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과_식량안보 #WTO_상소기구_제도 #GATT_제11조

글로벌 식량위기와 애그플레이션
지속 가능한 식량안보 해법 모색

전 세계적으로 식량가격 상승과 수급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상이변과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식량위기가 고조되면서 식량보호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애그플레이션(agflation)’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다. 전 세계의 화두가 된 식량안보 문제와 애그플레이션 현상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진행 김광균 기자   사진박충렬

대담자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식품시스템연구부 연구위원
김세진
법무법인 태평양
외국변호사
토론 제시어

#1 애그플레이션과 식량안보

#2 애그플레이션 전개양상과 시사점

#3 향후 전망과 중장기 대응방안

#1 애그플레이션과 식량안보
김종진 연구위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쌀을 제외한 수입 곡물의 가격이 2배가량 올랐다. 곡물은 그 자체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밀가루, 전분당, 식용유 등 식품 소재와 사료로 1차 가공된 후 축산업, 가공식품 등의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재가공돼 소비된다. 국내 가공식품산업 규모가 상당한 만큼 가공식품산업과 외식 물가 및 관련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현재 미·중 분쟁, 코로나19, 전쟁 등 복잡한 국제 정세가 곡물의 자유로운 교역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다수의 수입국이 소수의 곡물 수출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심화된 상황에서 이상기후와 주요국들의 교역 제한이 국제 곡물가격 급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추세에서는 작은 충격도 큰 리스크 요인으로 다가올 수 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기까지 불안한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향후 10년 동안 변동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식량안보 문제를 촉발한다. 자국의 식량가격 안정을 위해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수출규제에 나설 경우 전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감소하면서 추가적인 가격급등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러·우 사태 이후 현재 27개국이 식량 수출제한조치에 나섰는데 이는 전 세계 식량의 17%(칼로리 기준)에 달하는 규모다.

김세진 외국변호사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식량 공급망의 고유한 특징 때문이다. 식량은 필수재인 만큼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조업 공급망과 달리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식량 무기화가 대표적이다. 최근 미·중 갈등을 비롯한 냉전·대결 양상이 심화되면서 식량 무기화에 따른 안보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식량 무기화의 전조증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 정세, 특히 미·중 갈등과 러·우 사태 등으로 인한 세계화 후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능성 대두 등으로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농산물 가격의 급등 자체보다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문제의 핵심으로 봐야 한다.
각국의 곡물 수출제한조치와 식량보호 현상의 상관관계를 놓고 보면 후자가 전자를 가속화하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도의 밀 수출 금지,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금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수출제한조치가 비단 식량안보 문제나 식량가격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공급망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농산물이 팜유, 농기계, 화학물질,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등에 직접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 생산량 감소, 러·우 사태로 인한 식량유통 차질, 경제 제재에 따른 연쇄작용 등의 영향도 크다.

최근 미·중 갈등을 비롯한 냉전·대결 양상이 강화되면서 식량 무기화에 따른 안보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식량 무기화의 전조증상으로 보인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 (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 급등이 일반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2 애그플레이션 전개양상과 시사점
김종진 연구위원

국제 곡물 시장은 과거 몇 차례 위기를 경험했다. 1970년대에는 석유 무기화에 이은 식량 무기화 논란으로 식량자급의 중요성이 강조됐으나 2000년대 이후 농업 경쟁력이 열위인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왔다. 그 과정에서 기상이변, 신흥국 식량수요 증가, 세계경제 위기 등과 맞물려 국제 곡물가격의 급등락으로 이어지면서 잦은 위기를 초래했다. 국제 곡물가격은 세계 경기, 원자재 가격 등 세계경제 상황과 동조화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으며, 기상이변과 더불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 등에 의해 가격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애그플레이션은 특히 저개발 국가의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저개발국가들은 수출제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들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수입선 다변화, 생산 촉진, 비축 등 공급망 강화에 나설 것이다. 다만 최근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곡물수출 재개와 더불어 유가하락, 세계경기 침체 등의 요인으로 단계적으로는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세진 외국변호사

