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3~4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MCM)’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환경 지속 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회원국에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전 생애 주기를 고려한 환경영향평가와 친환경 기술 확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급망 기준 강화 등이 주요한 정책 방향으로 담겼다. 이에 따라 디지털 제품·서비스에 대한 환경 기준이 무역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으며, 향후 디지털통상협정(DTA)과 환경 관련 무역 장벽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장비 등 핵심 부품 공급망에서도 지속 가능성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노건기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우리 정부 수석대표로, 기획재정부·외교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참석해 주요 통상 현안에 대한 한국 정부 입장을 개진했다. 노 실장은 우리나라가 OECD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디지털·녹색 융합 규범 논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향후 국제 통상 질서 재편 과정에서 정책적 주도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OECD 권고안 채택은 디지털 기술과 환경 지속 가능성이 통상 정책의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데이터 이동, 인공지능(AI) 활용, 디지털 세이프가드 등 디지털 영역 전반이 국제 통상 규범의 핵심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 미국 주도의 AI 국제 행동 원칙 등 주요국 중심의 규범 정비가 급속히 진행되며, 글로벌 무역 질서에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기술 기반의 상품·서비스 수출에도 새로운 규제 요건이 부과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환경·데이터·AI 관련 규율을 포괄하는 디지털 통상 규범 체계의 다자화 필요성 또한 강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OECD,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세계무역기구(WTO) 전자상거래 협상 등 다자 협의체 내 논의에 적극 참여하며, 우리 기업의 디지털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 통상 규범 관련 글로벌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급증했고, 그로 인해 디지털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한 것과 관련 있다.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AI 기반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기존 상품 중심 통상 체계로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무역 흐름과 산업 변화를 충분히 포괄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디지털 통상 전용의 새로운 국제 규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졌다. 각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제한, 서버 현지화 의무화,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등의 법·제도 정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이 경제·안보를 아우르는 글로벌 경쟁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하면서, 이를 둘러싼 국가 간 협력과 견제를 위한 다양한 국제 협상과 규범화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DEPA, WTO 전자상거래 협상, EU의 DMA 등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을 반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디지털 기술과 이를 둘러싼 규범 경쟁이 향후 국제 통상 질서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는 3월 1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FTA 무역위원회’에서 한·EU 디지털 통상협정을 타결하며 양자 간 디지털 교역 기반을 한층 강화했다. 2023년 10월 협상을 개시하고 7차례 공식 협상 끝에 성사된 쌍무적 합의로, 2010년 체결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기반으로 디지털 분야 협력을 강화한 것이다. 이번 협정은 데이터 이동, 전자상거래 등 디지털 분야의 핵심 규범을 포괄하고 있어, 향후 양 경제권의 디지털 무역 장벽을 낮추고 교류를 확대하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계기로 글로벌 디지털 통상 규범 형성에 더욱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6월 12일 취임식에서 “지금이야말로 AI 반도체, 바이오, 자동차, 에너지전환 등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특단의 산업 정책과 통상 정책이 시너지를 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