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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역-노동 연계 채널 다양화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 한경DB

무역과 노동의 연계에 관한 미국의 전통적인 접근법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무역협정을 통해 교역 상대국에서의 노동권 보호를 국제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협상에서 기존 FTA 모델과는 차별화된 내용과 규율 방식의 노동기준을 국제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법에 근거해서 노동자 보호 및 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특정국의 강제노동 연계 상품 수입을 직접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는 등 무역과 노동 이슈를 연계하는 데 보다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10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에서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대표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할
새 무역협정인‘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수정안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헤수스 세아데 당시 멕시코 외교차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부총리.
FTA를 통한 전통적 방식의 무역-노동 연계

1990년대에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에서 노동조항을 도입하는 데 실패한 이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등 국제적으로 인정한 노동기준이 FTA에 반영되는 경우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1994년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이행에 관한 북미노동협력협정(NAALC)에 노동자 권리 보호에 관한 조항이 FTA로는 처음으로 포함된 이래 2001년 12월 발효한 미·요르단 FTA부터는 협정 본문에 ILO 선언 등 국제 노동기준을 제시하기 시작했고, 이후 체결된 미국의 모든 FTA부터는 별도의 노동 챕터가 포함됐다. 2007년 5월에 부시 행정부는 신통상정책 발표를 통해 당시 협상이 진행 중이던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과의 FTA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노동기준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FTA는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ILO 선언 등 노동기준을 본문에 명시하고, 노동 챕터에 FTA 일반분쟁해결절차를 적용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노동의무 위반 시 이행부과금 부과, 호혜관세(양허) 정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게 된다. 한·미 FTA의 경우 제19장에 노동 챕터를 두어 노동기준을 규정하고, 노동 챕터가 FTA 일반분쟁해결절차를 적용받도록 했다. 같은 기간에 미국이 타결한 페루, 콜롬비아, 중앙아메리카와의 FTA에서도 노동분쟁이 FTA 일반분쟁해결절차의 적용을 받도록 규정됐다.
그러나 FTA 노동조항은 실행상으로는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FTA 분쟁해결제도에서 제소국에게 요구되는 높은 입증 책임으로 인해 협정 발효 후 노동의무의 이행을 담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해왔다. 2022년 8월 현재 미국이 체결한 FTA 중 노동부가 노동조항의 운영에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경우를 기준으로, 미국 국내적으로 접수된 청원 중에서 노동부 무역노동청(OTLA)이 공식 검토를 진행한 건은 7건에 불과하고 이 중 오로지 한 건(2010년에 미국이 과테말라를 상대로 CAFTA-DR 분쟁해결절차 개시)에 대해서만 미국이 체결한 FTA에 따라 제소가 이루어졌다. 그마저도 2017년 6월 14일에 발표한 최종 패널보고서에서 패널은 미국의 위반 청구를 기각했다. 2020년 7월 1일에 발효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미국이 체결한 FTA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노동의무 및 집행가능성을 규정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IPEF를 통해 새로운 무역-노동 연계 모델의 등장

USMCA 노동기준의 적극적인 활용 외에도,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을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5월 23일에 공식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통해 새로운 무역-노동 연계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IPEF 협상에서는 미국의 주도로 필라 1에서 노동 이슈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노동자·기업·소비자 보호를 보다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예를 들어 지난 2월에 발표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IPEF를 통해 ‘높은 노동기준을 충족하는 무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으며, IPEF 출범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기존 FTA 노동기준이 노동자·기업·소비자를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 뒤 노동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며 IPEF가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미 상무부의 주도하에 지난 3월 10일부터 4월 11일까지 진행된 IPEF에 관한 공공의견 수렴 절차 당시 이해관계자들이 제출한 공공의견은 IPEF의 노동기준이 ①USMCA 수준 ②USMCA 이전의 미국 FTA 수준 ③ILO 국제기준이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지난 5월 23일 IPEF가 공식 출범한 이래 8월까지는 협상범위에 관한 IPEF 참여국 간 논의가 있었으며, 9월부터 IPEF 장관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협상이 개시된다.

IPEF 노동기준 관련 USTR에 접수된 공공의견(예시)
IPEF 노동기준 관련 USTR에 접수된 공공의견(예시)
공공의견 유형 주요 내용
USMCA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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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 노동기준은 특정사업장 노동 신속해결 메커니즘(RRM),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 금지의무 등 USMCA의 강력한 노동기준에 기초할 것을 주장
USMCA 이전의
미국 FTA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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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FTA에서는 노동챕터에 FTA 분쟁해결제도를 적용해 집행가능성 확보, 노동의무 불이행국에 대한 특혜관세양허 정지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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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 노동기준 불이행국에도 협정에 따른 상업적 이익 제공 중단 및 국내 노동보호 수준의 저하를 금지하는 역진금지(라쳇) 조항 주장
ILO 국제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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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의 노동기준은 협상 참가국들의 국내적 상황에 비추어 이행이 가능하도록 현실적이어야 하며, 국제노동기구(ILO)하에서 다자적으로 확립된 국제기준에 기초할 것을 주장
한국의 대외통상정책과 국내 법·제도에 미칠 영향

