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함께 풀기 대담 김수동·조수정·최지은 전문가 3人 “韓, 서로 다른 디지털 규범 간 교량 역할 수행해야”
  • 이신혜 기자
  • 디지털 전자 플랫폼과 전자상거래가 무역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글로벌 무역 관계에서 디지털 경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온라인 거래뿐 아니라, 데이터·디지털 서비스 교류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국제무역 전반을 포괄하는 ‘디지털 무역’ 규모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무역 엑스포 조직위원회와 국제무역센터(ITC)가 공동 발표한 ‘글로벌 디지털 무역 발전 보고서 2024’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디지털 무역 규모는 7조1300억달러를 기록했다. 2021년(6조200억달러)에 비해 18% 증가한 수치다.

    디지털 선진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향후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양한 협정을 통해 디지털 경제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은 향후 다른 국가와 디지털 교류를 함에 있어 우리나라가 중시해야 할 부분, 디지털 무역 장벽을 낮추고 상호 협력을 강화해야 할 부분 등을 중심으로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지은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와 대담을 진행했다. 

    경희대 경제학 학·석사,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현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현 한국국제통상학회 및 한국혁신학회 부회장, 전 산업연구원 통상전략실장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무역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통상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이하 김수동)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디지털 기반 서비스 수출은 세계 서비스 무역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데이터 이전 등을 포함하는 디지털 무역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디지털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질서는 단순한 무역자유화가 아니라, 규범의 공존과 융합을 위한 협력 구조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한국 같은 중견 국가에 규범 설계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하 조수정) “2019년 출범해 5년 넘게 이어 온 세계무역기구(WTO) 디지털 협상이 2024년 7월에 합의된 협정 문안(stablized text)을 도출했다는 점은 최근 디지털 통상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애초 목표한 높은 수준은 달성하지 못했고, 미국이 참여하지 않아 빛이 바랬지만, 90여 개국이 대규모로 합의한 다자간 디지털 협정문이 타결됐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최지은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이하 최지은) “디지털 기반의 전 세계 서비스 교역은 2005~2022년 매해 8.1% 성장해, 재화(5.6%) 및 서비스 (4.2%) 성장을 훌쩍 넘어섰다. AI 기술 확산으로 디지털 통상은 더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교역 82%가 선진국(주로 미국·유럽)에서 발생해 불균형이 존재하며, 네트워크 효과로 인한 독과점화 추세도 우려된다. 한국은 디지털 강국으로서 장점을 십분 활용해 글로벌 디지털 통상 규범 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국내외 디지털 무역 경쟁력 강화 및 협력 체계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서울대 외교학,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석사, 고려대 법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총괄과장

    미국과 중국 외에도 유럽연합(EU), 아세안, 중남미 등 다양한 지역이 자국 중심의 디지털 규범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다양한 국가와 디지털 통상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김수동 “글로벌 디지털 통상 질서에는 미국·EU·중국 등 각기 다른 국가와 지역의 규범 체계가 병존하고 있어 상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서로 다른 규범 간 교량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을 지지하면서도, 개인정보 보호·안보 고려 등 EU·중국식 접근과 접점을 고민해야 한다. 국가별 디지털 역량과 규범 수준을 분석해 맞춤형 협력 모델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아세안 국가와는 스마트 시티, 전자상거래, 핀테크 중심의 디지털 파트너십, 중남미·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대상으로는 디지털 인프라·역량 구축을 위한 정부개발원조(ODA) 연계형 협력이 바람직해 보인다.”

