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보기 특별기고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계 질서의 변화와 신흥동반국의 부상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약화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위상과 역할이 제고되고 있는 것이다. 냉전 시기 ‘제3세계’ 혹은 ‘남반구’로 불리며 소극적 중립 외교를 추진하던 전통적 사우스와 달리 탈냉전 이후 신흥경제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글로벌 사우스는 국제 질서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강화된 보호무역주의는 국제 교역 질서에 심각한 균열을 내고 있다. 서구 선진국 중심의 주요 7개국(G7) 체제도 약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어느 한 진영에 일방적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다양한 파트너와 동시다발적 관계를 맺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추구하고 있다. 과거의 소극적 비동맹 외교에서 벗어나 국제 무대에서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실리 외교를 펼치는 ‘스윙 국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높아진 글로벌 사우스의 위상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태평양 도서국 등 다양한 개도국으로 구성된다. 글로벌 사우스는 신흥경제국(EMEs)을 포함해 134개국에 이르는 개도국을 총칭하고 있어서 명확한 정의와 구분이 어렵지만, 이들 국가의 부상은 경제적 비중과 구조 변화를 통해 뚜렷하게 확인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을 포함한 이들 국가의 경제 규모는 이미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에 이르며, 2030년에는 세계경제의 절반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을 제외한 133개국의 GDP도 2023년 약 19조달러(약 2경 8257조원)로 세계경제의 18%를 차지하고, 2050년에는 28%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사우스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00년 약 1030억달러(약 153조원)에서 2023년 약 5310억달러(약 790조원)로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 전 세계 FDI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6%에서 약 40%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선진국의 FDI 유입 비중은 76%에서 31%로 급감했다.

인구와 자원 측면에서도 글로벌 사우스의 잠재력은 압도적이다. 세계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며, 에너지·핵심광물·식량 등 전략자원의 상당 부분이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리튬, 코발트, 희토류의 상당량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 매장돼 있다.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는 지금, 글로벌 사우스의 협력 없이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

다극화한 세계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은 단순한 개발협력의 범주를 넘어 외교·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눈에 띄는 브릭스(BRICS)의 기반 확대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지정학적 부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브릭스(BRICS)의 변화다. 2009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으로 출발한 브릭스는 2011년 남아공 가입 이후 본격적으로 G7 중심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신흥경제국 협력체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신규 회원국으로 합류하고 2025년 인도네시아가 가입하면서 ‘브릭스 플러스’ 체제로 확대됐다.

현재 브릭스는 세계 인구의 45%, 세계 GDP의 약 35%를 대표하는 다자간 협력체로 성장했다. 브릭스가 단순한 외교 포럼을 넘어 실질적 대안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4년 설립된 신개발은행(NDB)은 세계은행·IMF 체제에 대한 대안적 개발 금융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비상대응준비기금(CRA)은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 체제를 보완하는 장치로 설계됐다.

브릭스 회원국은 국제금융 체제 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 다자주의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서방 주도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태도는 반(反)서방이 아닌 비(非)서방이다. 기존의 선진국이 주도하던 글로벌 거버넌스에 의문을 제기하되, 특정 진영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 다극 질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전략적 정체성이 드러난다. 중국은 일대일로(BRI)와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1)를 통해 경제·개발 협력을 확대하며 영향력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일본도 2023년 범정부 차원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 연계 강화 추진회의’를 설치하고 동남아·아프리카·중앙아시아와 협력을 체계화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협력 외교와 통상 전략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과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지정학적 충돌 같은 글로벌 복합 위기를 직면한 세계경제는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국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은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향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파트너이자 통상 전략의 핵심 축이다. 인프라와 에너지, 디지털 분야에서 막대한 수요가 있고, 공급망 안정과 자원 확보 측면에서도 이들 국가와 협력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 중심의 통상 전략에서 벗어나 신흥동반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통상’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공적개발원조(ODA), 개발 금융, 민간투자를 연계한 패키지형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지역별 맞춤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와 선진국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발전 경험과 K-콘텐츠는 글로벌 사우스에 중요한 협력 자산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포용적 협력 외교,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신뢰 기반을 강화하고 다극화한 국제 질서 속에서 중견국 외교의 새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은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흐름이다. 다극화한 세계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은 단순한 개발 협력의 범주를 넘어 외교·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앞으로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단순한 협력 대상이 아니라 공동 번영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협력 전략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용어설명
  • 1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

    2021년 유엔총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한 국제 협력 구상이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감소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