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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의 노동 리스크와 통상

권오성 성신여대 지식산업법학과 교수, 변호사 사진 한경DB

국제통상과 관련해 노동문제가 실질적인 규범을 이루고 분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엄격하게 보면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협정은 체약국 간 문제이므로 개별 기업이 직접 통상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을 보면 통상협정이 개별 기업의 차원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통상협정이 언급하고 있는 ‘강제노동 금지’나 ‘단결권 침해’ 등 국제노동기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부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105호 협약 비준 추진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ILO 기본협약 이행을 위한 국제노동기준에 관한 연구에 대한 입찰’을 공고했다.

국제사회에서 노동문제가 통상문제로 확대되는 경향은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국가가 주도하는 FTA에서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통상규범화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시도는 최근에 이르러 미·과테말라 간 최초의 FTA상 노동분쟁과 한·EU 간 노동분쟁,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체결 등을 통해 무역-노동 연계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특히 멕시코는 2018년 11월 USMCA 체결에 앞서 2018년 9월 ILO 제98호 협약을 비준했고, 이 협정 체결 이후에는 USMCA 제23장 및 동 부속서의 내용에 따라 법을 개정했다. 멕시코의 2019년 연방노동법 개정의 주요 내용으로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조항 추가,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을 하는 외에 사법부에 속하는 노동법원의 설치를 포함한 새로운 노동분쟁해결 제도의 도입 등이 있다.

‘한·미 FTA’와 ‘한·EU FTA’에 무역-노동 연계

우리나라는 미국, EU와 각각 체결한 ‘한·미 FTA’ 제19장(노동)과 ‘한·EU FTA’ 제13장(무역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노동과 관련된 체약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들 협정은 노동조항으로서 광범위한 실체적 의무를 협정당사국에 부과하고, 그러한 의무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체약국은 입법·행정·사법 작용 전반에 걸쳐 노동조항이 부여하는 실체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특히 ‘한·미 FTA’는 노동조항 이행과 관련한 분쟁도 최종적으로는 일반 상사분쟁과 동일하게 중재절차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벌과금’과 ‘특혜관세 철회’를 선택 가능한 구제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한·EU FTA’는 노동조항에 대한 분쟁은 독자적인 해결절차에 따라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한·미 FTA’와 달리 ‘벌과금’과 ‘특혜관세 철회’ 등의 제재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고, ‘한·EU FTA’ 제13.4조 제3항 제1문과 제3문의 이행에 대한 ‘조언(advice)’ 또는 ‘권고(recommendation)’가 포함될 수 있고, 권고가 포함된 경우 협정당사국 정부 간 기구인 ‘무역과 지속 가능한 발전위원회’가 권고의 이행 여부를 감독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한·미 FTA’와 ‘한·EU FTA’ 노동조항의 내용을 보면 두 협정 모두 당사국이 각자의 국내 노동관계법을 실효적으로 집행(effective enforcement)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1998년 ILO 선언’ 등 국제문서를 인용하며, 그 기준에 따라 체약국의 법령을 제정·유지하고 관행도 그에 부합하도록 하는 ‘입법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일단 입법했다면 무역·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해당 법령의 노동권 보호 수준을 약화시키지 않을 ‘역진방지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의 경우에는 사법(司法)절차를 통한 노동권의 보장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한·EU FTA’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의무를 두고 있다.