    조수정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를 확대하고 협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와 시장별로 규범을 형성해 나가는 게 우리 디지털 통상의 핵심 전략이었다고 생각된다. 한미 FTA 서비스 챕터 및 전자상거래 챕터상의 디지털 규범을 시작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최초인) 한중 FTA 전자상거래 챕터에 합의했고, 중동에서는 2024년 한·UAE FTA를 통해 디지털 통상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2024년 10월 한·EU 디지털 통상협정 협상 개시 선언 후 EU와 디지털 통상 규범을 업그레이드해, 관련 협정문이 곧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러한 맞춤형 전략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최지은 “미국은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과 규제 최소화를, EU는 개인정보 보호 강화와 역내 단일 시장 추진을, 중국은 독자적 규제 체계 유지를 추구하는 등 국가별 접근 방식이 매우 달라 교역국에 따라 맞춤 대응을 해야 한다. 다른 지역과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지리적·경제적으로 가까운 아세안은 디지털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AI, 디지털 헬스케어 등 디지털 신산업 분야에서 아세안과 디지털 협력체를 구축해 한국 기업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고, 기술·규제 시스템 상호 동조화를 통해 디지털 공동시장 창출을 도모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중심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디지털 무역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보나. 

    김수동 “많은 국내 기업이 디지털 수출의 첫 관문인 해외 결제, 물류, 인증, 세무 문제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 결제 인프라를 개선하고, 국경 간 물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해외 거래를 위한 전자 계약, 전자 송장 시스템의 법적 효력을 강화하고, 세관· 환급 절차를 디지털화해야 한다.”

    조수정 “디지털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디지털세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디지털 기업이 본사가 속한 국가뿐 아니라 실제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하는 국제 조세 규약이다. OECD·G20 협의를 통해 필라 1(매출 발생국 관세권 배분)과 필라 2(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합의안이 이미 발표됐으나, 미국 반대로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필라 2 관련 각국 조치를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로 규정한다. 빠르게 변하는 국제 통상 상황을 기업에 제대로 전달하고, 관련 의견을 수렴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

    최지은 “디지털 통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가 비교 우위에 있는 디지털 교역 품목과 관련 교역국을 파악해 지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과 대외 상황에 맞춰 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필요도 있다. AI, 바이오 등 신기술 분야에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중소·중견기업과 초기 수출 기업이 디지털 무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서강대 경제학,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국제개발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개발학 박사, 현 연세대 국제학부 겸임교수

    디지털 통상에서 ‘디지털 주권’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데이터 이전이나 플랫폼 의존 관련 주권을 지키면서도 개방적인 통상을 이어가기 위한 균형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김수동 “디지털 주권과 개방 통상의 균형점은 완전한 개방이나 폐쇄가 아닌 ‘조건부 상호 운용성’ 에 있다. 주요 원칙은 △위험 기반 차등 통제(데이터 민감도와 활용 목적에 따라 차등적 이전 허용) △데이터 이전의 신뢰 기반 경로 설정(공통 프레임 워크를 통해 제한적 이전 허용) △디지털 공공 인프라 국산화 전략 병행(해외 플랫폼 활용은 허용하되, 자국 대안도 육성해 의존성 최소화) △개방형 협정 참여와 자율적 보완 규범 구성(디지털 협정 참여를 통해 규범 공통 기반을 확보하고, 국내 윤리 기준·데이터 신뢰 체계 등 자율 규범 내실화) △데이터 주권의 다자적 협력 지향(동등한 규칙에 기반을 둔 글로벌 데이터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 기여) 등이다.”

    조수정 “우리나라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토종 디지털 기업이 있기 때문에, 디지털 주권 개념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방적인 통상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마스크 판매 장소 알림 서비스를 토종 디지털 기업이 제공하지 않았나. 새 정부에서 AI 수석이 임명됐다. 국가 전략적으로 디지털과 AI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도록 공공 영역 등에서 우리 기업이 활동할 기회를 주는 등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지은 “세계은행의 ‘세계 개발 보고서 2021’은 이 같은 균형에 대한 데이터 지배구조 확립을 제안한다. 데이터 사용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을 줄 수 있는 데이터 지배구조는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보장하면서 데이터 이동과 교역을 지원하기 위한 시발점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 수집·사용의 투명성, 상호 운용성을 보장하며 안전한 데이터 공유와 사용 잠재력을 최대화할 수 있다. 디지털 분야의 공정 경쟁, 소비자 보호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외에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1) 등 다양한 다자 협정이 디지털 경제 조항을 포함한다. 이들 협정이 중첩될 때 어떤 방향으로 통상 전략을 가져가야 할까. 

