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듣기 Interview 로버트 핸드필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공급망 관리 석좌교수 “韓 소부장, 반도체·원전·조선 투자 늘리고⋯ 수시로 공급망 점검해야
  • 김우영 기자
  • 노스캐롤라이나 운영관리 박사, 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공급망자원협력센터 사무총장, 현 퍼블릭 스펜드 포럼 전략 고문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한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은 멕시코, 남미, 동유럽 등으로 수출 지역을 넓히는 동시에 반도체, 원자력 발전, 조선 등 유망 산업으로 수출 품목을 다변화 해야 한다.”

    로버트 핸드필드(Robert Handfield)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공급망 관리 석좌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인한 통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생존 전략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핸드필드 교수는 세계적인 공급망 전문가로,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공급망자원협력센터(Supply Chain Resource Cooperative)를 이끌며 공급망 혁신과 리스크 관리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과 정부의 자문까지 맡고 있는 인물이다.

    핸드필드 교수는 “특정 산업이나 몇몇 국가에만 의존하면 위기 상황에서 대체 수단이 막히지만, 공급처와 품목을 다양화하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며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유입돼 혁신 속도도 빨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 역시 단순한 보조금 지급을 넘어 해외투자와 현지화 전략을 뒷받침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거나 니어쇼어링 (nearshoring·생산 기지 인접국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소부장 기업이 고려할 만한 지역은.

    “한국은 이미 강력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비용 제조를 목적으로 할 경우 동남아시아가 언제나 좋은 선택지다. 여기에는 스리랑카, 베트남, 인도네시아 그리고 캄보디아까지 포함된다. 이들 국가는 저비용 생산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성장하는 소비 시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 기업이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에 적합하다. 

    남미도 생산 기지 이전으로 충분히 고려할 만한 시장이라고 본다. 특히 브라질은 최근 몇 년간 여러 제약을 겪었음에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콜롬비아 역시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카르텔의 영향력이 약화했다. 따라서 남미는 한국 중간재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미국·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과 가까운 캐나다나 멕시코는 어떤가.

    “북미 지역 역시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본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미 탄탄한 산업 기반이 있으며, 각국 정부는 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동시에 이들 국가는 미국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통로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관세가 영구적으로 지속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장기적 성장을 위해 미리 인근 지역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소부장 산업은 반도체와 자동차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한계가 지목된다. 공급망 리스크 관점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어떤 취약성을 낳을 수 있나.

    “우선 반도체 분야는 괜찮다고 본다. 삼성전자란 기업이 여전히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리스크도 낮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도 계속 늘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 같은 기업은 미국 시장에서 성장을 위해 해외 사업을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 반면 자동차 산업은 불확실하다고 본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둔화하고 있고, 향후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 소부장 기업이 주목할 만한 산업은.

    “앞서 언급한 반도체 외 원자력발전, 조선 산업에 주목하면 좋다. 특히 원자력발전 산업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부품인 압력 용기 같은 대형 장비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미국은 원자력발전 기반을 확대할 계획이며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발전소 규모도 1GW(기가와트)급 대형 설비에서 300㎿(메가와트) 중형 설비로 이동하는 추세다. 조선업의 경우 한국은 미국 군과 협력을 통해 성장 기반을 넓히고, 이를 토대로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지역이 한국 기업에 중요한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보나.

    “멕시코, 남미, 동유럽이 중요한 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공급처를 한두 곳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나라와 업체로 다변화할수록 위기 상황에서도 대체할 길이 많아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 동시에 다양한 공급처와 협력하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유입돼 혁신 속도도 빨라진다.”

    정부의 역할도 궁금하다. 한국 정부가 소부장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장 집중해야 할 정책 방향은.

