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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량위기와 대한민국 식량안보 강화 전략

세계 식량가격 상승과 공급불안 현상이 심상치 않다. 경제이론상 국제무역은 자유로운 시장을 통해 수요에 부합하는 상품과 원자재의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 기상이변과 함께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식량자원 보호주의 현상은 이 기대를 무너뜨리고 국제 식량 시장과 공급망을 크게 교란하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사진한경DB, wto.org

지난 7월 23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 항만을 통한 곡물 수출을 재개하는 데 합의하면서 세계 식량가격이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사진은 지난 8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지역에서 밀을 수확하는 모습.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식량가격지수1)는 지난 3월 최고치인 159.7포인트를 기록한 후 4개월 연속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2008년 글로벌 식량위기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 평균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149.7로 2019년도 평균 가격지수인 95.1 대비 57.4%나 오른 상황이다.
이렇게 세계 식량가격이 크게 오른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부족 때문이다. 세계 식량의 주요 생산국인 미국, 유럽, 호주, 아르헨티나, 중국 등 세계 전역에서 대규모 산불, 폭염과 홍수 등 극심한 자연재해로 식량생산이 줄어들었다. 반면에 세계 인구의 증가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경제국의 경제발전 및 소득증대에 따라 식량수요와 축산물 생산을 위한 사료용 곡물 수요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의 지속으로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식량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원활한 운송과 물류 유통에도 차질이 생겼다. 게다가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 여파까지 더해 식량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1)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996년부터 24개 주요 농산물에 대한 국제가격 동향을 조사해 5개 품목군(곡물, 유지류, 육류, 유제품, 설탕)별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작성, 발표(2014-2016년 평균=100)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실화

더욱이 코로나19와 러·우 사태 장기화, 이상기후 등으로 식량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자원 보호주의가 인도, 필리핀, 이집트, 헝가리, 카자흐스탄, 알제리 등 신흥국과 개도국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2022년 7월 말 기준 32개 국가에서 자국민을 위한 식량확보와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53개 식량 관련 품목에 대해 수출금지, 수출제한, 수출세 부과 등의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식량작물뿐만 아니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베트남 등은 비료 수출도 금지시켰고, 전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팜유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최근에는 석유 등 에너지와 비료 등 농자재 가격도 상승하는 등 식량 생산을 위한 환경은 점점 악화일로에 있어 국제 식량가격은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여러 요인에 의해 글로벌 식량부족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식량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견인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다. 유로모니터 추정치에 따르면 2022년 세계 평균 물가상승률은 7.9%로 199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예측됐다.
또한 국제적으로 식량(특히 곡물) 교역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수출이 일부 국가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에 수입은 많은 국가로 분산되는 공급 과점적 시장이라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농산물 무역이 자유화되면서 식량 생산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 생산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 작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상위 5개 수출국의 수출 점유 비중이 2021년 기준 쌀 79%, 밀 63%, 옥수수 88%, 콩은 97%에 달한다. 이와 같이 세계 곡물 공급이 소수 수출국에 집중돼 있기에 일부 수출국의 공급 불안정이 바로 국제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직결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식량안보가 국제 문제로 부상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농경지 감소 및 물 부족 등의 여건은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요 식량 수출국들의 기상이변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글로벌 식량위기 문제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식량안보 확보가 각국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12차 WTO 각료회의에서도 세계가 직면한 식량위기 이슈가 주요 의제로 부상했고, 이에 대한 WTO 차원의 대응 노력 차원에서 식량안보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대한 각료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농산물 교역 원활화와 글로벌 농식품시스템 회복력을 위한 불필요한 수출제한조치를 자제하고, 식량안보를 위해 각국이 긴급조치를 취할 경우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시행하기로 약속했다. 또 WFP가 인도적 원조를 위해 구매하는 식량에 대해서는 수출제한조치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식량안보 관련 WTO 각료선언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러·우 사태로 촉발된 식량부족과 가격폭등 현상이 글로벌 경제위기와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공통된 인식에 따른 것이다. 다행히 최근 세계 식량가격이 우크라이나 수출재개와 주요 생산국 수확 개시, 전 세계적 수입 수요 둔화 등에 따라 간신히 안정을 되찾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주요 곡물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지역 국가들의 극심한 가뭄 등 이상기후로 식량공급 부족과 가격상승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도 식량위기가 주요 의제로 부상해 ‘식량안보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대한 각료선언문’을 채택했다.
국내 주요 곡물 재고율 취약

