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0일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10주년을 맞게 된다. 지난 10년간 한중 FTA는 양국 교역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중 FTA 발효 이후 두 나라 간 교역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2274억달러였던 한중 교역액은 2024년 2729억달러로 늘었다. 인천 지역의 경우 FTA 발효 10년 만에 교역액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교역액 증가와 함께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철강, 화장품 등으로 수출품 다변화도 진행됐다. 한중 FTA는 양국 간 무역 규모를 전체적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제조업 부문에서 상당히 증가했고, 수입 또한 저렴하고 다양한 중국산 제품 유입을 촉진하며 소비자 후생 증대에 기여했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중국의 산업 고도화에 따라 전자 부품, 화장품 등 일부 품목은 비관세장벽에 직면하면서 중국과 경쟁이 심화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통상’은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 무역학과 조교수,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초청연구위원,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세계경제분석실 실장 등 전문가 3인에게 한중 FTA 10년에 대한 평가와 발전적인 향후 양국 협력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한중 FTA 1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무엇인가.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 무역학과 학과장(이하 남은영) “한중 FTA 10년은 단순한 교역 확대를 넘어선 산업구조의 질적 전환을 가져왔다. 무역 형태가 가공·조립 중심에서 첨단 기술, 고부가가치 중간재 중심으로 바뀌었고, 대중 수출은 반도체, 이차전지 등 기술집약적 품목이 중심이 됐다. FTA 발효 당시 37.8%에 불과했던 첨단 중간재 수출은 2024년 46.2%로 늘었다. 반도체 장비, 배터리 소재 등 주요 품목은 무관세로 전환됐다. 이 같은 변화는 제도적 신뢰(institutional trust) 구축의 결과다. 양국은 전자 원산지 인증, 통관 간소화 등을 통해 무역 절차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제도적 상호 신뢰 구조’를 구축했다. 거래비용이론에서 말하는 불확실성 감소의 제도화1)가 실현된 사례다. FTA는 이제 단순한 관세협정을 넘어 산업·기술·행정이 결합된 경제 헌정(Economic Constitution)으로 발전하면서 교역을 거래가 아닌 ‘규범’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양평섭 KIEP 초청연구위원(이하 양평섭) “전 세계적인 지경학적 리스크 확산으로 인해 한중 경제협력의 양적 확대가 제한받는 상황에서 구조적인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중 패권 경쟁 등 지경학적 리스크가 발생하면서 한중 경제협력은 성장에 제한받았다. 2022년 양국 간 교역액은 3104억달러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본격화로 크게 위축됐다. 다만 양국 관계는 상호 협력 속 경쟁이 심화하던 ‘협력적 경쟁자’ 에서 상호 경쟁 속 공정 분업이 이루어지는 ‘경쟁적 협력자’로 변했다. 지난 10년간 한중 무역에서 무역수지 역전, 무역 의존관계 역전(수입 의존 > 수출 의존), 공급망 의존 역전, 대중국 투자의 제삼국 이전이라는 대대적인 구조 전환이 일어났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세계경제분석실 실장(이하 이치훈) “2015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던 양국 간 교역액이 2022년 3104억달러를 정점으로 찍고 축소되는 추세에 수출입의 구조적 변화가 발생한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수출 규모가 비교적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수입의 경우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완만해지면서 중국 역할이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에서 부품 등의 공급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로 대중국 무역수지는 2023년 이후 3년 연속 100억달러 내외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최대 무역 수지 흑자국으로서 역할은 사실상 끝난 상황이다.”
