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보기 특별기고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혼돈 속 붕괴하는 질서와 새로운 통상의 조건

지난 수년 동안 국제무역은 자유무역의 신화를 벗어던지고 경제 안보와 기술 패권의 시대로 이동해 왔다. 미·중 전략 경쟁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와 공급망 분절화 그리고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무역 확산은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중에서도 2026년은 세계 통상 질서가 근본적 변곡점을 맞는 특별한 해가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공세적 관세정책이 시작된 2025년 전 세계는 미·중 간 갈등을 넘어서 전 세계가 미국과 통상 문제로 갈등을 빚는 양상으로 발전했다. 통상 환경이 악화하는 와중에도 2025년 국제무역은 상당 부분 부정적 충격을 흡수하는 역량을 보여 왔다. 하지만 그 여력이 소진되는 2026년 국제 통상 질서는 각자도생의 축소 균형으로 재편되는 결과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단순한 경기 순환이나 무역정책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질서 자체의 재조정을 뜻한다.

오락가락 美 통상 정책이 만든 무질서 비용 상승

2025년은 국제 통상에서 혼돈이 본격화한 해였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모든 교역 상대국에 고율의 상호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실효 관세율은 2024년 2.5% 수준에서 2025년 4월 30%를 넘어섰으며, 지금도 평균 20%대의 고율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관세 수입은 전년 대비 136% 이상 증가했지만,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잦아들고 교역 질서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는 급변 사태를 맞고 있다. 각국은 관세 회피를 위해 선구매에 나섰고, 미국의 월별 수입량은 전례없이 등락했다. 교역 리듬이 깨지고, 공급망이 불안정해졌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자국우선주의’라는 정치적 명분 아래 교역 비용 상승과 불확실성 확대라는 실질적 손실을 초래했다. 2026년에는 그 혼돈의 피해가 본격화할 것이다.

트럼프 관세정책, 통상 환경 결정할 최대 변수

2026년 통상 환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미국 관세정책이다. 반도체, 철강, 의약품, AI 부품에 이르기까지 품목 관세 범위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재고 비축과 물량 조절을 통해 충격을 흡수했던 2025년과는 달리 2026년에는 관세의 실질적 부담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확대한다. 미국의 경제 둔화는 곧 세계 교역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미·중 갈등은 2026년에도 통상 질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합의가 결렬되면 상호 100% 관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희토류, 농산물, 에너지 등 상호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 제한적 합의 가능성도 있다. 교역 회복세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셋째, 미국의 문 닫기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철강과 전기차에 대해 관세 할당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원산지 증명 강화와 공급망 규제는 새로운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되면 세계무역은 블록화와 비관세장벽 경쟁으로 퇴행할 수 있다.

넷째, AI 투자가 확대되고 디지털 교역이 확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AI 관련 상품과 서비스 교역은 2025년에 전 세계 상품 교역 증가의 46%를 견인했다. 2026년에도 순조로운 증가세가 예상된다. AI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라우드 서비스 등 중간재와 디지털 서비스 교역이 새로운 성장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도 미국 내 생산을 전제로 AI 관련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다섯째, 만약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1)이 종식되고 전후 복구 사업이 본격화하면 세계 교역에는 긍정적이나 대만해협과 중동의 불안, 미국의 재정 위기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38조달러를 넘어선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상대적 고금리 지속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교역에 구조적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모든 변수를 종합하면, 2026년 세계 상품 교역은 0.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험난했던 2025년의 2.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성장을 견인했던 아시아 역시 대(對)미국 수출 감소로 성장세가 둔화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비스 교역은 디지털 서비스, 여행, 운송 부문을 중심으로 증가가 예상된다. AI 기반 산업의 확장, 온라인 서비스 교역 확대, 콘텐츠 수출 증가는 새로운 성장축이 될 것이다. 결국 새해는 ‘상품의 시대에서 서비스의 시대’ ‘물류 글로벌화에서 데이터 글로벌화’로 전환이 가속화하는 해가 될 전망이다.

경제 안보와 디지털, 신통상의 핵심 축

2026년 통상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안보와 디지털 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역 질서, 즉 신통상(new trade)으로 요약된다. 먼저 경제 안보 측면을 살펴보자. 에너지, 반도체, 핵심광물에 대한 안정적 조달이 모든 국가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2026년은 각국 경제 안보 전략이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협력하는 이합집산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단절, 호주,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일부 등 제삼국과 적극적인 제휴 등 경제·안보적 고려가 모든 품목과 지역에서 핵심 이슈가 된다. 한국은 공급망 동맹을 다변화하고, 위험 공유형 공급망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개혁과 신통상 규범 형성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둘째, AI, 데이터, 알고리즘이 새로운 교역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무역 규범은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의 영역을 넘어 국제 경쟁의 핵심이 됐다. 한국은 데이터 이동, 개인정보 보호, AI 윤리 기준 등을 포괄하는 ‘K-Digital Trade Framework’를 바탕으로, 주요국과 디지털 경제협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탄소 중립, 순환 경제, 공급망 윤리성은 미래 통상의 핵심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은 녹색 산업과 무역 제도 연계를 강화하여 탄소 감축이 곧 수출 경쟁력이 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는 기존의 수출 지원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리스크 관리형 통상 전략에 전력해야 한다. 관세, 비관세, 기술 규제 등 복합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통상 정책과 산업 정책의 연계를 강화하며 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2) 등 다자주의 협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기업 역시 새로운 통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리스크 분산형 글로벌 가치 사슬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반 경영을 강화, 탄소 감축, 인권, 데이터 보호 등 글로벌 규범에 부합하는 경영 구조를 확립하는 한편, AI를 활용한 수출입 효율화, 디지털 플랫폼 무역, 글로벌 데이터 교역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전략적 통상 국가’로 전환

2026년의 통상 환경은 불확실성과 분절화 그리고 새로운 기술 질서가 공존하는 전환기다. 자유무역의 이상은 후퇴하고 있으나, 기술과 데이터 확산을 통해 교역은 다른 형태로 확장하고 있다. 이제 통상은 국가 전략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규범 형성에 참여하는 규범 국가, 위기 속에서도 공급망을 유지하는 신뢰 국가, 기술혁신을 통해 성장을 견인하는 혁신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변화의 중심에서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만이 불확실성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다.



용어설명
  • 1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2025년 2월 유엔과 세계은행, EU 집행위원회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동 발표한 ‘4차 긴급 재건 피해 및 수요 조사’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쟁 재건과 복구에 앞으로 10년간 5240억달러(약 749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 2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태평양에 접해 있는 국가 간 관세 철폐와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한 메가 FTA이다. 미국이 빠진 뒤 일본, 호주, 베트남 등 11개국으로, 2018년 3월 출범했다. 2023년 영국이 추가 가입해 현재 회원국은 12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