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상호 관세정책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한국의 통상 전략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미국과 중국 비중이 높은 수출 전선을 다변화하고 다양한 소재, 부품, 자원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통상 다변화와 산업 고도화 추진을 위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포괄적 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방법일 수 있다고 제언한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전략 연구실장은 “미·중 갈등 속 통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연대가 불가피하다”며 “한일 FTA는 동북아 공급망 회복력과 경제 안보 체제를 구축할 전략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일 FTA는 디지털 산업 같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철구 배재대 교수는 CPTPP와 관련해 “가입이 늦어지면 글로벌 규범 형성에서 소외되고 역차별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농축산물 개방 등 민감 사안에 대해서는 세이프가드, 직불제 확대, 스마트 농업 도입 등을 통한 완충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정치·역사 갈등이 통상 협력을 흔들지 않도록 상설 분쟁 조정 기구, 정례 협의체 등 제도적 안전장치를 구축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시점에서 한일 FTA를 추진해야 하는 필요성은 무엇인가.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전략 연구실장 (이하 양주영) “트럼프 2기 정부의 상호 관세정책과 전방위적 보호무역 기조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매우 중요한 통상 리스크를 초래하고 있다. 대(對)미국·중국 수출의존도가 높고. 특정 전략 산업에 집중된 한국은 통상 다변화와 지역 내 제도적 협력 강화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현 상황에서 한일 FTA는 동북아시아 경제 안보 체제 구축과 공급망 회복력 제고를 위한 전략적 수단이 될 것이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이하 이창민) “한일 FTA 추진은 대외 충격에 대한 내성 강화와 무역 다변화 차원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다. 특히 디지털 산업 같은 미래 성장 동력 확충에 기여할 수 있다. 양국 간 전략적 신뢰 회복과 경제협력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불확실한 통상 질서하에서 협상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이하 강철구) “일본은 첨단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 한국은 생산과 응용 기술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한일 FTA를 통해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제거하고 상호 보완적 공급망 구축을 제도화한다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한일 경제협력은 역사 문제와 외교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에 대응하기 위해 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주영 “일본,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 주요 선진국과 중견국이 참여하고 있는 CPTPP는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상 질서를 주도할 핵심 플랫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는 미·중 간 지정학적 양극화에 따른 대응 전략으로 CPTPP를 제3의 균형 지대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CPTPP 불참에도 불구하고 역내 리더십을 공고히 하며 디지털 규범과 공급망 연대를 CPTPP를 통해 확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창민 “CPTPP는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과 디지털, 지식재산권, 국가보조금 같은 첨단 분야 규범이 특징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CPTPP 가입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입지 강화와 시장 다변화, 비중국권·신흥 시장과 연계 확대 측면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CPTPP 가입을 미룰 경우 연쇄적 무역 전환에 따른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강철구 “CPTPP는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 제동반자협정(RCEP)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지식 재산권, 데이터 이동, 노동 기준, 환경 규범을 포함하고 있어서 가입하지 않으면 향후 우리 기업이 글로벌 규범 형성에서 소외되고, 오히려 역차별받을 가능성도 크다. 가입할 경우 규범 중심의 경제협력이 강화되면서 디지털·환경·노동 등 신통상 이슈에 대한 공동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 회원국이 한국 가입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어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

CPTPP와 한일 FTA 모두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민감한 쟁점이다. 개방 충격을 줄이면서 통상 다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보완책은.
양주영 “농업 부문의 체질 개선과 수출 산업화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K-푸드 브랜드화 및 고부가가치 식품 수출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CPTPP와 한일 FTA 시장을 수출 기회로 전환하여 프리미엄 농식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창민 “스마트팜 등 첨단 농업기술 도입, 유통·가공 산업과 연계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지원 등도 필요하다. 학교 급식 등 내수 판로 확대 정책과 안전성·품질 차별화 홍보, 지역 특산물 브랜드화 등 국내 농·축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다각도의 정책 노력도 필요하다.”
강철구 “식량 안보는 경제 안보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통상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고민한다면, 쌀 같은 민감한 농축 산물은 개방 예외 또는 장기 유예 대상으로 설정하고, 세이프가드와 저율관세할당(TRQ)1), 단계적 관세 철폐 같은 완충장치를 마련해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또 FTA 피해 보전직불제와 폐업 지원 제도를 확대하고, 생산·유통·가공 전 단계의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을 병행해 농업의 체질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

