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여섯 번째이자, 2018년 6000억달러 이후 7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거센 보호무역과 빈발하는 지정학적 위기로 세계 교역의 시계(視界)가 흐릿해진 상황에서도 우리 수출 기업이 땀과 열정으로 일궈낸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격려의 박수와 함께, 지속 가능한 수출 성장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수출 7000억달러 달성의 의미
역사적으로 우리 수출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산업으로 도약하며 활로를 개척해 왔다. 경공업 중심이던 1970년대부터 철강·자동차·선박 등 중화학 산업으로 확장했고, 1990년대부터 반도체 산업을 본격 육성하며 외연을 넓혔다. 지난 20년 동안 모바일과 자동차 시장이 스마트폰과 전기차 체제로 급전환되는 변곡점에서도 우리 수출은 시대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경쟁력을 축적해 왔다.
한때 2G폰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 적응하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 신산업으로 도전과 확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해 반도체 수출 약진은 더욱 의미가 깊다. 인공지능(AI) 확산과 함께 우리 기업의 주력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수출은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그동안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장래성이 있는 HBM 사업에 10년 넘게 투자하며 때를 준비해 온 우리 기업의 인내와 축적된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화장품·가공식품 등 소비재 수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해 화장품 수출은 2년 연속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중간재 수출이 70%에 달하는 우리 수출구조를 감안하면 더욱 고무적인 성과다.
최근 소비재 수출 호조세는 K-컬처의 인기로 설명되는 일시적 흐름이라기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 이후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려 경쟁력을 쌓아온 전략적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할랄 인증1) 등 현지 규제를 하나씩 넘어서며 중동, 아세안 등으로 꾸준히 문을 두드려온 결과가 K-컬처 확산과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다만, 수출 7000억달러의 이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도 많다. 특히 두드러지는 수출 성과가 반도체·선박 등 일부 호조 품목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 아쉽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은 중국의 공급과잉으로 구조적인 침체를 겪고 있고 철강·알루미늄 등 주력 시장에서 고율 관세가 부과된 품목도 가격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 세계 교역 성장률이 1% 미만으로 횡보하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반도체를 제외하면 가전·정보통신(IT) 산업 수요 회복세도 제한적이다. 총수출 대비 대미(對美)·대중(對中) 수출의존도가 35%에 달해 이들 시장의 불확실성에 크게 노출돼 있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중소 수출 기업 절반 이상에서 수출국이 1개국에 불과해 대외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더욱 쉽지 않다.
수출 1조달러 달성을 위한 전략
1│해외 마케팅은 기본, 기술력까지 갖춘 준비된 기업에 기회가 온다_한국 수출이 1조달러를 넘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바이어뿐만 아니라 외연을 확대하는 마케팅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자체적인 마케팅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한 지원 기관과 함께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만, 기술력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현장에서는 누구나 마케팅은 열심히 하는데 결국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계약을 따내는 경우가 많다.
2│제조 현장 고령화, 인력 부족, AI 전환(M.AX)으로 해결_최근 국내 모 대기업에서 숙련공 은퇴가 다가오면서 불량률이 20% 이상 치솟아, 숙련공의 노하우를 AI에 학습시켜 지식화하는 작업을 실시한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제조 현장에서 생산성 유지를 위한 AI 도입은 생존을 위한 과제가 됐다. 구체적으로, 2020년 기준 제조업 근로자 가운데 50대 비중은 30.1%로 가장 많았고, 15~29세 청년은 15.2%에 그쳤다. 반면 공장을 가동 중인 중소·중견기업 약 16만개 사 중에 AI 전환의 첫 단계인 공정의 디지털화를 도입한 기업은 19.5%에 그쳤다. 기업과 소통하다 보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을 토대로 현재 필요한 부분부터 시작하고, 추출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제조 공정을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3│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준비해야 할 미래 변화_공급망 교란과 자국 우선주의 등으로 외부 충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다음과 같은 미래 변화에 초점을 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우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는 시장을 발굴해야 한다. 일례로, 미국·인도·멕시코의 경우 제조업의 생산 거점화가 진행되고 있어, 우리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협력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 또한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친환경 규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요국의 탄소 중립 규제 도입 목적은 기후 대응뿐 아니라 제조업 헤게모니 측면도 있다. 선제 대응이 아니면 도태될 수 있기 때문에 탈탄소 기술을 갖춘 수출 경쟁력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한편, AI 인프라 투자가 예상되는 시장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 전환 수요가 지속되는 아세안의 경우 전력망, 스마트팜, AI 의료 솔루션 등 우리의 강점 부문에서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별 인구 변화에 대응하는 맞춤형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로 실버 세대(60세 이상), Z 세대(15~29세), 엔젤 세대(0~14세)로 시장이 세분화되고 있어 계층별로 적합한 마케팅 수단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수출의 역량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확보하는가에 달려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투자했던 경험이 오늘 우리 수출의 든든한 뼈대가 됐던 것처럼, 정부와 기업 그리고 지원 기관이 지혜를 모아 수출 1조달러 시대를 여는 성장 수레바퀴를 새롭게 가다듬을 때다.
용어설명
- 1할랄 인증
생산공정부터 서비스 방식까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지 않은 제품임을 인증하는 제도. 인증 대상에는 식품, 음료, 의약품, 생활용품, 화장품, 화학제품, 섬유, 포장 및 포장재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