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의 에너지 안보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에너지 자원 부국들은 연료를 무기로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는 의미다. 이제 에너지 관련 정책은 자원정책을 넘어 안보정책이자 경제정책, 통상정책을 아우른다. 에너지 안보를 △신냉전 △에너지 수입 급증과 무역적자 △화석연료 퇴출 △원전 회귀 △신통상전략 등 5가지 측면에서 살펴봤다.
에너지 안보가 전 세계적으로 중요 가치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천연가스를 중심에 두고 미국, 유럽 등 자유주의 국가와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대립을 의미하는 ‘신냉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시작을 언제로 볼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난해 발발한 러·우 사태를 기점으로 신냉전 체제가 공고화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천연가스와 석탄 등 화석연료 공급을 러시아에 의존해온 유럽이 미국과 중동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석유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러시아와의 관계를 줄여가고 있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을 무기화한 러시아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러시아는 석유가격 상한제에 강력하게 반발해 상한제 동참 국가에는 원유를 수출하지 않고 중국과 인도 등의 수출처를 확보해 맞대응하고 있다.
신냉전 체제 강화로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등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요동치자 이는 고스란히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상승한 에너지 가격만큼 우리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반면 수출액은 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는 472억3,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이 전년보다 784억 달러 늘어난 1,908억 달러에 달했다. 화석연료 가격이 전년 수준을 유지했더라면 지난해 무역적자가 아닌 3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봤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에너지 안보가 단순히 자원정책이 아닌, 무역·통상 정책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통상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올겨울 공공부문의 에너지 사용량을 10% 절감하는 목표를 내세우는 등 ‘에너지 절약’을 무역수지 개선 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신냉전 체제에서는 에너지 자립도와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저감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을 줄여온 화석연료는 특정 지역, 특정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 무기화가 쉬운 만큼 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겨울을 앞두고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자 극심한 에너지난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임시로 석탄 발전을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분쟁으로 뼈아픈 교훈을 얻은 유럽 국가들이 앞으로 화석연료 퇴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 역시 2050년까지 석탄 발전을 완전 퇴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서 앞으로 액화천연가스(LNG)의 발전 비중도 줄여나간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12일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발 에너지 공급난을 겪으며 원전을 실질적인 대안으로 보고 원전 회귀를 선언했다. 영국 역시 원전을 추가 건설하고 원전 발전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가겠다는 입장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마저 원전 운영기간을 늘리는 정책을 발표하는 등 원전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때 원전 비중을 줄이는 에너지 정책이 전 세계의 주류였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유럽과 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중동과 아프리카까지도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신규 원전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신냉전 체제가 공고화되고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등 자원의 중요성이 날로 크게 부각하면서 ‘신통상전략’이 우리의 새로운 활로로 떠오르고 있다. 신통상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규범 체제가 약화하고 지역별·국가 간 거래와 협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선진국의 자국우선주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핵심 원자재의 수급처 다변화로 수급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시장과의 협력을 늘려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캐나다, 필리핀, 모잠비크 등 자원 부국과 양자 공급망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지역 등과는 원전수출, 수소·재생 에너지 분야 포괄적 에너지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통상 네트워크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