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 10년은 양국 경제 관계를 ‘수직적 보완’에서 ‘수평적 협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한중 FTA와 이후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1)으로 인해 양자 간 무관세 품목 비중을 95% 이상으로 끌어올린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는 디지털·녹색 분야 규범 연계와 표준 상호 인정을 통해 협력을 한 단계 더 고도화해야 한다.”
잔더빈(詹德斌)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겸 한반도연구센터 소장은 한중 FTA 10주년을 맞아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5년 6월 1일, 한국과 중국은 한중 FTA 정식 서명을 완료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20일부터 발효되면서 양국은 관세 철폐 등 제도적 경제협력 틀을 마련했다. 양국은 품목 수 기준 약 90% 이상, 수입액 기준 약 85% 이상 품목에 대해 최대 20년 이내 관세를 철폐하기로 약정했다. 이후 서비스·투자 분야 등에 대한 후속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잔 교수는 한반도 및 한중 관계 전문가다. ‘현대 국제 관계’ ‘국제 포럼’ ‘동북아 포럼’ 등에 다수 한국 관련 논문을 게재해 왔다. 그는 향후 5년간 반도체·전기차·수소에너지·디스플레이와 스마트 단말기 등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 사슬이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은 현재 몇 건의 FTA를 체결·발효 중인가.
“중국은 5개 대륙에 걸쳐 30개 국가·지역과 23건의 FTA를 체결했다. FTA 네트워크는 계속 확대·심화하고 있다. 10여 건은 협상 중이고 7건은 타당성 연구 단계다. 중국이 FTA를 체결 및 발효하는 것은 국제 표준 규범과 접점을 넓혀 제도형 개방을 심화하고, 국내 개혁과 발전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동시에 시장 다변화로 특정 시장 의존을 줄이고 산업·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고자 한다.”
여러 FTA 파트너 가운데 한국의 위상은.
“한국은 중국의 매우 중요한 FTA 파트너다. 중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맺은 첫 FTA이기도 하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높은 기술 집약도, 산업 사슬 통합이 강력한 편이라 핵심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수년간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었고, 2024년 한국은 중국의 두 번째로 큰 교역 파트너가 됐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일본을 앞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한국은 무역 규모 면에서 선도적인 교역 상대국일 뿐만 아니라 기술 협력 측면에서도 중국의 핵심 파트너다.”
중국 FTA 파트너의 지역 분포와 한국의 비교 우위는 어떻게 되나.
“RCEP와 함께 FTA의 경우, 아시아 비중이 가장 높고(아세안 국가, 싱가포르·파키스탄·캄보디아·몰디브 등), 다음이 미주와 라틴아메리카(칠레·페루·에콰도르·니카라과 등), 유럽(스위스·아이슬란드·세르비아 등)순이다.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문화적 이해가 깊으며, 반도체·자동차·배터리·디스플레이·화학 소재에서 기술 우위가 있어 초과 이익을 얻을 잠재력이 크다.”
글로벌 FTA 구도에서 한국의 잠재력은 무엇인가.
“한국은 기술 파급효과와 표준 선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시장-규모-효율성’의 이점을 중국의 초대형 시장 및 제조 시스템과 결합해 RCEP 및 더 넓은 제삼자 시장(라틴아메리카·중동)에서 공동 세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한중 양국의 긴밀한 협력은 한·중·일 FTA 협상을 가속화하고, 동북아시아는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합 과정을 공동으로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RCEP와 한중 FTA 융합은 지역 산업 사슬 내에서 심도 있는 분업 재편을 촉진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은 반도체 및 산업용 인공지능(AI) 분야의 기술적 우위를 중국의 방대한 시장 수요 및 강력한 산업화 역량과 결합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더 넓은 시장에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은 다양한 당사자와의 탄탄한 관계와 산업 경험을 활용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산업 네트워크 내에서 표준 조율 등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은 지리적·산업적 이점을 바탕으로 RCEP 회원국은 물론, 글로벌 가치 사슬을 연결하는 핵심 허브로 성장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중 FTA 10년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꼽는다면.
“양국 교역은 수교 이후 60배 이상 늘었다. 이는 양국 경제 관계의 긴밀함과 막대한 규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지난 10년간 한중 FTA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양국 무역구조의 최적화와 고도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양국 상품 무역에 대한 관세 부담을 대폭 줄이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양국 경제의 심층적인 통합을 이룬 것으로 생각한다. 관세 인하와 통관 개선으로 경제가 강하게 통합됐고, ‘수직적 보완’에서 ‘수평적 협업’으로 질적 도약을 이뤘다. FTA와 RCEP가 맞물리며 무관세 품목 비중이 95% 이상으로 확대됐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중 수출, 중국의 대한국 수출에서 각각 성장한 분야는.
