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후 양국은 지난 60년간 다양한 협력을 진행했다. 최근 협력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반도체다. 일본은 필수 소재 및 제조 장비를 공급하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량생산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상호 보완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테라다 다카시 일본 도시샤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에 400억 엔을 투자해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며, 이 가운데 절반인 200억엔은 일본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지원받게 된다”며 “SK하이닉스도 일본 반도체 업체 키옥시아 지분을 활용해 생산 협력 가능성을 키우며 다양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테라다 교수는 “양국은 모두 고부가가치 기술 집약적 제조업에 특화되어 있지만 영역이 중복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라며 “이런 관계는 공동 R&D, 기술 표준화, 비용 절감 측면에서 협력의 여지를 넓히며, 미·중 경쟁 심화와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60년간 양국 간 경제·무역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60년 동안 양국 간 무역은 일본이 기계류를 수출하고 한국은 원자재를 공급하는 관계에서, 현재 첨단 기술 기반의 상호 의존적인 파트너십으로 진화했다. 현재는 반도체, 정밀기계, 녹색 기술 같은 고도화된 산업 분야에서 긴밀히 통합돼 있다. 이는 양국이 글로벌 가치 사슬(GVC)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현재 활발하게 협력하는 분야는.
“최근 양국 간 협력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반도체다. 일본은 필수 소재 제조 장비를 공급하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량생산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상호 보완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령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에 400억엔을 투자해 R&D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절반인 200억엔은 일본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지원받게 된다. 해당 시설은 2026년부터 본격 운영될 예정으로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와 협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 선도 업체인 SK하이닉스도 일본의 소부장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 반도체 업체 키옥시아에 대한 지분 투자를 활용해 생산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이와테현과 미에현의 키옥시아 공장을 HBM 생산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물론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을 HBM용으로 개조하는 데는 기술적 난관이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은 양국의 강점을 결합해 반도체 공급망을 통합하고, 회복 탄력성을 갖춘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양국은 에너지와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로 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액화천연가스(LNG)와 주요 원자재를 외부에서 수입해야 하는 경제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조달과 인프라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면 비용 절감과 협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미국이 동맹국에 미국산 LNG 구매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양국이 공동 구매나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면 ‘경제 안보 동맹’의 핵심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 공동 LNG 구매는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고, 지리적 인접성을 활용하면 알래스카에서 파이프라인 건설 등 인프라 투자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 대만과 협업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위한 실질적 모델이 될 수 있다.”
+한일 상위 교역국과 비중

한국과 일본은 GVC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국은 모두 고부가가치 기술집약적 제조업에 특화되어 있지만 영역이 중복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장비, 정밀 부품에 강점이 있고, 한국은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대량생산에 강점이 있다. 이런 상호 보완적인 관계는 공동 R&D, 기술 표준화, 비용 절감 측면에서 협력의 여지를 넓히며, 미·중 경쟁 심화와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략산업인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에서 한일은 경쟁자이자 협력자일 수도 있다.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각국 정부 주도의 제도적 협력 체계, 보조금, 공동 R&D 기반이 마련된다면 양국은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 소부장 분야의 일본 기술력과 한국의 생산 규모가 맞물리면 시너지 효과가 커질 수 있다. HBM 반도체 분야에서 SK하이닉스가 생산을 주도하고, 일본이 장비·소재를 공급하는 구조는 대표적 사례다. 미·중 기술 분리와 미국의 리쇼어링 (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1) 압박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양국은 협력을 통해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고, 비용을 나누며 전략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 한일 기업 광물 및 에너지 공동 개발 사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양국 협력이 가장 유망한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나.
“반도체(집적화·AI 응용 기술),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수소에너지 기술, 디지털 무역 거버넌스가 핵심 분야다. 공동 R&D를 통한 반도체 설계와 집적화 표준화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수소와 스마트 제조 분야에서의 민관 협력은 차세대 산업 선도 기반이 될 수 있다.”
한일 기업이 아세안, 인도, 중동 같은 제삼시장에 공동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경제 안보 동맹이라는 개념 아래 에너지·조선·공급망 통합을 통한 공동 진출 모델이 유효하다고 본다. 에너지 및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운영 역량과 일본의 자금 조달, 기술력이 결합하면 매우 경쟁력 있는 연합체가 형성될 수 있다. 가령 미국산 LNG를 공동 구매함으로써 협상력을 강화하고, 이후 아세안과 인도 시장에서 에너지 저장 프로젝트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모델은 일본과 호주의 LNG·광물 협력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한국 대기업이 운영을 주도하고, 일본 은행과 무역상이 자금·기술·수출 신용을 제공하는 구조를 한일 공동 사업에 적용할 수 있다. 아세안 재생에너지망, 중동 스마트시티 공동 수주 등이 유망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 및 탄소 중립 대응과 관련해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수소에너지, 재생에너지 저장 기술, 녹색 공급망 구축이 협력의 핵심이다. SK그룹과 일본 기업은 수소 개발 및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 이미 일부 협업을 모색 중이다. 저탄소 제조에 대한 공동 기준 설정과 전기차(EV) 배터리·재생에너지 기반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 등이 글로벌 탄소 중립 규범 형성과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한일 기업 협력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정책 기반은 무엇이 필요할까.
