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듣기 INTERVIEW 버나드 호크먼 유럽대학연구소 교수 “한국 수출 1조달러 시대 가려면, CPTPP가입 서두르고 혁신 중소기업 지원해야”
  • 박근태 기자
  •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 경제학,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현 글로벌경제연구소 소장, 현 유럽대학 로베르트슈만고등연구소 교수, 전 세계은행(WB) 국제무역국장

    “수출 7000억달러(약 1028조원) 돌파는 한국의 국제적 경쟁력을 입증한 신호탄이지만, ‘1조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선 제조업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버나드 호크먼(Bernard Hoekman) 이탈리아 유럽대학연구소(EUI)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글로벌 통상 질서의 ‘판’이 흔들리고, 단순한 물량 확대를 넘어선 질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은행(WB) 국제무역국장을 역임한 호크먼 교수는 저명한 무역 및 국제경제학 석학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국내외 포럼에서 세계경제 질서 재편과 글로벌 공급망(GVC) 등에 대해 크게 기여하고 있는 지한파 전문가다.

    호크먼 교수는 “2024년 말의 정치적 변동성과 관세 압박에도 불구하고 거둔 성과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미국의 무역정책 방향이 명확해지기 시작하는 2026년에는 미국 수입업자의 관세 인상에 대비한 프런트로딩(Front-loading·선제 대응 전략)이 사라지고 달러 하락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바탕으로 단순 하드웨어 수출을 넘어 데이터 중심의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호크먼 교수는 CPTPP1) 가입을 즉각적인 실행 과제로 꼽았다. 또 국경 간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수출 1조달러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호크먼 교수는 또 “1조달러 시대를 주도할 진짜 주역은 규모는 작지만, 강력한 혁신성을 가진 중소기업”이라며 “대기업 위주 정책서 탈피해 혁신 기업의 ‘수출 사다리’를 놔줘야 한다”라고도했다. 호크먼 교수는 “무역 관계가 무기화하는 시대 다자주의는 단순히 교역을 늘리는 수단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는 경제 안보의 핵심”이라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규칙 기반의 무역 질서를 수호하는 리더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호크먼 교수와 일문일답.

    한국이 2024년 말 국내 정치 위기와 2025년의 국제무역 질서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7000억달러 수출을 돌파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수출 증가세는 한국의 국제 경쟁력과 한국 기업 및 정부가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정책이 이제 막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2026년 한국 수출 업체는 미국 수입 업체의 프런트로딩에 따른 이점을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달러 약세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 다음 이정표로 수출 1조달러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수출 포트폴리오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한국은 이미 서비스, 특히 시청각 및 문화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수출하고 관광자원을 수출하는 나라다. 첨단 ICT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활용해 데이터 집약적인 AI 및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CPTPP에 가입하고 주요 무역 파트너와 협력해 국경 간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는 동시에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파트너십을 통해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보장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국이 수출 1조달러 달성을 위해 반도체와 조선 외에 주목할 분야나 제품 카테고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요한 것은 정책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혁신 기업이 수출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업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초기에는 전체 수출에 이바지하는 바가 미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은 이런 유형의 기업을 소홀히 하고 한국의 대기업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가치 사슬(GVC)에서 서비스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이 어떻게 하면 서비스 분야의 강점과 상품 기반 수출 전략을 통합할 수 있을까.

    “제조 업체가 스스로 수행하는 경제활동의 ‘서비스화’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서 제기해야 할 질문은 서비스화를 저해하는 제약 요인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요인을 완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이를 위해 수출 진흥 및 경제정책 기관과 기업 간 협의를 통해 마찰 요인과 제약 요인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국가 정책으로 인해 접근할 수 없는 외국 기업의 기술과 서비스를 활용함으로써 이점을 얻을 수 있음을 고려해, 전문 서비스 수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수출 1조달러 달성을 위해 특혜 무역협정을 심화하는 데 집중해야 할까, 아니면 야심 찬 성장 목표를 뒷받침할 새로운 협정 체결에 집중해야 할까.

    “둘 다 중요하다. 기존 협정은 수출 시장에서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을 제한하는 정책 장벽과 규제 조치를 해소하는 발판을 제공한다. 반면 새로운 협정은 시장 접근성을 확대하고 디지털 서비스를 포함한 무역을 촉진하는 메커니즘 역할을 할 수 있다.”

    수출 경쟁력과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 당장 어떤 선제적 정책을 고려해야 할까.