국내 기업의 공급망을 둘러싼 노동 리스크

엄격하게 보면 FTA 등 통상협정은 체약국 사이의 국가 간 문제이므로 개별 기업이 직접 통상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통상협정이 개별 기업의 차원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USMCA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USMCA의 전문(preamble)은 노동권의 보호 및 집행, 노동조건의 개선, 노동문제에 관한 당사국의 역량과 협력 강화의 증진을 동 협약 체결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노동에 관해 별도의 장(제23장)을 두고 그 본문과 부속서(Annex 23-A)에서 노동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USMCA 제23.3조 1항은 각 당사국은 ‘노동에서의 권리와 기본원칙에 관한 ILO 선언’에 규정된 노동권을 각국의 법령과 그에 따른 실무로 채택·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러한 노동권으로 같은 항 각호에서 (a)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와 단체교섭권(right to collective bargaining)의 실효적 승인 (b)모든 형태의 강제노동 철폐 (c)아동노동의 실효적 폐지 및 이 협정의 목적상 열악한 방식의 아동노동 금지 (d)고용과 직업에 관한 차별 철폐를 열거하고 있다. 또한, 같은 조 2항은 각 당사자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수용할 수 있는 근로조건을 규율하는 법령 및 이에 따른 실무를 채택·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제23.6조 제1항은 당사국은 강제 아동노동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 철폐라는 목표를 승인하고, 따라서 각 당사국은 강제 아동노동을 포함해 강제노동을 통해 전체적·부분적으로 생산된 상품을 자국의 영역으로 수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동조 제2항에서는 제1항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당사국은 USMCA 제23.12조 제5항(c)의 규정에 따라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식별 및 이동을 위한 협력을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USMCA 협정당사국인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어떤 상품의 생산·가공·수선 과정 중 ‘강제노동’이 활용된 경우 해당 상품의 수입을 금지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특히 USMCA 제23.6조는 사전에 별도의 분쟁해결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수입금지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무역 제한의 효과가 더 크다.
한편,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제19.7조는 각 회원국이 자국 기업들에게 노동 이슈에 관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니셔티브를 채택하도록 장려할 노력 의무를 규정해 노동문제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하는 관행의 확산을 위한 선언적 조항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FTA의 노동조항이 개별 기업을 직접 규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통상협정이 언급하고 있는 ‘강제노동 금지’나 ‘단결권 침해’ 등 국제노동기준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이를 준수하는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직접적인 통상규범은 아니지만 2022년 2월 23일 발표된 ‘기업 지속가능 실사 지침(Directive on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안이 실제 입법에 이르면 유럽 기업은 물론 유럽에서 활동하는 해외 기업이나 이들 기업과 거래하는 전 세계 기업의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위 지침안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 중 상당수는 동 지침에 따라 입법된 EU 회원국의 관련 법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위 지침안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승인, 그리고 개별 EU 회원국들의 국내법으로의 수용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이미 위 지침안과 유사한 법률을 개별적으로 제정한 상태다. 따라서 EU와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이뤄지는 핵심노동권을 포함한 인권 실사의무(due diligence) 법제(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노동권의 준수를 포함한 ‘인권경영’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실제 국내 노동 이슈로 인한 국가 간 분쟁사례

FTA 노동조항에 관한 최초의 분쟁 사례는 미국의 노동조합 총연합단체인 AFL-CIO와 6개 과테말라 노동조합이 2008년 미국 노동부의 OTLA에 과테말라 정부가 노동 조합·단체교섭 및 수용할 수 있는 근로조건(acceptable conditions of work)과 관련된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과테말라의 CAFTA-DR 노동조항 위반을 주장하고 진정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분쟁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2017년 6월 26일 중재판정 보고서가 공개됐는데, 패널은 미국이 제시한 어떤 사례도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실패, 무역 영향성, 연속성 있는 작위·부작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아 과테말라가 CAFTA-DR 제16.2.1(a)조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 사건 다음으로 FTA 노동조항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한 것은 공교롭게도 ‘한·EU FTA’에 따라 EU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제기한 분쟁이다.
EU는 2019년 7월 우리나라가 한·EU FTA 제13장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전문가 패널의 소집을 요청했다. EU가 제기한 쟁점은 우리나라의 노동법 일부 조항이 “ILO 회원국 지위와 ILO 기본권 선언에서 발생하는 의무에 따라 노동기본권 원칙을 국내법과 관행에서 존중, 증진, 실현하기로 약속한다”는 협정문 조항과 부합하지 않고,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협정문 조항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21년 1월 위 사건에 대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한국과 EU 양국에 제출됐다. 전문가 패널은 EU가 제기한 쟁점에 대해 노동조합법의 일부 개선을 권고하면서도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인정했다. 한편, 당시 시행 중인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법의 일부 규정이 ILO의 결사의 자유 원리를 존중·촉진·실현할 의무에 위반된다는 쟁점에 대해서는 자영업자의 단결권 제한, 조합원의 자유로운 노동조합 임원 선출 제한 등에 EU가 제기한 일부 쟁점을 인정했다. EU와 한국의 노동조항 관련 분쟁은 협정의 노동조항 위반이 공식적으로 선언된 역사상 첫 번째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한편, 위 분쟁은 2018년 미·과테말라 간 CAFTA-DR에 근거해 발생한 최초의 분쟁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생한 노동 관련 무역분쟁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노동문제 대응 위한 국내법 및 관행 정비 필요

국제통상과 관련해 노동문제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국 정부 및 국회가 ILO 기본협약 및 감독기구의 판정례에 따라 국내법 및 관행을 정비하는 것이다. 실제 ‘한·EU FTA’ 노동조항과 무역분쟁은 우리나라의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조합법 개정에 모멘텀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한편, 노사관계의 제도 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노동법 제도의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권 준수를 포함한 ‘인권경영’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른바 ‘ESG’ 경영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