“‘3+3 장관급 대화’를 제안한다. 외교·산업통상· 재무 장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는 경제·금융·외교 가 통합된 최초의 한일 간 제도적 협력 프레임이 될 것이다. 이는 기존 2+2 대화보다 한 단계 진화된 형태로 통화 변동성과 투자 규제, 공급망 안정화 같은 복합적인 경제 안보 이슈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다. 3+3 협의체는 △환율 안정과 금융 안 전망 구축 △통상·금융·산업 정책 간 연계 강화를 통한 전략 대응력 향상 △정기 회의 및 공동 프로젝트를 통한 협력의 제도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반도체·수소·녹색 기술 R&D, 제삼국 공동 투자 등 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양국 국민이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은.
“학계·정책 전문가가 정부 인사 및 정치인과 협력해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특히 공동 연구, 정책 제안, 공개 포럼 등을 통해 반도체 표준화, 에너지 파트너십 등의 실익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한일 협력의 필연적 과제로 인식시켜야 한다. 한일 양국 정계, 경제계, 언론계, 학계가 참석해 협력 모델을 논의하는 ‘한일 미래비전 포럼’2) 같은 전문가 중심의 포럼은 기업인과 양국 국민에게 신뢰 기반의 협력 내러티브를 확산시키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PLUS POINT
한일 무역 60년간 352배 성장, 소부장 미래 협력 핵심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오며 동아시아의 주요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무역협회의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한일 기업 협력의 현주소와 발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간 무역 규모는 1965년 2억달러에서 2024년 772억달러로 352배 확대됐다. 교역 구조도 과거 한국이 일본에 원자재와 경공업 제품을 수출하고 고부가가치 품목을 수입하는 수직적 분업에서, 현재는 정보기술(IT)과 중화학공업 제품을 쌍방으로 교역하는 수평적 협력 관계로 전환됐다. 투자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발전이 이뤄졌다. 한국의 대일본 해외직접투자(FDI)는 2018년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5년 연속 10억달러를 상회했다. 일본의 대한국 투자는 2024년 18억달러로 전년 대비 109.5% 증가해 크게 반등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양국 기업은 상호 교류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며 향후 협력 의지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66.2%, 일본 기업의 75.5%가 상대국 파트너 기업과 협력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또 한국 기업의 94.5%, 일본 기업의 95.9%가 향후 상대국 파트너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거나 유지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양국 기업이 장기적 신뢰 기반의 안정적인 거래와 상호 시장 접근의 전략적 이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양국 기업 모두 ‘안정적인 한일 소부장 공급망 협력’을 정책 지원의 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밖에 한국 기업은 ‘온·오프라인 셀러-바이어 매칭 기회 확대’를, 일본 기업은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60년 동안 한일 교역 구조가 중간재 중심으로 재편되어 온 만큼 미래 첨단산업에서도 소부장을 중심으로 양국 기업의 협력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양국 전문가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모빌리티, 차세대 반도체, 바이오, 핵심 광물과 에너지 네 개 분야를 한일 기업 협력의 유망 분야로 선정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MaaS(Mobility as a Service·서비스형 모빌리티) 기술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의 교통 빅데이터 활용 기술과 일본의 대형 교통사업 운영 경험을 결합해 차세대 MaaS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고, 양국의 교통 데이터와 결제 시스템을 국제 기준에 맞춰 표준화하는 방식으로 상호 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일 R&D 협력 플랫폼 운영을 통한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역량 제고와 중소기업 중심의 설계-제조 연계 협업 공급망을 검토해야 한다. 양국 모두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에서 미국·대만에 밀리는 만큼 개방형 R&D 협력 플랫폼 조성도 고려해야 한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연구개발-임상-상용화 연계 시스템 구축과 상호인정협정(MRA)을 통한 양국 간 시장 진출 활성화를 제안한다. 일본의 우수한 기초연구 역량과 한국의 응용기술, 상업화 역량을 결합해 한일 공동 바이오 클러스터 운영을 활성화하고, 신약 개발 시 임상 데이터와 안전성 평가 데이터를 공유하는 체계 구축도 추진하면 좋다. 핵심 광물과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일 에너지 통합 솔루션 구축과 제삼국 공동 생산 협력을 통한 안정적 자원 공급망 확보가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양국 모두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으로 높고 핵심 광물의 특정국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 운영 경험과 한국의 에너지 활용 기술을 결합한 통합 솔루션 개발도 논의해야 한다. 한일 기업 협력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용어설명
- 1리쇼어링(reshoring· 생산 기지 본국 회귀)
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 시설을 옮긴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온쇼어링(onshoring), 인쇼어링(inshoring), 백쇼어링(backshoring)도 비슷한 개념으로, 오프쇼어링(offshoring)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확산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인해 리쇼어링이 최근 활성화하고 있다.
- 2한일 미래비전 포럼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학술적 연구와 교류에 주력해 온 아시아 연구 기금이 2024년 시작한 포럼이다. 한일 양국 간 경쟁과 협력을 통해 각국의 발전은 물론 세계 평화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일 전문가가 모여 양국의 경제·경영 분야 협력과 발전을 포함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