한일 FTA와 CPTPP가 공급망 다변화와 한국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전략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
양주영 “CPTPP 참여는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역내 생산 기지 재편 과정에서 한국을 중요한 투자처로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자간 규범 기반의 통상 인프라는 공급망 허브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역내 생산·조립·개발 기지로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디지털과 그린 기술의 융합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CPTPP를 활용한 공동투자, 기술 연계, ESG 연계 사업 개발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창민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산업 고부가가치화에 실질적인 효능을 가져올 수 있다. 먼저 공급망 측면에서, 첨단 소재·부품·장비 등 국내 제조업에 필수적인 핵심 중간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 고부가가치화 측면에서는 두 협정 모두 첨단 분야 규범과 연계해 산업 경쟁의 프레임 자체를 상향시킨다. 디지털 무역, 지식재산권 보호, 전자상거래, 친환경 등 최첨단 미래 산업 영역에서 공통 규범 실현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첨단 가치 사슬에 더욱 깊이 통합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강철구 “FTA와 CPTPP를 통해 국내 첨단 기업의 해외 진출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CPTPP 회원국 내 생산 거점 확보를 통해 현지 조달·생산· 판매 통합 모델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중소기업은 일본 기업과 공동 연구 및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기술을 공급받을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 기회가 늘어날 수도 있다.”

최근 반도체, 이차전지, 첨단 소재 분야에서 한일 간 기술·산업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한일 FTA, CPTPP가 산업 협력에 어떤 효과를 주나.
양주영 “CPTPP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IPEF)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이 직접적으로 공급망 회복 핵심 조항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협정 중 공급망 강화를 위한 무역 원활화 조항, 원산지 누적 규범, 공공 조달 개방 그리고 장관 공동성명 등으로 회원국 간 공급망 유연성·제도적 연결성을 제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는 간접적으로 공급망 안정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창민 “FTA와 CPTPP를 통해 원자재와 중간재의 무관세 또는 저율 관세 수입이 가능해지고, 양국 기업 간 조달 및 공급 거래가 더욱 간편해지면서 생산 비용 절감과 공급 안정성이 크게 높아진다. 공급망 협력이 제도화될수록 ‘단절 위험’에 대한 내성이 커지고, 예상치 못한 글로벌 위기 시 대체선 확보와 신속한 생산 전환이 가능해진다. 이런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될 때 우리 기업은 고부가 가치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고,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 전체의 혁신과 성장 잠재력을 대폭 높일 수 있다.”
강철구 “한일 양국의 공동 기술 개발과 연구개발 (R&D) 협력이 촉진될 수 있다. FTA와 CPTPP는 단순한 상품 교역을 넘어서 서비스, 투자, 지식재산권, 기술 협력을 포함하는 포괄적 협정이다. 한일 기업·대학·연구기관 간 공동 R&D 프로젝트, 기술 교류, 표준화 협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반도체, 전고체 배터리, 탄소 중립 소재 등 차세대 기술 협력 플랫폼 구축이 가능해진다.”
한일 통상 협력이 정치 변수에 의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외교적 안전장치는.
양주영 “한일 FTA가 체결되면 분쟁 조정 채널을 상설하고, 패스트 트랙 협의 메커니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비관세장벽, 수출입 제한 조치에 대한 사전·긴급 협의 조항을 도입해 통상 분쟁을 예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통상 장관 회담 등 고위급 및 실무급 정례 협의체를 제도화하고, 공급망 위기 대응을 위한 통상 핫라인, 전략 품목 정보 공유 등 상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민관 파트너십 제도화를 통해 통상 협력의 지속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이창민 “양국 정부가 직접 참여하는 ‘공동위원회’ 같은 회의체를 정기적으로 열어, 통상 현안이나 분쟁이 생기면 언제든지 신속히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국이 합의한 규칙이 지켜지지 않거나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국제 규범에 따라 제3의 중재 기구에 문제를 맡기고, 객관적으로 신속하게 판단받을 수 있는 분쟁 해결 절차도 협정문에 명문화해야 한다.”
강철구 “한일 경제협력 컨트롤타워를 설립하면 어떨까 한다. 예를 들어 유럽 통합의 기초가 된 석탄 철강공동체(ECSC)처럼 대통령실에 일본경제특보관, 일본 총리 관저에 한국경제특별서기관을 두고 수시로 만나서 양국의 경제협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궁극적으로 협력을 통한 양국의 경제적 시너지 효과뿐만 아니라, 정치적·외교적 문제까지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용어설명
- 1저율관세할당(TRQ)
특정 수입 수산물의 일정 물량까지 저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초과 물량은 기본 관세를 부과하는 이중 관세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