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함께 풀기 대담 이효영·장영욱 전문가 2人 한·EU 통상, 관세 철폐 넘어 ‘경제 안보 동맹’으로
  • 김은영 기자
  • 올해로 발효 15주년을 맞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동안 관세장벽 완화를 중심으로 양적 성장을 이뤄왔다. 그러나 최근 미·중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으로 글로벌 통상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철강관세할당(TRQ), 산업가속화법(IAA) 등 새로운 규제를 쏟아내는 동시에 반도체·배터리·방산 공급망 협력, 디지털통상협정(DTA) 체결, ‘한·EU 경쟁력 파트너십’ 출범 등의 의제가 부상하며, 양측 관계는 ‘질적 전환점’을 맞았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와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북미유럽팀 연구위원이 FTA 15년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하고, 전략적 좌표를 제시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 박사, 현 무역국제학회 부회장, 현 산업통상부 자원안보자문단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한·EU FTA 15년, 어떻게 평가하나.

    장영욱 KIEP 연구위원(이하 장영욱) “양적·질적 모두 평가할 만한 성과가 쌓였다. 수출입 품목 99.6%에서 관세가 철폐되며 교역이 활성화됐고, 서비스·투자 부문에서도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다. FTA가 논의되던 2010년 전후 한국은 일본·아세안 등과 EU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는데, 경쟁국보다 한발 앞서 FTA를 체결한 덕분에 EU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특히 자동차·부품 교역 확대와 우리 기업의 EU 현지 생산 활성화로 공급망 내 양국 관계가 깊어졌다. 

    친환경 바람을 타고 전기차·배터리 분야 교류가 활발해진 것도 우리 배터리 기업의 EU 진출에 큰 힘이 됐다. 다만, 15년 전 협정이라 디지털 거래, 인공지능(AI), 핵심광물, 공급망 위기 대응 같은 최신 의제를 온전히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FTA 개정보다 디지털통상협정(DTA), 경쟁력 파트너십, 공급망 산업 정책 대화 등 분야별 특화 협정과 채널 신설을 통해 양국 경제 관계 지평을 넓히는 추세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이하 이효영) “FTA 발효 이후 양국 교역 규모는 50% 이상 늘어 2025년 기준 상품 교역액은 역대 최대인 1369억달러, 상호 누적 투자는 2868억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개선해야 할 점은 있다. 2015년 한·EU 정상회담 당시 투자 규범을 포함한 FTA 개선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실제 개정 협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나 투자법원제도(ICS)1) 같은 투자 보호장치가 빠져 있어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 EU가 도입 중인 CBAM, 공급망 실사 지침 등이 우리 기업에 상당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어, FTA 체결국에 대한 고려를 요구하는 등 통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협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CBAM·TRQ 등 EU 규제의 동시다발적 충격에 대한 전략은.

    이효영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우리 기업은 에너지 비용 상승과 CBAM 인증서 구매라는 이중 부담이 발생할 우려가 커졌다. 핵심은 한국형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K-ETS)로 납부된 탄소 비용을 CBAM 인증서 비용에서 얼마나 감액받느냐다. 정부는 EU와 탄소 가격 동등성 인정 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K-ETS 무상 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낮춰 국내 탄소 가격을 국제 수준으로 현실화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철강 TRQ 문제도 시급하다. EU는 한국의 2위 철강 수출 시장인데, TRQ 시행으로 한국산 냉연·열연강판 무관세 수입 물량이 50~65%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EU가 유럽경제지역(EEA) 국가에 쿼터 면제를, 영국에 FTA 우대 대우를 부여한 선례를 근거로 한국에 대한 FTA 체결국 우대를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산 철강의 한국 우회 수출 의혹을 풀기 위해 국내 반덤핑·상계관세 체계를 강화하는 방어책도 병행해야 한다.”

    장영욱 “K-ETS의 무상 할당을 낮춰 EU-ETS와 호환성을 높이는 조치도 중요하지만, 산업계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CBAM 대상 업종의 배출량 산정·검증 역량을 조기에 고도화하고, 기업별 내재 배출량 데이터 관리 체계를 표준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미국의 해외오염관세법(FPFA)처럼 EU 외 지역으로도 탄소 기반 무역 조치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므로, 주요 수출 시장별 탄소 규제 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철강 TRQ 협상에서는 우리 기업이 EU의 환경·노동 기준에 부합하는 공급자라는 점과 한국과 EU가 세계경제 질서 변화에 함께 대응하는 전략적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IAA는 한국 기업에 기회인가 위협인가.

    장영욱 “이 법은 에너지 집약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공공 조달·지원 프로그램 참여 시 저탄소 요건과 ‘유럽산(made in Europe)’ 요건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은 EU와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유럽산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3사 모두 EU 역내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유리하다. 다만 신규 투자 심사 조항에 포함된 고용 요건, EU 역내 연구개발(R&D) 투자 의무, 지식재산권 관련 내용 등은 신규 진출 기업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에 유리한 조항이 최종 법안에서 바뀌지 않도록 법안 통과 절차에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도 필요해 보인다.”

    이효영 “현지 공장이 없는 경쟁국에 비해 우리 배터리 기업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맞다. 자동차 분야도 전기차 부품의 70% 유럽산 요건에 대해 FTA 체결국 동등 원산지 인정이 적용돼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철강은 유럽산 요건 외에도 25%의 저탄소 비율을 맞춰야 한다. 저탄소강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 우리 철강 기업이 다른 경쟁국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도록 정부가 업계의 에너지 전환 노력을 신속히 지원해야 한다.”

