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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전환(DX)의 시대,
통상정책의 변화와 대응전략

디지털 통상은 올해의 통상 3대 핵심 이슈 중 하나다.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새 정부 통상전략 중 하나로 디지털 통상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우리가 경쟁력을 보유한 디지털 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디지털 통상 전략의 기본 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코로나의 범유행 이후 글로벌 경제 구조도 디지털 대전환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 중이며 데이터 관련 국제규범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각 나라가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통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산업이 강점인 한국도 자국에 유리한 국제규범 확립에 힘써야 하는 시점이다. 이에 글로벌 디지털 통상 규범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통상정책 변화를 점검해보고 효과적인 대응전략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곽주영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사진한경DB

2020년 11월 15일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회원국들은 제4차 RCEP 정상회의를 마친 후 최종 서명했다. 협정문에는 전자상거래 챕터가 포함돼 있다.

디지털 서비스의 영역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코로나 범유행의 여파로 언택트(untact)가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바야흐로 디지털 대전환(DX)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cloud),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를 통해 ‘디지털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것 —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우리의 비즈니스 환경, 인프라, 문화, 의사결정 과정 등에서 디지털 심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바탕의 교통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으며 회사와 학교에서는 비대면 방식으로 업무와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해외 전자상거래는 여전히 인기이며 디지털 화폐나 가상화폐에 관한 기사는 언론의 경제면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 글로벌 경제 구조의 변화

이에 디지털 서비스 산업 역시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의 디지털 서비스 수출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표 1>에 의하면 2021년 전 세계의 디지털 서비스 수출은 전년에 비해 17.2% 증가했다. 수출액이 가장 많은 곳은 단일 국가로서는 미국, 영국, 중국 순이다. 그러나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국가는 전년 대비 증가율 기준 중국(39.8%)과 우리나라(36.2%)다. 단일 국가로 EU에 속한 독일(21.4%)과 아일랜드(21.2%) 역시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의 교역 증가로 전 세계 국가들이 디지털 무역협정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통적 자유무역협정(FTA)은 주로 상품교역을 확대하기 위해 관세를 인하하거나 국경 간 서비스의 공급 확대,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협력하기 위한 서비스 양허에 집중했다. 전통적 교역은 교역의 흐름이 물류나 거래 계약이라는 형태로 명백하게 파악되지만, 디지털 서비스는 ‘연결성(connectivity)’이 기술적 핵심이라는 점에서 전통적 교역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디지털 무역 협정은 전자결제나 전자송장(e-invoice) 등 디지털 영역이 전통적 거래를 대체하게 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하도록 하자는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그 논의를 출발했다. 이러한 논의는 곧 디지털 서비스의 핵심인 데이터에 대한 논의로 확장됐다. 즉 데이터의 국외 이전, 그리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서버의 현지화 여부가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의 교역을 확대하는 데에 중요한 안건이 됐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많은 디지털 서비스의 소득지와 소비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보통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라고 불리는 글로벌 디지털 서비스 기업은 본사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소재한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천문학적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수입은 본사로 이전된다. 예를 들면 한국의 구글 서비스에서 인앱 결제를 하면 미국으로 결제액이 이전되는 것이다. 이에 2020년 프랑스에서 이른바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세에 대한 논의가 드디어 시작됐다. 어찌 보면 디지털 통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과 미국 아닌 국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GAFA
구글(Google), 애플(Apple),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등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네 개 회사의 머리글자를 합성한 용어.
인앱 결제
스마트폰에서 전자책 같은 유료 콘텐츠를 구매할 때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 같은 곳의 결제시스템을 거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구글 등은 인앱 결제로 이뤄진 구매에 대해 판매금액의 최대 30%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2018년 3월 8일 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멕시코·칠레·페루·싱가포르·베트남·말레이 시아·브루나이 등 11개국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공식 서명했다.
‘따로 또 같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통상 협정

