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르륵드르륵 드르륵.” 8월 21일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1층 입구. 목재 절단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전등 불빛 아래로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근로자들이 분주히 오가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달 뒤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정상회의 메인 행사장 공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김상철 경북도 APEC준비지원단장은 “8월 말 현재 공정률은 63%로, 계획대로 9월 말 완공 목표를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경주국립박물관 앞마당도 분주했다. 외국 정상을 위한 의장국 초청 만찬장이 될 전통 목조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서까래와 처마, 석조 계단, 열어들개문(전통 가옥의 개방형 출입구) 등 한국 건축양식의 자재가 하나하나 조립되고 있었다. 김 단장은 “가장 한국적인 미를 보여줄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2025 정상회의는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APEC 정상회의다. 당시 부산 APEC 정상회의가 개발도상국을 위한 최초의 글로벌 무역 라운드로 평가받는 도하개발어젠다(DDA)에 대한 지지 표명에 초점을 맞췄다면, APEC 2025 정상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 이후 처음 열리는 다자 경제 외교 무대라는 점에서 올해 하반기 최대 글로벌 경제통상 이벤트로 꼽힌다.
이번 회의에서는 관세 갈등을 둘러싼 자유무역 질서 회복을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 디지털 경제 규범, 기후변화 대응 등이 핵심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협력과 무역·투자, 에너지 안보까지 폭넓은 협력 방안도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다자 협력 복원과 새로운 통상 질서 논의의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 달라진 무역 환경에서 교역 질서를 재구축하는 논의가 대한민국 경주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번 APEC 2025 정상회의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 담판이 성사될 초대형 외교 이벤트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4월 ‘145% vs 125%’라는 극단적 보복 관세로 맞섰던 두 나라는 5월과 7월 말 두 차례 협상 끝에 관세 부과를 11월까지 유예한 상태다. APEC 정상회의에는 미·중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것이 관례여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회동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10월 APEC 2025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경우 양국 정상 간 회동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경주에서 회담할 수도 있고, 트럼프가 APEC 회의 참석 전후로 베이징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경우 APEC 정상회의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을 마무리 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APEC 2025 정상회의가 관세 문제를 넘어 다자 협력의 복원과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governance·지배구조)의 향방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