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함께 풀기 대담 박인휘·이효영·차두현 전문가 3人 "AI 강국 기반 마련⋯ 국가 위상 제고로 기업 활동에 자양분"
  • 고성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9일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에 참석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11월 1일 폐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정상회의(이하 APEC 2025)는 의장국인 한국의 조율로 ‘경주선언’을 채택했다. 앞서 트럼프 1기 정부 때인 2018년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무역을 둘러싼 미·중 입장 차로 공동선언이 불발된 전례가 있었다. 반면 APEC 2025는 ‘APEC 인공지능(AI) 이니셔티브’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를 채택하는 등 성과를 이뤘다. APEC 역사상 최초로 AI와 인구구조라는 인류 공동 도전 과제를 함께 풀어가기로 합의했다. ‘통상’은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원장, 이효영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 교수 등 전문가 3인에게 APEC 2025의 주요 성과,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이후 통상·외교 전망을 물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KDI국제정책대학원 통상산업정책학 석사, 서울대 국제학 박사,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 부연구위원

    APEC 2025의 가장 큰 성과는.

    이효영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 교수(이하 이효영)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개최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라는 점에서 우선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 APEC 2025는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 등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심화하는 가운데 처음 열린 다자 외교 무대였는데,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다자 협력 복원과 새로운 통상 질서 논의의 가교 역할을 했다. 다자 회의뿐 아니라 다수의 정상 간 양자 회담을 동시에 진행하며 다자와 양자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기존 국제무역 질서와 글로벌 공급망이 지정학·지경학1)적 노선에 따라 분절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 간 지속적인 연계와 공동 번영 의지를 재확인했다. 비록 경주선언에 ‘자유무역체제 지지’라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강력한 무역 및 투자’ ‘경제 통합’에 초점을 맞추며 회원국 간 무역 증진과 역내 경제 통합을 통한 무역자유화 의지를 표명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원장(이하 박인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다자주의인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은 매우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역내 국가와 자유롭고 투명한 교역이 보장되어야만 한국의 국가이익이 확보될 수 있으므로, 국제 정치적으로 너무도 미묘한 시점에 한국이 APEC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큰 외교적 성과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이하 차두현) “가장 큰 성과는 한국이 국제 이슈에서 단순한 청중이나 의제의 소비자가 아니고 주요 의제를 설정하고 그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의제 창출자(agenda setter)’로서 역할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의제가 미래를 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창의적 해법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한국이 제시한 창의적 해법의 대표 사례는 ‘AI 기본 사회’다. AI 기본 사회를 건설하려면 과학기술뿐 아니라 정보의 자유로운 유포와 공유, AI에 대한 형평성 있는 접근 보장, 국가 간 및 국내 차원의 소득·지식 격차 해소 등의 국제적인 과제에 대한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AI 활용에 대한 도덕적 기준 마련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는 강대국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다양한 국가가 지혜와 노력을 결집해야 한다. 한국은 자유무역, 다자주의를 주창하고 나옴으로써 강대국 간 각축에 불안해하는 여러 국가에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이런 비전은 강대국과 대척점에 서서는 해결하기 힘들다.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강대국과 협력 기반을 확장했다. 다자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동시에 강대국과 소통에도 충실했다는 것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할 성과다.”

    성균관대 경제학,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관계학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현 한국APEC학회 이사

    APEC AI 이니셔티브가 채택됐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에 총 26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한다고 약속했다.

    이효영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AI 협력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다자 무대에서 보여줬다. APEC AI 이니셔티브는 APEC 역사상 최초로 채택된 AI 로드맵이다. 한국이 이를 주도해, 우리가 신뢰할 수 있고 책임 있는 AI 국제 표준과 거버넌스 논의를 주도하는 국가로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 AI 기술 개발의 속도와 규모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AI 기술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에 특화된 피지컬 AI(Physical AI·자율주행차나 로봇 등 물리적 형태가 있는 AI) 개발을 가속하고 해외 기술력에 의존하지 않는 소버린 AI(Sovereign AI·특정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AI)를 구현해 우리의 목표인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결국 우리 AI 기업이 국제 표준과 기술 역량을 동시에 충족하는 글로벌 모델을 만드는 데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AI 기업이 차세대 AI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더 공고히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인휘 “APEC 의장국으로서, 한국이 AI 및 미래 세대와 같은 새로운 어젠다를 자유주의 질서에 효과적으로 접목하면서 APEC의 미래지향적인 지향점을 잘 제시했다. 또한 자유무역과 관련해서도 과거의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무역이 맞닥트린 다양한 과제를 직시하면서 동시에 자유무역 정신을 지키고자 한 점은 훌륭한 리더십이었다”

    차두현 “올해 한국은 APEC 의장국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2024년에 이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도 활동했다. 이런 활동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한국이 제시하는 의제에 대한 공감대와 수용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즉, 단순한 국가적 위상의 제고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을 위해서도 소중한 자양분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 연세대 정치학 석·박사, 전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

    APEC 2025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 무엇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까.

