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듣기 INTERVIEW 채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 "FTA 15년 한·EU, 경제 안보 동맹으로 진화해야…공급망 무기화 대응"
  • 이선목 기자
  • 미국 버크넬대 경제학·국제관계학,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WB)·세계무역기구(WTO) 연구원,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선임이코노미스트, 전 미국 국무부 수석 이코노미스트

    “한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의 시장 지배력 무기화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공급망 협력과 산업 정책 공조가 앞으로 양측 관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채드 바운(Chad P. Bown)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한·EU 경제 협력의 미래를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은 지난 15년간 국제무역과 정책 협력을 위한 중요한 기반 역할을 해왔지만, 오늘날 국제 통상 환경은 협정 체결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라며 “양측은 기존 FTA를 넘어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이라는 새로운 공동 과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한·EU FTA 발효 15주년을 맞는 해다. 2011년 발효 이후 한·EU FTA는 양측 교역 확대와 투자 활성화에 기여하며 대표적인 고수준 FTA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 통상 환경은 경제 안보, 산업 정책, 공급망 재편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산업가속화법(IAA)1) 등 새로운 정책 수단을 도입하고 있으며, 주요국 역시 전략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산업 정책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바운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중국의 시장 지배력 확대와 공급망 무기화를 지목했다. 그는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확보한 우위를 활용해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EU가 산업 정책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고 핵심 산업 분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바운 선임연구원은 세계적인 통상 정책 전문가로, 현재 PIIE에서 국제무역, 공급망, 무역 분쟁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마야 케인스(Soumaya Keynes)와 함께 ‘How to Win a Trade War(무역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를 출간하며 경제 안보 시대의 새로운 통상 전략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는 한·EU FTA 발효 15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15년을 돌아볼 때, 글로벌 통상 질서 관점에서 한·EU FTA의 의미와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EU FTA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두 경제권 간 국제무역과 정책 협력을 위한 매우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이는 과거의 환경에 맞춰 체결된 협정이다. 오늘날 국제 통상 환경은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EU 정책 당국은 이 협정을 토대로 점점 더 심각해지는 공동의 우려에 대응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제 통상은 경제 안보, 산업 정책, 지정학적 경쟁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FTA 역할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는가.

    “오늘날 환경은 과거와 다르다. 한국과 EU는 기존 FTA를 넘어 경제 안보와 공급망 위험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양측은 기존 협정을 기반으로 하되, 점점 더 심각해지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국제 협력은 단순한 시장 개방이나 관세 인하를 넘어, 경제 안보와 핵심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각국은 공급망 회복력, 전략적 자율성, 자국 산업 역량 강화에 더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글로벌 통상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걸까.

    “중국의 시장 지배력 확대와 이를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은 EU와 한국이 함께 직면한 공동의 도전 과제다. 이는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여러 민주주의 국가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경제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과 EU가 자국 공급망에 의존하도록 하고 있지만, 동시에 상호 의존 관계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수입하지는 않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의존이 일방적으로 커지는 구조가 새로운 경제 안보 문제를 만들고 있다.”

    한국과 EU 정부가 공동의 무역 갈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타협 의지다.

    중국 의존은 실제로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는가.

    “중국은 2025년 희토류와 영구자석 수출을 제한했다. 그 결과 유럽 자동차 산업에서는 핵심 부품 부족으로 일부 기업이 생산을 중단해야 했고, 수천 개 일자리가 위험에 처했다. 한국 기업은 사전에 재고를 비축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잘 견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했을 수 있다. 당시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와 영구자석 공급의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는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공급망 의존이 얼마나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낯선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한국에는 2016년 미국과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공동 발표한 이후 중국이 다양한 한국 기업을 상대로 보복에 나섰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중국의 시장 지배력과 그 지배력을 무기화하려는 태도는 한국과 EU 모두에 공통된 도전이다.”

    공급망 회복력은 전 세계 주요 정책 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과 EU는 어떤 방식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과 EU는 중국이 양측 정책 당국을 압박할 수 있는 능력을 줄이기 위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양측은 공동의 무역 갈등에 함께 맞서는 편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 정책의 상호 운용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양측 경제에 필요한 필수 투입재의 대체 공급원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과 EU가 향후 협력 잠재력이 가장 큰 분야는 무엇일까.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핵심광물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들 분야에서 유럽과 한국 기업은 양측 시장에 접근함으로써 규모의 경제와 공정 경쟁이 제공하는 이점을 계속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동시에 공정하게 경쟁하지 않는 국가의 기업에는 이들 분야에서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규칙도 필요하다.”

    실질적인 협력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EU와 한국은 중국 밖에서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의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양측은 비축 정책, 산업 정책, 관세정책 등을 더 긴밀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시장 지배력과 공급망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무역 자유화를 넘어 더 적극적인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한·EU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

    “한국과 EU가 중국의 시장 지배력 무기화에 대응하려면, 이전에는 시도한 적도 없고 달성한 적도 없는 수준의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함께 대응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경우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양측 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일정한 타협을 해야 한다.”

    향후 한·EU 협력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과 EU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중국의 시장 지배력 무기화에 맞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협력 정책을 설계할 창의성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과 EU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책을 조율할 의지도 필요하다. 단순히 기존 FTA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경제 안보 환경에 맞는 협력 방식이 필요하다.”

    향후 10년간 한국 정책 당국이 EU와 관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과제는.

    “앞으로 10년은 한국과 EU 모두에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양측은 중국과 관련된 공동의 우려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공동의 이해관계는 새로운 정책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특히 전략물자 공동 비축, 상호 연계 가능한 보조금 정책(interoperable subsidies) 그리고 필요할 경우 공통의 대상국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 등 새로운 형태의 정책 협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에 조언이 있다면.

    “한국과 EU 정부가 공동의 무역 갈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타협 의지다.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체 공급망을 만들고, 산업 정책을 조율하며, 전략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인 비용이나 기업 차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 PLUS POINT 

    중국 희토류 통제에 흔들린 유럽… “경제 안보 협력 필요성 재확인”

    채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단순한 통상 분쟁을 넘어 EU 산업계 전반에 충격을 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바운 연구원은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한국과 EU가 함께 대응해야 할 새로운 경제 안보 과제”라고 지적했다.

    유럽자동차부품협회(CLEPA)는 2025년 6월 성명을 통해 중국의 희토류 및 영구자석 수출제한으로 유럽 내 일부 자동차 부품 공장과 생산 라인이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재고가 소진될 경우 추가적인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희토류 및 영구자석 공급망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으며, 중국의 수출제한 조치가 유럽 산업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ECB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로존 희토류 수입 상당 부분 역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제한 조치 이후 희토류 자석 수출량은 급감했고 일부 자동차 제조사는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유럽 외교 전문가 사이에서도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새로운 경제 안보 위협으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외교협의회(ECFR)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희토류를 ‘지경학적 무기(geoeconomic weapon)’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유럽이 공급망 다변화와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EU는 핵심원자재법(CRMA)2), IAA 등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분야에서 EU와 협력을 확대하면서 공급망 리스크에 공동 대응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용어설명
    • 1산업가속화법(IAA)

      EU가 핵심 전략산업의 공급망 안정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산업 정책.

    • 2핵심원자재법(CRMA)

      EU가 희토류, 리튬, 코발트, 니켈 등 전략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해 도입한 제도로,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생산·가공·재활용 역량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