    연세대 경제학,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박사

    배터리·반도체 공급망 협력 선언을 실행으로 끌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효영 “한·EU 간 공급망 협력의 실질적 제도화가 아직 구체화되지 않는 이유는 양국 간 반도체 기술의 미스매칭, EU의 높은 인건비와 규제, 원천 기술보호주의로 인한 상용화 단계로 미이행, 구속력 있는 양자 공급망 협정의 부재 등이 맞물려 있다. 돌파구는 ‘패키지 딜’ 구조다. 예를 들어 한국이 EU의 중국 대체 반도체·배터리 공급원 역할을 하는 대신 EU 핵심원자재법(CRMA)상 ‘전략적 파트너국’ 지위를 확보하거나, 첨단 제조 역량을 제공하는 대신 EU의 R&D 자금 접근권과 규제 완화를 얻어내는 반도체 공동투자 프레임워크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

    장영욱 “정부와 기업의 역할 구분이 중요하다. 정부는 기업 간 협력을 막는 제도적 허들을 낮추고 중소기업에 정보와 행정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EU의 환경·디지털·노동 관련 규제에서 제도적 장벽을 완화하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핵심 기여다. 실제 공급망 협력은 기업 단위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미 사례가 나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브로츠와프 에너지 저장장치(ESS) 배터리 공장, 삼성SDI와 BMW의 전고체 배터리 공동 개발 협약, 현대제철과 EU 기업 간 저탄소 강판 공급 업무협약(MOU)처럼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한·EU 협력이 실체화되는 모습이다.”

    방산이 통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제도화를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장영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EU 방산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증액 합의로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한국 방산은 가격 경쟁력과 신속·정확한 조달 역량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다만 최근 EU의 방위전략이 역내 제품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 우리 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도 독일·프랑스 기업에 밀리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군사기밀 보호 문제로 민감 품목 거래에 제한이 있는 것도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이효영 “실질적 제도화를 위해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 체결과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EU의 대규모 방산 투자 지원 프로그램인 ‘유럽안보행동(SAFE)’의 수혜국이 되려면 ‘65% 역내 부품 조달’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이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SAFE 협상에 참여하지 못했다. 차기 협상 참여 기회를 확보하는 데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 EU는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 등을 통해 FTA체결국이나 안보 파트너국에 예외 또는 요건 완화를 인정할 여지를 남겨둔 만큼, 별도 방산 안보 협정을 체결해 이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재명(왼쪽) 대통령과 안토니우 코스타(가운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6월 1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에서 공동 언론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미·중 패권 경쟁 속 한·EU 경제 안보 협력을 어떻게 포지셔닝 해야 하나.

    이효영 “지난 6월 한·EU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EU 경쟁력 파트너십’과 ‘한·EU 고위급 경제 대화’ 출범은 무역·투자부터 공급망, 첨단 기술, 에너지, 경제 안보를 아우르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도약을 의미한다. 양국 정상은 자유무역,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다자무역 체제의 중심축인 세계무역기구(WTO) 강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는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 일방주의 통상 기조와 대비된다. 따라서 한국은 EU와 규범 연대를 강화하되, 미국을 향해서는 ‘한·EU 협력이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를 통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견지하며 대응해야 한다.”

    장영욱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연초 언급했던 ‘중견국 연대’가 한·EU 협력을 통해 구체화된다고 본다. 특정 진영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법치, 공정 무역 등의 가치와 원칙에 기반한 유사 입장국 간 협력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일관되게 시행한다면, 주변 다른 국가와 관계도 같은 원칙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국제사회는 한국에 질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과 EU는 그 역할을 함께 수행할 좋은 파트너다.”

    FTA 발효 20주년인 2031년, 한·EU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효영 “2031년에는 올해 합의된 협력 기제가 실제로 정책 조율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FTA 무역위원회, 차세대 전략 대화, 공급망 산업 정책 대화를 총괄·조정하는 ‘고위급 경제 대화’가 형식이 아닌 실질로 작동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EU가 도입하는 다층적인 탄소 규제에 대해, FTA 체결국이자, 전략적 동반자인 한국이 공급망 협력을 원활하게 추진하도록 고려해 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되는 CBAM과 관련, 한국의 K-ETS가 탄소 가격 동등성을 인정받아 CBAM 인증서 비용을 감면받고, 향후 CBAM 적용 품목 확대 논의에서 한국의 이익이 반영되도록 적극 협상해야 한다. 협상 전략으로는 한국의 첨단산업 경쟁력과 EU의 협력 수요를 연계한 상호 이익 기반 패키지 딜을 제시해 EU의 높은 규제 장벽을 최대한 완화해야 한다.”

    장영욱 “미·중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트럼프 2기 정부 통상 불확실성, 다자주의 약화 등 세계경제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이 시대에, 그 파고를 함께 넘어 회복력 있는 국제 질서를 함께 구축하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한국과 EU 관계가 정립된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근시안적 국익을 넘어 자유, 민주주의, 법치, 공정 무역이라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며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협상의 주도권은 결국 그 원칙에서 나온다.”


    용어설명
    • 1투자법원제도(ICS)

      외국인 투자자와 투자 유치국 정부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EU가 주도해 제안한 상설 국제재판소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