양국 교역액이 2015년 2274억달러에서 2024년 2729억달러로 연평균 2%씩 늘었다. 이런 수치를 바탕으로 한중 FTA 성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남은영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2024년 기준 미국 다음으로 큰 교역 상대국이며, 중국의 22개 FTA 파트너 중 교역 규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중 FTA 성과는 단순한 교역액 증가를 넘어 교역의 ‘질적 전환’, 즉 무역의 구조적 전환에 있다. 한중 교역은 가격 중심의 단순 거래에서 기술·서비스가 결합된 복합 가치 사슬형 무역구조로 진화했다. FTA 발효 10년 동안 한국의 대중 수출은 고부가가치 중간재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반도체, 정밀화학 등 기술집약적 품목 비중이 2015년 37.8%에서 2024년 46.2%로 확대됐다. FTA 양허에 따라 무관세 혜택 품목은 6279개에 달하며 배터리 전해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부품 등이 0%대 세율에 진입했다. FTA 핵심 성과는 관세 인하를 넘어 산업 간 연계성과 규범 기반의 교역 안정성 제고에 있다. 한중 FTA를 통해 구축한 제도적 신뢰는 기업이 정책 변동성 및 공급망 충격에도 안정적으로 교역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결국 한중 FTA는 한국의 대중 수출이 기술·혁신 기반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발판이 됐으며, FTA 10년은 무역 확대의 시대가 아닌 산업구조 재편의 시대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양평섭 “지난 10년간 한중 무역액은 연평균 2%씩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대중 수출은 연평균 0.3%씩 감소한 반면, 대중 수입은 연평균 5.0%씩 증가하면서 2023년 이후 중국과 교역에서 무역 적자로 전환됐다. 이 같은 결과는 중국의 산업 및 공급망 자급화,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인한 바 크지만, 한중 FTA도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상품 분야의 FTA 협정이 한국의 대중국 수출보다 중국의 대한국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2022년 이후부터 중국의 관세 인하가 시작된 중간재 분야에서 중국의 자체 공급 역량이 대폭 강화되면서 관세 인하 효과가 약해졌다.”
한중 FTA 10년을 계기로 양국이 교역을 넘어 산업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과제는.
양평섭 “한중 경제협력을 무역에서 산업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지경학 리스크를 제어하고 대전환에 부합하는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 글로벌 지경학 리스크 극복을 위해 미·중 기술 경쟁의 영향을 받는 산업 협력 분야를 불가능(red), 조건부 협력(yellow), 필수 협력(green)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글로벌 대전환 대응 협력이다. 그린·디지털·인공지능(AI) 전환 시대에 맞춰 관련 상품 및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무관세화) 조치와 지경학 리스크 극복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미래 산업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초기 성장기 단계의 미래 산업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기술 개발 및 산업화 협력을 추진해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약해진 협력 수요를 보완할 수 있다. 공정한 산업 협력 기반 조성도 빼놓을 수 없다. 비시장적 조치(보조금, 출혈 수출) 및 지식재산권 보호 등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공정한 협력을 위한 정책·제도적 노력에 나서야 한다.”
이치훈 “경제성장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막대한 규모의 시장과 산업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구매력 평가(PPP·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미국을 앞질렀다. 따라서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의 불확실성에도 중국과 경제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협력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 특히 환경 기술, 재생에너지, 스마트시티, 바이오, 의료 등 새로운 협력 블루존(Blue Zone) 분야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한 체계적인 대응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한중 경제 관계가 과거 상호 보완에서 현재의 경쟁과 세밀한 협력 구조로 전환된 상황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부분적 협력 공간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삼성전기가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 수천억원 규모의 적층 세라믹 콘덴서(MLCC)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참고로 한국은 ‘중국 시장에 더 이상 팔 게 없다’는 부정적 시각이 확산하는 상황에도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두 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한중 FTA가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치훈 “우리나라는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미국의 약 두 배 수준이다. 베트남을 제외하면 전 세계 1위다. 따라서 공급망 다변화 및 안정 전략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중국에 대한 높은 공급망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급격히 낮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하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핵심 광물의 경우 중국의 전 세계 희토류 매장 점유율은 여전히 68%에 달하며, 희토류 정제 가공의 경우 90% 이상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현실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는 중국과 협력 체계를 강화해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제삼국 다변화 및 국내 대체 공급망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지난 3~4년간 중국 공급망 의존도 축소 노력을 지속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의존도가 상승했다. 