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듣기 Interview 미아 미킥 전 UN ESCAP 국장 “경주, APEC이 강조하는 연결·교류의 가치와 맞는 장소”
  • 고성민 기자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대 경제학 박사, 현 호주 와이카토대 연구위원, 현 UN ESCAP 산하 아시아·태평양 무역 연구·교육 네트워크(ARTNeT) 자문

    “경주는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상품, 인물, 사상의 교량 역할을 했다. 불교와 중국 문화를 비롯한 외부 영향이 경주에서 수용·현지화돼 한국 고유의 발전을 끌어냈다. 이 같은 상징성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강조하는 연결·교류의 가치와 잘 맞닿아 있다.” 미아 미킥(Mia Mikic) 전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 ESCAP) 국장은 APEC 개최지로서 경주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주가 한반도의 교량 역할을 한 것처럼, APEC은 한국·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21개 회원국의 지정학적 단절을 완화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7~2021년 UN ESCAP 국장을 역임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제 전문가다. 현재 UN ESCAP 산하 아시아·태평양 무역 연구·교육 네트워크(ARTNeT)의 자문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5 APEC은 경주에서 열린다.

    “2025년 2월 경주에서 열린 제1차 APEC 고위관리회의(SOM 1)에 참석한 동료들이 ‘벽이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의 문화·건축·정치적 풍요로움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릴 이번 APEC 2025 정상회의는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그 의미가 깊다. 경주는 1000년 가까이 신라의 수도였으며, 한국 문화 정체성의 뿌리를 상징하는 도시다. 통합과 연속성을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를 경주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한국이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 글로벌 협력에 나서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 경주는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상품·인물·사상의 교량 역할을 했다. 불교와 중국 문화를 비롯한 외부 영향이 경주에서 수용·현지화해 한국 고유의 발전을 끌어냈다. 이러한 상징성은 APEC이 강조하는 연결·교류의 가치와 잘 맞닿아 있다. 더욱이 APEC 2026 의장국을 중국이 맡게 되는 만큼, 한국에서 중국으로 의장국이 넘어가는 과정이 수 세기 동안 문화적 전파와 역내 연계를 상징해 온 도시 경주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깊다.”

    APEC 2025 정상회의 포스터. 경주시

    APEC이 무역과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APEC은 설립 이래 줄곧 정치적 사안보다 경제적 의제를 강조해 왔다. 이를 통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포함한 주요 충격을 견뎌냈다. 그러나 현재 고조되는 보호무역주의와 지정학적 긴장으로 지경학적 경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APEC은 여전히 본연의 역할, 즉 21개 다양한 경제권 간 대화의 장이자 공동 번영을 위한 이니셔티브의 인큐베이터로 남기를 지향한다. 하지만 현 환경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제인 ‘구속력 없는 자발적 이니셔티브에 대한 합의 형성’조차 현저히 어려워지고 있다. APEC 의제가 의도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력 중심으로 설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열이 너무 깊어 합의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화의 장이라는 APEC 메커니즘은 적어도 단절을 완화하는 완충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공급망 회복은 핵심 의제 중 하나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APEC의 대응 방안은.

    “회복력은 더 이상 선택적 부가 요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은 우리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취약성을 드러냈고, 이제 지정학은 공급망을 재편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APEC은 일정 부분 기반 작업을 해 왔다. 예를 들어 ‘공급망 연계성 프레임워크 행동 계획 (SCFAP)’, 디지털화 및 표준 공유, 친환경 조달을 위한 인센티브 등이다. 공급망 교란은 더 이상 가끔 발생하는 충격이 아니다. 이제는 성장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APEC의 역할은 공급망 회복을 위해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출발점(collective baseline)’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별로 경제가 따로 움직이면, 모든 이가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인공지능(AI) 관련 협력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도 이번 APEC 2025의 핵심 의제다.

    “AI와 인구구조 변화는 이번 APEC 2025 의제의 핵심이다. 두 주제는 국경과 정책의 경계를 동시에 넘나드는 사안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이고 자발적 성격이 있는 APEC은 공통 기반을 쌓는 적합한 장이 된다. APEC의 비교 우위는 규칙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 역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주요 7개국(G7)처럼 보다 공식적인 기구에 더 적합하다. 대신 접근 방식이 상당히 다른 경제권이 신뢰할 수 있는 역내 공간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책임 있는 방향으로 정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APEC의 강점이다. APEC의 역할은 구속력 있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을 연결하고 의견 수렴을 장려하는 것이다. AI 분야에서는 파편화된 규제 환경을 피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구 분야에서는 노동시장과 사회 시스템 회복력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APEC 2025가 미래 세대에게 남기길 바라는 유산은 무엇인가.

    “APEC의 실적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깊다. 지난 30여 년 동안 APEC은 아시아·태평양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통합된 무역 지역 중 하나로 만들었다. APEC 회원국은 관세를 크게 인하하고, 다른 무역 장벽을 해소했으며, 열린 지역 주의(open regionalism)1)를 촉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 아시아·태평양 가치 사슬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APEC 2025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일까. 나는 네 가지를 기대한다. 첫 번째는 AI 거버넌스의 명확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에 대한 더 강력한 약속이다. 세 번째는 인구구조 변화를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 마련이다. 네 번째는 무역을 개방적, 포용적,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이다. 보호무역주의가 고조되는 시대에도 이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다. 만약 APEC 2025가 이러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행한다면, 그 유산은 경제 시스템이 더욱 회복력을 갖추고, 디지털 기회가 더 공평하게 공유되며, AI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미래가 될 것이다.”


    용어설명
    • 1열린 지역주의 (open regionalism)

      지역주의에 대응해 다자간 자유무역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비배타적 및 무차별적 원칙에 입각한 지역 협력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에 따르는 모든 경제적 혜택을 무차별 원칙에 입각해 역외국에 공여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