노동 이슈는 통상 분야를 중심으로 ‘연계(linkage)’ 현상이 향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이슈가 우리나라의 대외통상정책과 국내 법·제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IPEF의 노동기준이 기존 FTA 노동기준의 구성요소 및 규율 내용으로부터 전적으로 이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IPEF를 통해 새로운 노동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고 국내적으로 의회와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는 입장인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기존 무역협정상의 노동기준·모델과 일정 수준 차별성을 가지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기준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 시장에 대한 시장접근(관세양허)이 IPEF의 협상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으므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라 체결·비준된 의회행정협정(지금까지의 FTA)과 달리 미국 국내법적으로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독 행정협정의 형태로 발현될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논의된다. 따라서 TPA나 그 밖의 방식으로의 의회의 승인, 내지는 IPEF 타결 후 국내적 이행입법이 요구되지 않는 노동기준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복잡한 법적·정치적 계산이 미 행정부 내부적으로는 이루어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로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지난 8월 10일 미국 철강노동자연합(USW) 정기대의원대회 연설에서, IPEF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제2의 TPP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기업 책임(corporate accountability)’을 협상에서 강조할 예정임을 암시한 바 있다. 9월 IPEF 장관회의를 시작으로 협상이 본격화될 예정인 가운데, 협상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가 제시하는 구성요소에 대해 미 의회와 미국 내 이해관계자들이 어떠한 입장을 보이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작업이 우리의 협상전략을 구축하는 데에도 유의미할 것이다.
둘째, 미국이 체결한 가장 최근의 FTA인 USMCA는 미국이 체결한 무역협정 중에서는 처음으로 강제노동 결부 상품의 수입금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USMCA의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금지 의무는 미국의 주도하에 타결됐으나 2017년 1월 30일 미국이 국내 비준계획 철회를 발표한 TPP(현 CPTPP) 제19장 노동 챕터에서의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 ‘억제(discourage)’ 의무보다 높은 수준의 의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향후 우리나라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게 될 경우, 한국은 협정 당사국으로서 위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억제 조항을 국내적으로 이행할 의무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다만 USMCA 제23.6조에서와 달리 CPTPP 제19.6조에서는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제한이 WTO 협정 등 국제무역협정에 위반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을 단서로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WTO 협정 등 우리나라가 당사자로 있는 국제무역협정상의 의무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위 의무를 국내법에 반영·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강제노동 사용을 이유로 ‘특정’ 국가나 지역을 대상으로 상품 수입을 제한할 경우 통상법적으로는 차별조치로서 GATT 제1조(최혜국대우의무) 위반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 위반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입제한 조치국 입장에서는 ‘교도소[집단억류, 강제노동 프로그램] 노동상품과 관련된 조치’를 GATT 의무 위반에 대한 예외사유로 인정하고 있는 GATT 제20조(일반예외) 제(e)항을 주장할 유인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GATT/WTO 판정례에 비추어볼 때, 특정 국가나 지역만을 규제대상으로 하거나 제도의 경직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 ‘자의적이거나 정당화할 수 없는 차별’이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향후 CPTPP나 IPEF 등에 따라 강제노동 결부 상품에 대해 일정한 수입규제 의무를 부담하게 되고 국내적 이행 방식에 재량이 인정된다면, 특정 국가·지역을 명시적인 규제대상으로 국내법에 규정하는 것보다는, 강제노동 사용이 문제되는 ‘여느’ 국가에 대해 수입제한조치가 적용될 수 있음을 원산지 중립적으로 국내 법제에 반영해놓은 것이 향후 통상규범과의 합치성 시비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보다 적절해 보인다.
셋째, 미국이 취하고 있는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금지 조치의 핵심은 ‘상류 공급망’에 대한 규제 강화에 있다. 영향권에 속한 기업에서는 자사의 공급망을 지도화하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공급망 관련 데이터를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DB)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특히 투입재 공급업체의 변동이 잦은 경우 자사 공급망의 강제노동 노출 가능성을 수시로 점검하는 항시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해야 하며, 공급업체와 강제노동 요소의 유무에 관해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공급망이 연계돼 있는 우리나라 제조·수출업체가 수입국의 통상-노동 연계 정책으로 인해 부담하게 되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6월 7일 제229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경제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위험의 포착 단계에서부터 위기예방, 위기 시 대응’을 포괄하는 공급망 안정 제도를 마련하고, 수입선 다변화와 생산시설 확충 등 민간 부문의 공급망 안정 노력에 대한 재정·세제·금융·규제 지원을 위해 ‘공급망 관련 3법’의 제·개정을 추진할 계획임을 발표한 바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의 정량적 안정화뿐 아니라 상품 생산과정에서의 강제노동 미사용, ILO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근로자 보호 등 공급망의 ‘정성적’ 안정화를 개별 기업 차원의 노력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확보하기 위한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