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지털 통상에서는 노동·자본·토지보다 데이터가 더 중요한 생산요소다. 기존 무역 규범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수많은 영역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디지털 규범 확립은 가장 중요한 신통상 이슈로 손꼽힌다.
지난 6월 열린 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전자적 전송물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모라토리엄’ 연장안이 채택됐다. 전자적 전송물 무관세 모라토리엄(조치)은 1998년 WTO 제2차 각료회의 전자상거래 선언의 일부로 채택된 이후 각료회의 때마다 지속적으로 연장돼왔다. 하지만 최근 이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주요 글로벌 통상 이슈로 부각됐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들은 모라토리엄의 연장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모라토리엄으로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관세 부과가 제한돼 개도국의 세수 손실이 막대하다는 점에서다. 반면 모라토리엄 연장을 지지하는 회원국들은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교역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통상이 확대되면서 통신 인프라가 더욱 중요해졌다. 급증하는 수요로 통신 인프라 구축·유지에 막대한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콘텐츠 사업자와 통신회사가 망 이용에 대한 비용부담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유다. 현재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망 이용 대가를 두고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망 이용료를 부과하면 이 비용 부담이 곧바로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전체 데이터 트래픽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이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나머지 기업이나 개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다.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은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통상 규범이다. DEPA는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 3국이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체결했다. 디지털 무역의 이정표로 불리는 DEPA는 디지털 경제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고 규범화 방식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기존 협정들은 디지털 무역을 자유무역협정(FTA) 내 한 챕터 형식으로만 다룬 반면 DEPA는 디지털 경제 분야만 다룬 세계 최초의 복수국가 간 디지털 무역 협정이기도 하다. DEPA는 앞으로 회원국을 확대할 수 있도록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으며, 한국은 DEPA에 가입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DEPA는 내용 측면에선 전자상거래 같은 무역협정 성격을 넘어 인공지능(AI) 등 새로 등장하는 기술에 대한 윤리적 원칙과 표준에 대한 국가 간 협력 증진을 내세운다.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 자유화와 데이터 설비의 현지화는 디지털 무역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분야다. 디지털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국경 간 데이터의 원활한 이전을 보장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컴퓨팅 시설의 현지화 요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국 소비자와 기업을 보호하고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적절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국가들도 있다. 이 두 문제는 현재 글로벌 디지털 무역 규범 수립의 대표적 쟁점이다.
디지털세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이 본사가 속한 국가뿐 아니라 실제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하는 국제조세규약이다. 당초 다국적 IT 기업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 고정사업장을 두고 조세를 회피하자 이를 막기 위해 도입이 추진됐다. 기존 국제조세 기준에 따르면 물리적 고정사업장이 위치한 국가에서만 기업에 과세가 가능했다. IT기업의 경우 서버 소재지를 고정사업장으로 분류한다. 국경을 초월해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 사업을 운영하는 글로벌 IT기업은 적절한 과세가 이뤄질 수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는 지난해 10월 10차 총회에서 필라1(매출발생국 과세권 배분)과 필라2(글로벌 최저한세 도입)로 구성된 디지털세 관련 합의안을 발표한 후 후속 논의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