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경제는 거대한 ‘지정학적 분절화’의 흐름 속에 놓여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기술을 넘어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제정치·경제 질서의 캐스팅보트를 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발발한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며 에너지 수급 위기가 현실화하자, 자원과 인구를 갖춘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가 됐다. 우리 정부 역시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 아래 중동·아프리카·남미를 잇는 공격적인 정상 외교를 펼치며 통상 네트워크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통상’은 글로벌 사우스 지역 전문가인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아프리카 중동·중남미팀 연구위원과 통상 전문가인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글로벌 사우스가 주도하는 새로운 통상 질서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미·중 패권 경쟁 속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이 거세다. 이런 흐름이 세계 경제와 통상 환경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나.
강문수 KIEP 연구위원(이하 강문수)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 확대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심화한 지정학적 분절화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거치며 무역·금융으로 확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팬데믹 당시 백신의 선진국 편중, 인도와 남아공이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제기했던 무역 관련 IP에 관한 협정(TRIPS)1) 유예 지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곡물 수급에서 개도국 배제, 여기에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까지 겹치며 협력 필요성이 커졌다. 중국의 경제·기술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미·중 모두와 협력하는 실용적 외교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이 ‘스윙 국가’2)로 부상했다. BRICS+ 확대와 상하이협력기구(SCO) 강화 역시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인도네시아 등이 BRICS+에 참여하며 회원국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약 28% 수준까지 커졌다. 다만 이를 단순한 블록화로 보기보다, 이들이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며 자국 이익에 따라 유연하게 협력하는 ‘실용주의 외교’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이하 허정)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은 국제 통상 질서가 더 이상 미·중 두 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BRICS+는 G7과 대등한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고, 개발도상국 그룹인 G773) 역시 협상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참여하는 다자 협력 구조는 글로벌 통상 규범과 결제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현지 통화 결제 확대, 지역 협력 체계 강화 등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통상은 양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안별 연대와 균형을 조합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런 다층적 질서를 전제로 유연한 통상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사우스가 통상 전략에서 주목받는 배경과 최근 정상 외교를 어떻게 보나.
강문수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중 수출의존도가 높다. 2022~2024년 기준 상위 10대 수출국 의존도가 68.2%에 달하는 반면, 글로벌 사우스 수출 비중은 약 30%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아세안을 제외하면 인도,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와 협력은 제한적이다. 최근 미·중 갈등 심화와 통상 불확실성 확대로 시장 다변화 필요성이 커졌고, 글로벌 사우스 협력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특히 핵심광물 확보, 방산·원전·조선 수출 확대, K-콘텐츠 소비 시장 확대 등 경제 안보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동·아프리카 순방, 브라질 정상회담, 아세안 국가 방문 등은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며, 말레이시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집트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추진 등은 실용주의 통상 전략을 보여준다.”
허정 “한국 경제는 미·중 수출의존도를 줄이고 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최근 대중 수출 비중 감소 속에서 대체 시장 확보가 중요한 과제가 됐고, 글로벌 사우스는 이에 부합하는 대상이다. 이 대통령의 정상 외교는 방향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그 성과는 이후 투자, 제도 협력, 기업 진출로 얼마나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 양해각서(MOU) 중심의 협력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구체적 사업화와 이행 점검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에서 한국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다면.
강문수 “한국은 식민지 경험과 빠른 산업화를 동시에 경험한 국가로, 신흥국이 참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발전 모델이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이룬 경험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한국은 64개 핵심 기술 중 24개에서 세계 상위 5위 내 위치할 정도로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기술력과 함께 기술이전과 인력 양성을 포함하는 협력 모델은 단순한 상품 수출을 넘어서는 경쟁력이다.”
허정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경험을 갖고 있어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매우 설득력 있는 협력 파트너다. 제조업 육성, 인프라 구축, 교육투자, 디지털 전환 등 복합적 성장 경험이 강점이다. 또한 반도체, 자동차, 조선, 콘텐츠 산업 등에서 검증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단순 원조가 아닌 산업 협력 파트너로서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식민 지배 경험이 없다는 점도 협력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사우스와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강문수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일명 스윙 국가와는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미·중 중심 질서 속에서 스윙 국가는 FTA 다자 외교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소다자 협력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그간 양자 협력을 중심으로 외교적 외연을 확장해 왔으며, 최근 핵심광물 안보파트너십, 중견국 협의체(MIKTA)4) 의장국 수임 등을 통해 다자 외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은 경제를 넘어 외교·안보까지 포함한 다층적·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저소득국 및 중·저소득국과는 공적개발원조(ODA)5)를 통한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G7과 글로벌 사우스를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이 자국 중심주의로 전환하면서 개발 협력 재원을 축소하는 가운데, 한국은 주요 개발 협력 국가로서 역할 확대가 가능하다. 특히 기후변화, 식량 위기 등 복합 위기 대응 재원 확대와 함께, 분쟁 취약국 지원 등에서 국제사회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허정 “ODA, 정책금융, 민간투자, 통상 협력을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인프라 지원은 한국 기업의 시장 진출과 연계하고, ODA는 현지 인력 양성 및 제도 개선과 결합하며, 정책금융은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산업 기반 구축, 통관·물류 현대화, 디지털 전환 지원, 인력 양성이 함께 이뤄지는 ‘패키지형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협력 대상국의 산업 발전 단계별 맞춤형 접근이 중요하다. 아프리카 최빈국과 중진국인 중남미 국가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분야에서는 스마트시티, 전자 정부, 핀테크 등 한국의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공급망 연계와 기술 표준 공유로 이어가는 단계적 협력 확대가 효과적이다.”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 정책의 리스크나 한계는 무엇이 있을까.
