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계경제는 불확실한 시간을 보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각국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는 새로운 무역 질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중 갈등이 커지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희토류 등을 둘러싼 공급망 전쟁도 확대됐다. 유럽연합(EU)도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인상하고 쿼터를 제한하는 등 보호무역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2026년은 불확실성이 컸던 2025년보다 세계경제와 무역이 회복력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제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0.1%포인트 상향 조정해 3.1%로 제시했다. 반면 세계무역기구(WTO)는 2026년 세계 상품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1.8%, 0.5%로 잇따라 낮췄다.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현재 관세정책과 보호무역주의가 세계무역의 활력을 꺾고 있다”며 “2026년은 글로벌 통상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 경쟁 속 EU도 보호주의 참전
세계 통상 질서는 관세 전면전의 여파, 규범 경쟁의 심화, AI·데이터 기반 교역의 폭발적 성장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은 2026년에도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2025년 시작된 미국의 고율 관세정책이 미친 영향이 본격적인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실효 관세율이 급증하면서 물가 상승과 교역 둔화 조짐이 현실화했고, 반도체·철강·의약품·AI 부품 등 주요국 전략산업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 가능성도 남아 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미·중 패권 전쟁의 불씨가 언제든 다시 살아날 것이란 우려는 지금도 제기된다.
중국은 2026년 경제개발을 촉진하고 기술 자립을 목표로 하는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 을 시작한다. 이는 기술 패권을 둘러싼 양국 간 무역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을 보탠다. 미·중 통상 갈등은 반도체나 배터리를 넘어 전력망· 데이터센터, AI 인프라, 기술 표준 등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AI, 양자 기술 등 첨단산업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해 AI와 로봇에 이어 ‘기술 자립’ 노력을 계속해서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과 미국과 서방 국가의 대응책 마련은 2026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부과한 상호 관세의 위법성에 대한 미 연방 대법원의 심리 결과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1월로 다가오는 미국의 중간선거도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뒤진 EU도 ‘지속 가능성’을 명분으로 무역 장벽을 쌓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 통상 환경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CBAM은 EU가 탄소배출이 EU대비 높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부과하는 일종의 무역 관세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탄소 집약 산업에 배출과 상응하는 비용이 부과되며, 이는 한국 철강 업계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안 떠오른 복수국 간 협정과 디리스킹, 북극 항로
한편에선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가치를 재확립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WTO가 역할을 잃으면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 복수국 간 협정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인도에 RCEP 가입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등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보호무역의 틀 안에서 블록 간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하는 셈이다. 2026년 가을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다자간 자유무역 질서를 강조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도 위험 완화(de-risking) 등 제 살길 찾기에 나섰다. 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베트남·인도·멕시코 등 제삼국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 신흥 경제국 협력 체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와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중심으로 ‘탈달러’ 흐름도 주목할 부분이다. 브릭스와 SCO 회원국에서 달러 결제 비율은 20년 동안 꾸준히 줄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중국과 러시아 간 위안화 결제 비율은 2022년 17%에서 2023년 48%로 급증했다.
미국외교협회 종위안 조 리우 연구원은 “당장은 달러 패권이 흔들리지 않겠지만, 금융·무역 결제 다극화가 외환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무역이 둔화하면서 해상 운송비와 물류비는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해의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상 운송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은 최근 지구 온난화로 열린 북극 항로를 대안으로 보고 있다. 북극 항로는 수에즈운하보다 운항 거리가 30%가까이 짧아 물류비와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어 각국이 주목하는 새 운송로로 떠올랐다. 한국은 2026년 북극 항로 첫 시범 운항에 나선다.
AI·디지털, 무역 지형 바꾸나
AI는 최근 글로벌 무역 성장을 주도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AI 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중간재와 디지털 서비스 교역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 은행은 AI 호황이 2026년에도 이어지며 세계경제의 성장축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통상 전문가는 올해를 통상 환경이 구조적으로 바뀌는 ‘전환점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콘텐츠·데이터·의료·핀테크 등 디지털 서비스 수출이 본격화하며 상품의 시대에서 서비스의 시대로 전환 도 올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최근 상품 무역은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비스·디지털 교역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디지털 무역에서 미국(시장 중심), 중국(국가 중심), EU(규제 중심) 등 세 나라의 철학이 뚜렷하게 갈리면서, 인터넷 세상이 정치·경제·기술 장벽으로 나뉜다는 뜻의 ‘스플린터넷(splinternet)’1)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선 디지털 무역에서 이익 분배 불균형과 기술 격차 심화가 또 다른 정치적 긴장과 갈등을 불러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26년에는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환율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현재 무역 둔화는 단기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며 “AI·디지털 산업의 성장으로 전통 제조업 둔화를 상쇄할 새로운 무역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용어설명
- 1스플린터넷(splinternet)
기술·상업·정치·민족주의· 종교 및 서로 다른 국가적 이익 같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인터넷이 분열되고 나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로 인터넷 발칸화라고도 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에“강력한 세력이 인터넷을 발칸화하려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인터넷이 곧 지리적 및 상업적 경계를 따라 분열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