과거 몇 차례 나타났던 애그플레이션은 바이오에너지의 사용량 증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육류 소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냉전, 보호주의, 반자유주의 등 국제정치적 원인이 추가됐다. 냉전 종식 이후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토대에서 만들어진 글로벌 가치사슬이 해체 혹은 재편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가운데 지금의 애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자유주의 시장질서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분쟁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WTO 상소기구의 마비로 개별 무역분쟁 사안마다 달리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해외농업 개발을 통해 곡물 확보에 나선다거나 수입선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 세계화 내지 자유주의 질서를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리라고 본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MC12)에서 식량안보 대응 관련 의제를 각료선언으로 채택한 것도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특A히 저개발국가의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므로 이들 국가는 수출제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들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수입선 다변화, 생산 촉진, 비축 등 공급망 강화에 나설 것이다.
WTO 상소기구 제도
WTO 분쟁해결제도는 패널, 상소기구의 2단계로 이뤄져 있으며 상소기구는 최종심이다. 당사국 간분쟁의 ‘조정’ 및 ‘협상’ 기능을 도울뿐 실질적인 협정상 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기능을 갖추지 못한 GATT 분쟁해결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재는 미국이 WTO 상소기구 위원 임명을 지속적으로 저지함에 따라 2019년 12월 11일 자로그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3 향후 전망과 중장기 대응방안
김종진 연구위원

산업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분야는 축산업과 가공식품산업이다. 육류 등 축산물 가격은 입식·출하 시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료가격 변동성을 축산물 가격에 전이시킬 수 없다. 또한 원료가격 인상분을 단기간에 반영할 수 없는 가공식품 및 외식업계도 한동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07~2008년 애그플레이션을 계기로 국제 곡물 조기경보시스템 중심의 국제 곡물 시장 위기대응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국내 생산·공급 확대, 해외농업 개발, 국가곡물조달체계 구축 등 세 가지 축으로 위기 시 대응수단을 마련하고 경보시스템이 위기 징후를 탐지하면 단계별 대응에 나서도록 한 체계다. 하지만 수익성, 농업 자원 등의 한계로 국내 곡물자급률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고, 해외농업 개발과 국가곡물조달체계 구축사업 역시 국제 곡물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인 2010년대 중반 이후 정책추진 동력이 떨어지면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단기적으로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우선시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세 가지 대응체계를 강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김세진 외국변호사

국제 곡물가격 상승이 식품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여타 요인에 비해 훨씬 크고 국내 물가 상승의 주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와 있다. 또한 국내 식료품과 외식 물가 오름세가 크게 확대됨에 따라 관련 지출 비중이 큰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말씀하신 대로 단기 또는 중장기적 정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농업인이나 식품 및 외식업계의 부담 완화를 위한 금융·세제 지원과 할당 물량 확대와 같은 수급 안정 지원이 요구되며, 중장기적으로는 쌀 소비 활성화 및 수급 균형 달성, 곡물 자급률 제고 등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WTO를 중심으로 한 통상 메커니즘의 복원과 기존 규범들의 적극적인 활용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수출 규제의 경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GATT) 11조에 따른 수량 제한의 일반적 폐지라든가 WTO의 농업에 관한 협정 12조의 수출 금지 및 제한에 관한 조항 등을 잘 활용함으로써 통상분쟁 제기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 있다. 지난 20~30년간 확립된 기존 질서를 활용하는 동시에 현재 정세를 고려한 현실적인 조치를 동시다발적으로 취해나가야 한다.

WTO를 중심으로 한 통상 메커니즘의 복원기존 규범들의 적극적인 활용이 중요하다. 지난 20~30년간 확립된 기존 질서를 활용하는 동시에 현재 정세를 고려한 현실적인 조치동시다발적으로 취해나가야 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
GATT 제11조는 관세, 세금 및 기타 과징금의 형태로 취해지는 조치 이외에 제품의 수출입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행해져서는안 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수입·수출에서 수량 제한 시 시장의 가격 기능이 정지되고, 관세보다 쉽게 무역 제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있다는 점 때문에 특별한 예외 사항이 아니라면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