    김수동 “개별 협정은 데이터 이전, 알고리즘 공개, 디지털 인증, 핀테크 조항 등이 서로 다른 수준과 조건으로 구성돼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복 규제, 이행 혼란 비용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 이전 자유, 개인정보 보호 원칙 등은 핵심 규범으로 삼고 핀테크, AI, 전자 결제 등은 협정별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협정별 디지털 조항을 항목별로 정렬·비교한 규범 지도를 개발해 정책 설계, 기업 이행, 협상 전략 기반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스타트업도 공통의 방식으로 다자 디지털 협정을 준수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인증 시스템 등을 마련해야 한다.”

    조수정 “우리는 DEPA와 RCEP에는 가입했으나 CPTPP엔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 가입 신청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 관세 등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수출 다변화와 유사 입장국 간 협력이 중요해졌다. 영국도 최근에 CPTPP 가입을 한 상황에, 우리나라도 CPTPP 가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CPTPP의 디지털 챕터가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가입이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최지은 “중복되는 다자 협정을 다룰 때, 상호 운용성 촉진, 지역 협력 강화, 전략적 동맹 형성, 유연성 유지 등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조율해야 한다. CPTPP 수준의 높은 규범을 기본 모델로 삼되, RCEP같이 유연한 협정을 반영한 선별적·단계별 접근법을 마련해 협정 간 충돌을 최소화해야 한다. RCEP가 역내 공급망 강화와 아세안 중심 경제협력에 유리하다면 CPTPP는 고도화된 디지털 규범과 선진 시장 접근에 강점이 있다. 디지털 통상 협정마다 규범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고, 교역 품목에 따른 다자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국가 간 데이터 이동 규제는 디지털 통상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과 ‘정보 보호’ 사이에서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할까.

    김수동 “자유와 보호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핵심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위험 기반 접근이다. 모든 데이터 이동을 동일하게 규제하지 않고, 데이터 민감도, 사용 목적, 보관 위치 등에 따라 위험 수준을 평가한 뒤 차등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신뢰 기반 이전이다.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을 허용하되, 상대국 법·제도 등의 신뢰 여부를 전제로 조건부 이전을 보장한다. 셋째, 목적 제한 및 최소 수집 원칙이다. 이전되는 데이터가 명확한 목적에서 최소한으로만 수집·이전되도록 규제한다. 넷째는 데이터 투명성과 이용자 통제권 강화다. 데이터가 어디로 이동되고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제공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국의 정보 보호 체계가 서로 다르더라도 공통 핵심 요소에 대해서는 국제 기준과 일관성을 유지해 상호 운용성을 높여야 한다.”

    조수정 “그간 국가 간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을 전면에 내세웠던 미국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 2023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WTO에서 자유로운 국경 간 데이터 이동에 대한 미국의 기존 입장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디지털 논의도 중단했는데, 이 같은 입장 선회는 국가 안보 관점에서 데이터 역외 이전 통제 강화와도 맞물려 있다고 본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국은 2024년 중국이 민감한 미국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보다는 보호 측면에 방점이 찍히게 될 것으로 본다.”

    최지은 “데이터 관련 법안 기준으로 세계는 크게 미국, 중국, 유럽 방식의 세 그룹으로 나뉜다. 각국 입장이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결과인데,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은 유럽식 GDPR(유럽의 정보 보호 규정)을 따른다. 디지털 교역은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한국은 국내 개인정보보호법과 데이터 국외 이전 규제를 국제 규범과 비교적 조화롭게 정비했다. 비관세장벽으로 공격받는 일부 디지털 이슈에 대해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면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용어설명
    • 1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 총 15개국 간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이자, 세계 최대 규모 FT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