    “정부 정책은 해외투자와 성장을 촉진하고, 현지화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핵심은 ‘팔 곳에서 사고, 살 곳에서 팔라(Buy where you sell, and sell where you buy!)’는 원칙이다. 단순한 보조금 지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현지화 전략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이 소부장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참고할 만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국가다.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뒷받침돼 소부장 산업이 안정적으로 육성된 사례다. 또 다른 사례는 멕시코다. 카르텔 문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중대한 성장을 달성했다. 두 나라는 한국이 소부장, 즉 중간재 산업 전략을 세우는 데 의미 있는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

    +韓 수출 기업 절반 ‘미국 관세정책이 수출 최대 리스크’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수출 기업 절반 이상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올해 하반기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사실상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소부장 기업이 취해야 할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앞으로 미국에서는 원자력발전과 조선 산업에 가장 큰 투자가 집중될 것이다. 이는 대형 산업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뿐 아니라 철강을 비롯한 관련 부품 공급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역시 핵심 산업으로, 삼성전자는 소재와 제품 공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국방과 경제에 필수적인 품목은 관세 예외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 소부장 기업은 이러한 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공급망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ing)’를 정례화해 관세 충격을 줄이고, 혁신적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발 관세 충격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평소 강조해 온 ‘공급망 면역력 (supply chain immunity)’은 무엇이며, 왜 지금 특히 중요한가.

    “공급망 면역력이란 기업이 공급망 교란(disrup-tion)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재고를 쌓아두는 방식은 유통기한 만료, 운전 자본 감소, 재고 손실 등 고유한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가능한 한 취약성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를 해결할 계획을 미리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8월 나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경영학 석사(MBA) 경영 자문을 맡고 있는 월트 디그레인지(Walt DeGrange)와 함께 ‘하버드비즈니스리뷰 (HBR)’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급망 스트레스 테스트(Use AI to Stress Test Your Supply Chain)’라는 글을 기고했다. 

    여기서는 두 대기업이 AI를 활용해 시나리오 분석과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한 경험을 다뤘다.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AI 기반 시나리오 계획과 선제 대응 전략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다만 생성 AI(Generative AI)는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급변하는 현실을 반영한 시나리오를 만들려면 AI만으로는 부족하며 인간의 상상력이 반드시 더해져야 한다.”

    만약 한국 소부장 기업이 공급망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행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기본 토대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협력 업체 명단만 갖고 있어서는 부족하다. 어떤 부품을 누가 만들고, 그 공장이 어디에 있고, 그 부품이 최종 제품의 어디에 쓰이며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까지 연결된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을 ‘밸류스트림 매핑(value stream mapping)’이라고 한다.

    특히 핵심 부품을 직접 공급하는 1차 협력 업체뿐 아니라, 그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2차 협력 업체까지 확인해야 한다. 모든 협력 업체를 다 포함하려 하기보다 핵심적인 80~85%를 파악하는 게 현실적이다. 실제로 반도체 하나만 부족해도 자동차 생산이 멈췄던 2021년 미국의 사례처럼, 직접 공급 업체의 중요 부품이 끊기면 공급망은 곧바로 중단된다. 반대로 청소나 급식 같은 간접 서비스 업체는 대체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이런 식으로 핵심과 비핵심을 구분해 매핑해야 진짜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

    인력도 중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공급망 스트레스 테스트를 제대로 하려면 전담할 프로젝트 매니저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급망 모델을 만드는 일은 단순하지 않고, 납기와 일정을 꼼꼼히 관리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꼭 공급망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여러 부서가 함께 참여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해 명확한 결과물을 제때 만들어낼 책임자를 두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공급망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행하기 전에 기업이 꼭 점검해야 할 핵심 정보는.

    “무엇보다 공급망 네트워크 자체를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협력 업체가 어디에 있는지, 공장이 실제로 어느 지역에 있는지 그리고 그 정보가 제품의 자재명세서(BOM)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은 필수적이지만 큰 노력이 든다. AI 도구가 초기에 아이디어를 주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최종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지는 못한다. 결국 2차 협력 업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1차 협력 업체에 직접 묻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흔쾌히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고, 정보를 검증해 매핑을 완성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작할 토대가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