    “당장 취해야 할 중요한 조치는 CPTPP 가입과 복수국간 임시 상소 중재 약정(MPIA)2)에 참여하는 것이다. 핵심광물 및 원자재 공급국과 파트너십 협상도 해야 한다. 주요 개발도상국과 지역과 추가적인 무역협정도 체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많은 국가와 프레임워크를 구축해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고 한국 기업의 시장 접근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다자간 또는 복수국간 무역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WTO에서 서명국이 협력적으로 이행하는 복수국간 협정 체결을 지지해야 한다. 이는 WTO 존립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우선순위에 있다. 다자간 협력으로 국경 간 데이터 흐름에 관한 협정을 포함해 기존 디지털 파트너십을 더 많은 국가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디지털 무역 및 데이터 흐름은 이제 규제 협력의 핵심이다. 국내 또는 해외 시장에서 한국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디지털 무역 장벽은 무엇인가.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무역 장벽은 대부분 규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기업이 데이터 처리 능력과 국경 간 데이터 흐름을 지원하는 정책 환경을 포함해 디지털 경제활동에 필요한 핵심 요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중 긴장, 북한 불안정, 국내 정치, 공급망 붕괴 중 한국의 수출 확대에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이 대비해야 할 위험 중 하나는 주요 무역 파트너가 상품과 디지털 서비스에서 무역 관계를 더 세분화하고 무기화하는 것이다. 공급 위험과 시장 폐쇄에 직면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협정과 국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우선시해야 한다.”

    보조금 증가와 ‘리쇼어링’이 전 세계 무역을 재편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한국의 수출 주도 모델에 어떤 구체적인 위험을 초래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국제 규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다고 보나.

    “보조금 전쟁과 수출 경쟁력을 약화하는 경쟁 환경에 직면하게 될 것은 분명하고 그 위험은 명확하다. 무역 파트너의 보조금 같은 산업 정책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분석과 숙의 과정을 지원해야 한다. 또 공동 행동을 통해 국가별 정책의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주요 국가의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국제 협력 분야를 찾아냄으로써 이러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많은 국가와 정책 프레임워크를 구축해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고 한국 기업의 시장 접근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을 외국인직접투자(FDI)의 매력적인 허브이자, 글로벌 수출 활동을 위한 보다 활기찬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규제 개혁을 추천하겠나.

    “한국의 무역협정 네트워크를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 국내외 기업이 국제무역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인센티브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정책에 대해 정책별 다자간 협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같은 전통 파트너를 넘어 아세안과 라틴아메리카의 신흥 경제국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까.

    “더 많은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기존 무역협정을 심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아프리카와 중동을 포함해야 한다. 디지털 및 서비스 무역 관련 정책에 대한 다자간 협정을 추진해 무역협정을 보완할 필요도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위협 속에서, 한국은 개방적이고 다자간 협력을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과 동맹 우선 관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할까.

    “개방적인 무역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며, 한국은 규칙에 기반을 둔 무역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와 다자간 협정을 협상하려는 노력을 지원하고, WTO에서 MPIA에 참여해 한국이 무역 분쟁 시 패널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경우 상소단계를 활용할 의사가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다. 프렌드 쇼어링3)은 주요 자원의 공급 위험을 줄이는 측면에서 경제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자주의와 WTO와 무역협정에서 지속적인 참여를 뒷받침하는 다각화다.”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무역 원조, 역량 강화 사업이 해외에서 한국 기업을 지원하고 미래 수출 시장인 개발도상국과 파트너십을 육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무역 원조는 핵심 물자 접근성 향상과 경제 안보 강화에 기여한다. 또 개발도상국과 디지털 서비스 무역에 초점을 맞춘 무역협정 체결을 촉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디지털 서비스 무역의 경우, 개발도상국의 규제 시스템 강화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용어설명
    • 1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 동반자협정(CPTPP)

      일본, 영국, 캐나다,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총 12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다자간 FTA로, 높은 수준의 관세 철폐와 규제 완화를 통해 무역·투자를 자유화하고 경제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 2복수국간 임시 상소 중재 약정(MPIA)

      WTO 상소기구의 기능이 정지된 이후, 상소 기능의 수행을 위한 임시적 대안으로 유럽연합(EU)과 중국 주도로 2020년 출범. 회원국 간 WTO 분쟁 시 패널보고서 채택이 불발될 경우 상소기능을 임시적으로 제공하도록 고안된 복수국간 약정이다.

    • 3프렌드 쇼어링

      기업과 정부가 지정학적 위험을 줄이고, 회복력을 강화하며, 안정적으로 자재 접근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국으로부터 벗어나 정치·경제적으로 우호적인 국가로 공급망을 이전하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