강문수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 확대 과정에서 가장 큰 한계는 단기간 내 구체적 성과를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통상 다변화는 오랜 기간 논의됐지만, 실제 성과가 도출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권 교체로 대외 전략이 급격히 변경될 경우, 협력 대상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 있어 정책의 연속성 확보가 중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지 정보 부족과 지정학 리스크가 주요 제약 요인이다. 전쟁 등으로 해상 운송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수출 지연과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이로 인해 기업이 기존 시장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 채널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외교 채널은 평시 협력뿐 아니라 위기 시 즉각 대응이 가능한 체계를 포함해야 하며, 정부뿐 아니라 민간·학계 차원의 협력 채널도 필요하다.”
허정 “가장 큰 리스크는 상대국의 정치·제도적 불확실성이다. 정권 교체나 정책 집행력 부족으로 정상 차원의 합의를 실질 사업으로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부 신흥국은 정치적 변동성이 커 장기 협력 안정성이 낮다. 환율 변동성, 금융 인프라 부족, 물류 리스크 등도 제약 요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장 다변화가 수출 안정성으로 이어지기 어려워 정치 위험 보험, 무역금융, 법률 지원 종합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란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질서 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이 심각하다. 전략자원을 둘러싼 공급망 협력은 어떤 방향으로 구축해야 하나.
강문수 “이란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질서 변화의 신호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며, 각국은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 대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와 외교를 강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원자재 보유국과 핵심광물 분야에서 협력이 필수적이다. 최근 일부 국가의 원광 수출제한 등으로 단순 수입을 넘어 협력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 식량, 핵심광물 보유국과 협력을 ODA 및 산업 협력과 연계해 확대할 필요가 있다.”
허정 “공급망 협력은 단순 자원 구매를 넘어 채굴, 제련, 운송, 재활용까지 포함한 가치 사슬 전반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배터리와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주요 생산국과 장기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공급망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에 대비한 비축 확대와 공급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중동 산유국이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등 협력 구조를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주목해야 할 국가나 지역을 꼽으면.
강문수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남아공, 튀르키예 등은 대표적인 스윙 국가는 다자 협력 플랫폼을 통해 국제 질서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금융 협력 측면에서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신개발은행 등을 활용하고 있다. 이런 국가와 협력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는 동남아(베트남·말레이시아), 아프리카(이집트·탄자니아), 중동(UAE),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등이 주요 협력 대상이다.”
허정 “동남아는 제조업 공급망과 소비시장 측면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생산 거점이자 성장 시장으로서 가치가 크다. 중동은 에너지뿐 아니라 AI, 스마트시티, 방산 등 신산업 협력 측면에서도 중요한 파트너이며, 중남미는 식량, 광물, 청정에너지, 소비 시장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 아프리카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는.
강문수 “외교 채널의 다층적 확대다. 정부 간 협력뿐 아니라 민간, 학계까지 포함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해외 공관 역할을 강화해 통상 네트워크 구축과 경제 안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또한 협력 대상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산업, 소비 시장, 통상 환경을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 민·관·학 협력을 통해 체계적인 신흥동반국 협력 전략을 세워야 한다.”
허정 “시장 다변화를 제도화된 협력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FTA, 투자 협정, 금융 지원, 통관 협력 등 제도적 기반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또한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과 정책금융, 정보·법률 지원 등 체계 구축과 기관 간 협력 및 거버넌스 개선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통상, 외교, 산업 정책을 통합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용어설명
- 1무역 관련 IP에 관한 협정(TRIPS)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간 지식재산권 보호 기준을 규정한 국제 협정이다. 특허, 상표,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의 최소 보호 수준을 정하고, 이를 무역 규범과 연계해 회원국이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 2스윙 국가(Swing States)
국제정치·경제 질서에서 특정 진영에 고정되지 않고, 자국 이익에 따라 주요 국가나 블록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협력 대상을 선택하는 국가.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이 대표적인 스윙 국가로 꼽힌다.
- 3G77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이익을 공동으로 대변하기 위해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 결성된 협의체. 현재는 130여 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 통상·개발·기후 협상 등에서 집단적 협상력을 행사한다.
- 4중견국 협의체(MIKTA)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튀르키예, 호주 5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협의체다. 2013년 출범했으며, 글로벌 거버넌스, 경제협력, 개발, 기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견국 간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다.
- 5공적개발원조(ODA)
선진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과 복지 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원조를 말한다. 무상 원조와 유상 원조(저리 대출 등)로 구성되며, 인프라 구축, 교육, 보건, 기후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