디지털 통상은 현재 ‘따로 또 같이’ 협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 국외 이전과 서버 위치에 관한 국가 간 견해차가 있어서 비슷한 국가끼리 양자 혹은 서너 국가 간 협정을 맺으면서도 다자협력체제가 시도되고 있다. <표 2>에서 제시하듯 가장 먼저 발효된 협정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다. CPTPP는 디지털 전문 협정은 아니지만, 전자상거래에 관련한 조항이 18개가 되고 데이터와 서버에 관한 규정이 있으며 11개국이 가입한 협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CPTPP 발효에 이어 발표된 미국·일본 디지털무역협정(USJDTA)은 디지털 전문 협정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22개 조항에 디지털 관련 통상 이슈가 포함되며 데이터와 서버에 관한 규정뿐만 아니라 온라인 소비자 보호, 개인정보 보호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은 USJDTA의 발효 반년 뒤에 발효됐다. 디지털 전문 협정은 아니지만 18개의 디지털 무역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미국과 정치적·경제적·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무역 상대국과 체결한 조약으로서 디지털 통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제일 잘 반영돼 있다. 현재도 미국이 지향하는 디지털 통상의 정책 방향을 연구할 때는 USMCA가 가장 빈번히 참고된다. USMCA 후 발효되거나 타결되는 협정들은 미국이 아닌 국가가 주도하거나, 미국이 많은 다자 참여국 중 하나로 참여한다.
2020년 12월 8일 발효된 싱가포르·호주 디지털경제협정(SADEA), 2021년의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및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KSDPA)은 모두 싱가포르가 맺은 조약으로 디지털 통상 분야에서 싱가포르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2021년 1월 7일 발효한 DEPA는 싱가포르, 칠레, 뉴질랜드가 참여국인데 최초의 복수국가 디지털 통상 협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DEPA는 기존 디지털 협정을 내용상 진일보시켰다는 평가인데, 특히 디지털 ID, 핀테크와 전자결제, 인공지능, 전자무역 등 주요 디지털 산업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했다. 예를 들면, 디지털 ID는 상호운영이 가능한 디지털 형태의 개인 신분이나 법인의 증명을 협정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능하도록 추진했으며 핀테크도 해당 기업 간 협력 및 솔루션 개발을 장려하고 핀테크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협의했다.
2021년 12월 15일 타결한 KSDPA는 우리나라로선 첫 번째 디지털 협정이자 싱가포르가 참여한 디지털 관련 협정으로서는 네 번째다. DEPA에서 협의한 내용을 심화하는 동시에 범위를 넓혔으며 온라인 소비자 보호, 개인정보 보호 등을 규정했고 전자적 전송물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현재의 관행을 유지하기로 했다.
2022년 2월 2일 발효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을 제외한 핵심 무역 상대국이 대다수 참여한 무역협정인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조항이 있고 중국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특이점이 있다. RCEP은 전자상거래 챕터를 포함해 CPTPP처럼 자유로운 데이터의 이전을 그 내용에 넣었는데 국가의 안보와 이익에 중요하면 이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유보조항이 있기에 내용상 상대적으로 느슨한 구조다. 중국은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반대하지만, RCEP 참여국들이 중국에도 매우 중요한 무역대상국이며 구속력이 느슨한 데이터 협정에 참여하는 것이 향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리고 최근 2022년 5월 23일 공식적으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서도 필러1(무역)에 디지털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14개국이 참여한 IPEF에서 언론이 가장 많이 주목하는 것은 공급망 필러지만 사실 디지털도 매우 중요하며, 참여국은 계속 협의하고 있다.

디지털 통상 협정
인터넷 등 전자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국가 간 교역에 대한 무역규범으로서 전자상거래 원활화, 디지털 비즈니스 활성화, 디지털 제품 무관세 및 비차별 대우, 소비자 보호 및 사이버 안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DTA(Digital Trade Agreement), DEA(Digital Economy Agreement), DPA(Digital Partnership Agreement), DEPA(Digital Economy Partnership Agreement)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미국·중국·EU·일본의 디지털 통상 정책 변화

세계의 모든 국가가 자국에서 미래 산업인 디지털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정치 제도와 경제적 이념,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의 차이 때문에 국가 간 디지털 정책은 많은 차이를 보이며, 디지털 통상 정책 기조 역시 차이가 있다(<표 3> 참조).

미국의 경우, GAFA를 비롯해 글로벌 디지털 서비스 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경제 정책도 철저히 시장 중심이며 국가안보나 국방을 제외하고는 데이터의 자유로운 국외 이동을 지지하고 있다. 사생활 보안에도 연방정부 차원의 법규범은 없고, 주법에 일임하는 등 자유로운 입장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국가 주도로 디지털 경제 정책을 만들고 있으며 데이터의 국외 이동을 규제하고 있고 데이터의 현지화를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다. 즉 데이터 보호주의 입장을 일관적으로 취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서비스도 차단하고 있다. 데이터 3법(네트워크안전법·데이터보안법·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해 사생활에 대한 보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EU는 규제 기조의 디지털 경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U 지역 내에서는 데이터의 이전이 자유로우나 지역 밖으로의 데이터 이동은 매우 까다롭다. EU의 개인정보보호 규범인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은 데이터와 사생활 보호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실행하고 있고 만약 침해당한다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은 고도의 데이터 유통 자유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과 개방도 높은 디지털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일본은 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 Pacific Economic Community)의 디지털 협의인 국경 간 프라이버시 룰(CBPR; Cross-Border Privacy Rules)을 도입하고 GDPR과 상호인정을 받는 등 데이터 유통 자유화를 추진하면서도 개인정보와 데이터의 보호 수준을 높이 견지하고 있다.

데이터 3법
네트워크안전법, 데이터보안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세 가지 법률을 통칭한다. 데이터 3법의 핵심은 정보기술(IT)·금융·유통 등 산업 전반에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 문턱을 낮추자는 것이다.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EU 회원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2016년 제정돼 2018년 시행됐다. 정보주체의 권리와 기업의 책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GDPR은 EU 내 사업장을 운영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등을 통해 해외에서 EU 주민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GAFA라고 불리는 글로벌 디지털 서비스 기업은 본사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소재한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천문학적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수입은 본사로 이전된다.
디지털 강국 한국, 한·싱가포르 DPA 시작

위에서 각국의 디지털 통상 전략을 소개했는데, 우리나라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전한 데이터 이전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디지털 산업의 선도국으로서 KSDPA에서 보여주었듯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 협력을 실행하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데이터 관련 정책은 데이터 규제 수준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사생활 보호에 대한 규제 수준이 높다.
데이터의 국외 이전과 서버의 현지화, 디지털 사생활 보호 수준의 차이로 국가 간 입장 차가 커서 다자 협정은 단시간에 이루어지기가 힘들 전망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디지털 통상 네트워크를 확대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조건의 국가들과 양자 조약부터 체결하는 것이 스마트한 전략이다. 디지털 협정의 내용을 보면 계속 내용이 심화하고 범위가 커지고 있다. 즉 협정의 콘텐츠가 양적·질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국제 협정 체결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 이와 같은 행보를 보인 싱가포르는 디지털 협정의 중심이 됐다. 우리는 KSDPA에서 양자 협정을 시작했는데, 앞으로 더욱 많은 협정을 선제적으로 주도해 우리 기업과 산업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