미국도 같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와 희토류 최소 쿼터제 도입 등을 추진하는 한편 JDM(합작개발생산) 등을 통해 한국의 기술 역량과 중국의 생산능력을 결합하면서 공급망 분리 시 중국 기업의 피해도 커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우리 기업의 공급망 안정을 도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은영 “한중 FTA는 점차 공급망 거버넌스 체제(Supply Chain Governance System)로 발전하고 있다. 2023년 11월 한중 상무장관 회담 이후 1년여 만인 202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 상무장관회의에서 핵심 광물, 배터리 소재, 반도체 부품의 ‘공급망 핫라인’ 구축이 공식 의제로 채택됐다. 같은 해 10월 고위급 대화에서는 희토류 수출 통제 완화 및 공동 비축 체계를 논의했다. 이런 협력은 단순한 무역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안보의 핵심이다. 한국은 배터리·전기차 산업에서 리튬·코발트·망간 등 중국 의존도가 70%에 달한다. 한중 FTA를 기반으로 한 공급망 협력은 이 같은 전략자원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안전판이 되며, 단기적으로는 리스크 완화, 장기적으로는 기술 공유 및 표준화로 이어진다. 예컨대 한중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탄소 중립 배터리 인증 체계’나 ‘광물 원산지 추적 시스템’은 향후 국제 표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한중 FTA는 단순한 시장 협정이 아니라, 산업 안보의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 공급망 협력은 양국의 산업 정책을 연결하는 실질적 통상 외교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양국 간 무역기술장벽(TBT) 완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통한 제도 개선이 중소기업이나 수출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남은영 “TBT2) 완화는 중소기업에 ‘시장 진입의 생명선’이다. 대기업과 달리 자체 설비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동일 인증을 반복해야 하는 구조적인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2025년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9차 한중 FTA TBT 위원회’는 이 같은 현장 문제를 다루면서 화장품, 의료 기기, 홍삼, 제품 탄소 발자국 인증 등 중소기업 관련 기술규제를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일례로 홍삼의 통관 지연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인증 상호 인정(MRA) 제도를 도입하면 수출 비용을 10~15% 줄이고 서류 처리 기간은 40% 단축할 수 있다. TBT 완화는 중소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로 직결된다. TBT 완화는 단순한 행정절차 간소화를 넘어, 양국이 제도적 신뢰를 산업 수준에서 구현하는 과정이다. 특히 탄소 인증, 녹색 라벨 등 새로운 TBT는 한중 FTA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통상 규범으로 확장하는 관문이다. FTA의 TBT 논의는 중소기업에 시장 접근의 문을 열고, FTA 자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양평섭 “양국이 채택하고 있는 안전, 표준, 품질 측면에서 상이한 표준으로 인해 발생하는 TBT, 위생 검역기준(SPS), 친환경 인증 분야의 비관세장벽을 완화하는 것은 무역 절차 간소화를 통한 무역 거래 비용과 시간 절감에 필수적인 요소다. 비관세장벽을 낮추는 것은 한중 양국 간 무역 활성화에 있어 관세 인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의 소득 향상과 더불어 수입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화장품, 의료 기기, 의약품, 식품류(홍삼 등 건강식품), 친환경 관련 제품 등의 분야에서 상호 무역을 확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같은 완화 조치는 실질적인 제도 집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중앙 정부 차원에 머물지 않고 지방정부와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치훈 “중국은 이제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응용 기술에서도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AI 등 차세대 첨단 기술력도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해외 첨단 기술 분야 유학생 파견을 기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중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 만난 한국 과학기술원 연구원은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도 중국이 미국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기술협력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기술협력을 통한 수출 기업의 활로 모색도 필요한 상황이다.”
용어설명
- 1불확실성 감소의 제도화
경제주체가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규범·법규·협약 등 공식·비공식적 제도를 구축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코즈와 노스의 거래비용이론에 기반하며, 제도를 통해 거래 비용과 위험을 낮추고 상호 신뢰를 높여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 2TBT
국가 간 무역에서 표준, 기술 규정, 적합성 평가 절차(인증·시험) 등이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무역기구(WTO) TBT 협정은 이 같은 장벽이 불필요한 차별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며, 정당한 목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