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y

글로벌 바이오헬스 산업을 선점하라

양보혜 데일리메디 기자

바이오헬스 시장 선점 경쟁의 막이 올랐다.
글로벌 제약사들과 바이오벤처, 각국 정부가 합종연횡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부터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헬스 산업을 3대 신산업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로 K-바이오가 세계시장에서 각광받으며 그동안 국내 제약산업이 써온 전략방향을 ‘캐치업(Catch-up)’에서 ‘리딩(Leading)’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 기술 혁신이 뒷받침되면서 전통적 제약사 외에도 통신, 인터넷 기업들이 바이오헬스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 글로벌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제네릭(Generic)에서 신약개발로 국내 제약업계 체질 개선

바이오헬스 산업의 성패는 기술과 자본이 집약되는 ‘연구개발(R&D)’이 좌우한다. 1개의 신약개발에 최소 10년, 10억 달러 내외 자금이 소요되지만, 성공한다면 확실한 이익이 보장된다. 실제 미국 제약사 애브비가 개발한 관절 류머티즘 치료제 ‘휴미라’는 연간 매출 20조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 국내 건강보험 총 약제비 18조 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휴미라가 2016~2019년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특허제도’가 한몫했다. 특허는 발명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더 많은 기술발전, 나아가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전에는 제약산업 육성을 명목으로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느슨하게 보호해왔다.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제네릭의약품(합성의약품 복제)을 개발, 판매하며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2007년 6월 한미 FTA 체결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제약업체들은 제네릭의약품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조조정하게 됐다. 그 이유는 FTA 규정에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권자를 보호하는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특허기간이 존속하는 동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해 제네릭의약품의 출시를 막는다.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제네릭의약품이 판매되지 않도록 허가 단계에서부터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특허기간 중 제네릭의약품 허가를 신청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특허권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미국 제약사가 국내 제약사의 허가 신청 제네릭의약품이 특허침해에 해당한다고 여겨 소송을 제기하면 허가절차는 자동 중지된다.
신약 출시 비중이 낮은 국내 제약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여 한미 FTA 시행 시 제네릭의약품 출시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실제 11개 국책연구기관 분석에 따르면 제네릭의약품 시판이 9개월 지연될 경우 제약업체의 기대매출 손실은 367억~794억 원으로 추정됐다. 제품 출시 지연으로 인한 손실은 물론 소송비용 증가 가능성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허가특허연계제도와 함께 도입된 ‘우선판매품목허가’는 기회로 작용됐다. 특허 회피에 성공한 최초 허가 제네릭의약품에 대해 12개월간 독점판매 기간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우려와 달리 새로 도입된 두 제도는 국내 제약산업 및 보건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리지널 특허권자의 제네릭의약품 판매금지 신청이 많지 않았고, 우판권 획득이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점부터 국내 제약업계는 제네릭 의존도를 낮추고 신약개발을 위한 R&D 역량을 강화하는 등 체질개선에 나섰다.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시장을 확장했다.

빅데이터, ICT 등과 융합한 바이오산업이 대세

산업계의 변화와 함께 바이오헬스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 성장기를 맞았다. 이제까지 패턴화된 표준적 의료 서비스가 주를 이뤘지만,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 정밀의료가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빅데이터는 환자 맞춤형 치료는 물론 특정 질환을 타깃으로 한 의약품・의료기기 개발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유전자 분석 및 정보통신기술(ICT) 등의 발전이 의료 패러다임 변화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다. 실제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유전체 분석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2003년 26억 달러, 8년이 소요됐다면, 2017년에는 1,000달러 이하, 48시간으로 단축됐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환자 개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치료 및 질병 예방이 가능하다. 사물인터넷(IoT)・센서 발달로 일상 속 건강 데이터 확보가 쉬우며, 이 과정에서 모인 빅데이터는 클라우드・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공유된다. 인공지능(AI)은 빅데이터를 분석・해석해 질병 치료전략 수립, 신약후보물질 발견, 의료영상 진단기기 개발과정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에 따라 제약사・바이오벤처를 비롯해 SK텔레콤・네이버・카카오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도 바이오헬스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2011년 서울대병원과 합작법인인 ‘헬스커넥트’를 설립한 바 있으며, 현재는 중국에서 디지털 건강관리전문회사 ‘인바이츠 헬스케어’를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는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는 ‘아이크로진’, 조기 치매진단 의료기기 ‘엔서’, 만성질환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휴레이포지티브’ 등에 투자하고 있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벤처스를 통해 바이오헬스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AI 이미지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찾아내는 ‘루닛’, AI 기반의 신약물질 개발사 ‘스탠다임’ 등이 그 대상이다.
높은 수준의 의료 정보기술(IT) 발전에도 불구하고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에 난관이 많다. 각종 규제와 함께 기업, 병원, 의사, 환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요자인 환자와 공급자인 산업계가 원격의료 도입을 요구해도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병원과 의사단체가 반대하고 있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 신약개발에 필수적인 데이터 이용에 관한 규제도 최근에서야 데이터3법 통과로 완화됐다.

SK텔레콤은 지난 2011년 서울대병원과 합작법인으로
헬스커넥트를 설립하면서 바이오헬스 산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대표적인 정보통신(IT) 기업인 카카오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신약물질 개발사인 스탠다임 등 바이오헬스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의 비교우위 확보 요건은 기술역량 강화, 산업 생태계 활성, 규제 개선

4차 산업혁명, 인구 고령화와 함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이 재편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이 후발주자에서 선두주자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19를 극복하며 의료 분야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브랜드 가치가 격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비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세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기술역량 강화, 산업 생태계 활성화, 규제 개선 등이다.
첫째, 바이오헬스 기업들은 R&D 능력 향상 등으로 기술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R&D 성과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포지셔닝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산업 전체 기술력은 미국 대비 78% 수준이다. 이는 유럽연합(EU) 93%, 일본 90%와 비교하면 뒤처지지만 중국(70%)보다는 앞선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아직 개발되지 않아 미충족 수요(Unmet Needs)가 있는 질환을 선별하고, 그 시장을 대상으로 한 바이오 혹은 합성의약품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 AI와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바이오시밀러・제네릭의약품을 캐시카우(수익 창출원)로 삼고 키워나가면 된다. 이미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이 바이오시밀러 생산규모, 기술력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올해까지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8개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의약품을 복제하여 만든 것이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다.
둘째, 바이오헬스 산업 생태계의 중추인 병원 기반의 산・학・연 협력이 활성화돼야 한다. 공동연구, 병원 인프라 활용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는 많으나 접근이 제한적이고 병원 연구 성과를 사업화할 수 있는 제도도 취약하다. 연구중심병원 지정 등으로 하드웨어를 갖춰왔지만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신약개발에서 의료진과 연구진, 산업계 종사자들의 인적교류 활성화 방안도 필요하다.
셋째, 규제 선진화도 속도를 내야 한다. 최근 입법예고에 들어간 ‘첨단 재생의료 및 첨단 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이 본격 시행되면 바이오헬스 산업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그동안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해 제도 개선에 노력해왔다. 융・복합 신개발 의료기기 신속 제품화 지원, 첨단 바이오재생법 시행 시 바이오의약품 신속 심사 및 허가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 미국: 180만L, 한국: 52만L, 독일: 27만L -> 세계 2위 수준
바이오의약품 특허점유(2013~2017) 1위(36.4%)미국, 2위(24.2%)중국, 3위(6.4%)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