“한국의 대중 수출 분야에서는 반도체, 화학제품, 자동차 부품, 화장품 등 고부가가치 중간재와 소비재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두드러졌다. 이러한 분야는 관세 인하의 수혜를 입었고,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 반면 중국의 대한국 수출 분야에서는 전기기기, 전자 부품, 통신·컴퓨터 장비, 태양광 모듈, 리튬·전해 소재, 공작·건설기계, 소비·전자·중간재 등이 빠른 성장을 보였다. 중국의 중·고급 제조 및 신에너지 비중이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소비자의 요구를 점차 충족시키고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제품의 품질, 브랜드 그리고 기술적 내용의 향상이 반영됐다고 본다.”
전기차·배터리 등 한중 자동차 산업 협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한중 자동차 부문 협력은 과거 단순한 구매자·판매자 관계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파트너십으로 발전했다. 기아 등 한국 기업은 초기에는 중국의 시장 접근성과 저렴한 인력을 활용해 현지 생산 기지를 설립했다. 오늘날 협력은 이를 훨씬 넘어섰다. 예를 들어, 장쑤성 옌청(鹽城)에 있는 SK온의 배터리 공장은 그룹의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크고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일 뿐만 아니라, 상류 및 하류 기업을 유치해 옌청에 완성된 산업 생태계를 형성했다. 중국의 큰 시장 규모와 잘 발달한 공급망 그리고 한국의 배터리 기술 우위는 ‘양방향 역량 강화’ 모델을 구축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중국에 최첨단 생산 기지를 구축해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판매를 위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 기업 또한 한국 배터리 공장에 핵심 원자재나 장비를 공급하는 등 이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양사는 글로벌 하이엔드 제조 체인에 통합되고 있다. 차량 전체를 살펴보면, 일부 한국 전기차는 중국 CATL 배터리를 사용하고, 일부 중국 자동차 제조 업체는 한국산 배터리를 사용한다. 반도체 산업은 과거 한국이 상류, 중국이 하류를 담당하는 전형적인 ‘수직 보완’ 모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직면한 주요 도전은.
“첫째, 중국의 수요 구조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고급·지능형·친환경 제품과 현지화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국내시장 경쟁 심화로 신에너지·전자·장비 등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부상하면서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크게 약화했다. 셋째, 한중 양국 관계 악화로 인해 중국 국민의 한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해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용도와 선호도가 낮아졌다.”
반면 중국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겪는 제도적 장벽은 무엇인가.
“첫째, 안전·환경보호·에너지 효율·사이버 보안 등 기술 무역 장벽과 더욱 엄격한 인증 기준이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데이터 현지화·정부 조달·보안 관련 산업 등 민감한 특정 분야에 대한 접근 제한이 도입되고 있다는 점도 제도적 장벽이다. 셋째, 여론과 비관세 요인이 이러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반외세 정서가 일부 확산해 있다. 미·중 지정학적 상황은 한국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결정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딥시크(DeepSeek) 사용 제한 같은 중국 투자에 대한 엄격한 감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요인이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 및 확대에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신산업 분야에서 FTA는 어떻게 적용해야 한다고 보나.
“제조업에서는 산업 사슬 안보와 핵심 부품 상호 보장, 지식재산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에선 국경 간 데이터 유통 ‘화이트리스트(보안 평가 없이 데이터를 해외로 이전하는 목록)+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알고리즘과 소스 코드 조항의 균형을 맞추며, 클라우드 컴퓨팅 및 산업 인터넷 상호 운용성 시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녹색경제에선 탄소발자국·전과정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2) 상호 인정, 녹색 금융, 재생에너지 인증 상호 인정을 추진할 수 있다.”
한중 FTA 업그레이드를 위한 제도 혁신 방향을 조언한다면.
“서비스·투자 분야에 네거티브 리스트(수출입, 외국인 투자 등에서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특정 품목만 명시하는 방식)를 도입해 개방 수준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AI·클라우드 등 디지털 경제와 탄소 중립, 신에너지 등 녹색 경제에서 규범과 표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용어설명
- 1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 총 15개국 간의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FTA.
- 2전과정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
제품 시스템의 전 과정에 걸친 투입물과 산출물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환경 영향을 정성적·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법. 제품의 전 과정에서 제품으로부터 야기된 환경 부하를 계산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