    이효영 “APEC AI 이니셔티브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AI를 통한 역내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후속 조치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AI 센터’는 역내 AI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AI 윤리와 표준 관련 협력을 하기 위한 역내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밖에 이번 APEC 2025 기간에 체결된 ‘한미 기술 번영 업무 협약(TPD·Technology Prosperity Deal)’을 바탕으로 AI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고 국내 AI 생태계와 인프라 구축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박인휘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교역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향후에도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자유무역 정신을 추구하되, 기후변화나 글로벌 양극화 같은 문제에서는 또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 노력하면 된다.

    이번 APEC 2025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혔듯이, 국제사회는 다양한 미래 과제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국제사회를 향해 구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AI를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 태평양 국가의 인구구조 변화, 역내 국가의 문화적 유대감 강화 등 사안에서 한국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제무대에서 확실한 리더십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미·중은 정상회담에서 무역 갈등을 1년 유예하기로 했다. APEC 2025가 향후 미·중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효영 “APEC 2025 기간에 우리 대중과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이 한미 정상회담과 함께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펜타닐2) 관세’를 10%포인트 인하하고 중국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1년간 유예하며 미국산 대두 수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는 양국 간 무역 갈등의 근본적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미·중 간에는 국유기업 보조금, 불공정 경쟁, 과잉 공급, 기술 탈취 등 중국의 비시장경제 체제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미국의 고율 관세 및 수출 통제 조치에 대응하고 있어, 양국 간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미·중 간에는 여러 차례 협상이 이뤄질 것이다.”

    차두현 “근본적인 속성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무역 갈등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고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휴전 상태에 들어섰다고 많은 이가 보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다만, APEC 2025에서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경쟁과 견제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수준으로 격화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미·중 전략 경쟁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지난 8월 방미 때 밝혔듯이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안주할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안미’는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변경하기 어렵다고 본다면, ‘경중’의 대안으로 우리의 무역 및 투자 상대국을 유럽,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으로 다양화하는 ‘안미경세’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인휘 “향후에도 미·중 간에는 다양한 갈등 상황이 전개되겠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준의 갈등은 자초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특정 국가가 혼자만의 리더십으로 국제사회를 관리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직후 표방했던 입장과 비교해 보면, 지금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관계가 안고 있는 일종의 역설적인 공존 관계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APEC 2025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도 열렸다. 냉각된 양국 관계에는 변화가 있을까.

    박인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는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한중 사이에는 워낙 복잡한 사안이 많고 북한 문제를 둘러싼 전략적 고민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의 대중 반감이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다. 따라서 당장 한중 관계가 복원될 걸로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우리 국민은 한미 동맹은 물론, 안정적인 한중 관계가 한국의 국가이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성사될 것이고 결정적으로 양국 관계는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판단한다.” 

    이효영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시 주석과 이 대통령의 한중 정상회담은 그동안 냉각되어 있던 양국 관계를 전면적으로 회복시키는 모멘텀을 제공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고위급 소통 채널을 정례화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했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을 가속화해 경제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로 합의했다. 이외에도 혁신·창업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협력 기회를 모색하고 인적 교류 확대 및 민간 협력과 관련된 현안 해결을 통해 실질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향후 경제와 민생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양국 간 정치적 신뢰가 제고되고 양국 간 관계 개선의 동력이 더 확보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두현 “외형적인 면에서는 일정한 개선의 모습을 보일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한중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모두 과도한 기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오랜 한미 간의 동맹 관계를 이해해야 할 것이고 한국 역시 남북한 관계에 있어 중국이 전통적으로 북·중 관계를 우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접고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만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한중 관계의 진정한 개선의 시발점이라고 본다.


    용어설명
    • 1지정학·지경학

      지리가 국가의 이익과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 지정학이고, 이를 주로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검토하는 것이 지경학이다.

    • 2펜타닐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의 일종으로, 헤로인보다 50배나 강력하다. 미국에서는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2022년에만 약 11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18~49세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또 중국 기업이 현재는 미국에 직접 수출하기보다 주로 펜타닐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 원료를 멕시코의 마약 밀매 조직에 공급하고 있으며, 멕시코에서 중국산 원료로 만든 펜타닐과 원료가 국경을 넘어 미국에 유통된다는 게 미국 정부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