어느 국가에서나 식량은 공산품과 달리 국민의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는 중요한 원천으로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다. 실제 식량안보 확보는 국가이익과 생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식량자급 능력이 충분하고, 해외로부터 효과적인 식량조달 능력이 있는 국가의 경우 식량위기 발생 시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식량위기에 봉착하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공산품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급등할 때 소비를 조금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식량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비를 늦출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이것이 바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안보문제로 간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글로벌 식량위기가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020년 기준 20.2%로 미국(120.1%)은 물론 일본(27.3%)에도 크게 못 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5년 동안 쌀 자급률은 92~105%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밀, 콩, 옥수수 등 다른 식량작물의 자급률은 0.5~9.4%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밀, 옥수수 등 사료곡물의 수요가 계속 증가하면서 매년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사료곡물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1970년 80.5% 수준에서 2020년 20.2%로 지난 50년 동안 60%포인트나 크게 하락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특히 곡물자급률)이 크게 감소한 주요 원인은 농지면적 감소, 쌀 이외 다른 곡물의 생산 정체, 축산업 성장에 따른 외국산 사료곡물의 수입증가 때문이다.
위와 같이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세계적 식량가격 급등이나 식량공급이 부족한 비상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정 물량을 비축해 부족량을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곡물 재고율은 글로벌 식량위기에 매우 취약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2020년 기준 주요 4대 곡물 재고율은 쌀 23.7%, 밀 16.0%, 콩 8.2%, 옥수수 6.7% 수준으로 쌀을 제외하고는 세계식량기구(FAO) 권장 재고율인 17~18%를 크게 밑돌고 있다.
세계 7위권의 대규모 식량수입국이자 식량자급률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식량안보 확보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한 국정과제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식량자급능력 제고 노력과 함께 해외조달 능력 향상이 동시에 추진돼야 할 것이다. 국내 생산 여건상 필요로 하는 모든 식량을 완전 자급하기는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강화 전략은 크게 ‘식량자급능력 제고를 위한 국내 생산 및 소비기반 확충’, ‘수입선 다변화 및 해외농업개발 활성화 등 안정적 해외조달시스템 구축’, 그리고 ‘비상사태에 대비한 효과적 식량재고 비축제도 운영’ 등으로 구분해 체계적인 대책 수립이 요청된다.

곡물 수출 상위 5개국 점유율(2021년 기준)
옥수수
 79%  63%  88%  97%
우리나라 곡물별 식량자급률 추이(사료용 포함)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생산기반 강화를 통한 식량자급능력 제고다. 식량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식량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기후변화 등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 식량의 생산기반 정비를 통해 안정적인 생산과 적절한 수준의 국내 자급 기반을 유지하고, 꾸준히 식량자급 능력을 제고해나가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식량자급 능력이 높을수록 국제 식량위기나 곡물가격 폭등과 같은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곡물 재고율 (2020년 기준)
옥수수
23.7% 16% 8.2% 6.7%

둘째, 효율적인 해외조달시스템 구축이다. 경지면적이 적은 국내 농업 여건상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전량 국내에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수입이 불가피한 곡물을 해외에서 안정적·효율적으로 조달하고, 공급하기 위한 전략과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은 데 비해 경지면적이 적어 곡물 수요의 상당한 부분을 해외조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식량자급률 향상 노력과 함께 효율적인 해외조달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해나감으로써 식량안보 체계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미국·아르헨티나·브라질(옥수수), 우크라이나·캐나다(밀),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대두) 등 일부 국가에 집중된 우리나라의 곡물 수입선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제 공개경쟁 입찰거래 의존도가 높은 현행 곡물 수입방식을 선물거래, 수출국과의 중장기 계약거래 등으로 다각화해 국제 곡물 시장의 불확실한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셋째, 비상 대비 효과적 식량 재고비축제도의 운영이다. 국내 흉작 혹은 해외조달이 원활하지 못해 공급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곡물별로 국내에 일정한 물량을 비축해 부족량을 보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단기적인 식량부족 사태에 대비해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주요 식량의 재고 비축제도의 효과적 운영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쌀 이외에 보리, 밀·귀리·호밀 등의 맥류, 콩을 포함한 두류, 그리고 옥수수 등 사료용 곡물까지 재고 비축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적정 수준의 물량도 비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행 우리나라의 식량 비축제도는 쌀 비축 위주이며 밀, 콩 등 주요 식량의 비축 인프라가 부족하다. 특히 옥수수 등 사료용 원료 비축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나 정책적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글로벌 곡물수급 비상상황이 있을 때마다 사료용 곡물 비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는 있으나 현재까지 도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상황과 러·우 사태는 작황이나 가격에 의한 기존 곡물수급 위기 상황과는 다른 물류 차질이나 항만 파업 등의 요인에 의해 식량공급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 식량공급의 불확실성 증대와 불균형한 국제 식량 수급구조로 인한 식량부족 및 식량가격 급등 가능성은 우리나라와 같은 대규모 식량수입국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다. 식량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다 강화된 식량안보 체계 구축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정책목표이자 해결과제다. 식량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국민에게 공급하지 못하거나 식량을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생존 및 안보적 차원에서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가의 식량안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 전략과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꾸준히 실행해나가는 것이 요청되는 이유다. 앞으로 지속적인 식량자급 능력의 향상 노력과 함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해외조달 능력 제고, 그리고 유사시에 대비한 효과적인 식량비축제도 마련을 통해 국가 식량안보 체계를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