진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