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듣기 INTERVIEW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트럼프는 韓日을 동등하게 본다…협력 강화 바람직”
  • 이용성 기자
  • 툴레인대 국제관계학,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현 컬럼비아대 겸임교수, 세계경제포럼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의제 협의회’ 창립위원장, 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교수

    “한국과 일본은 여러 방면에서 협력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언급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사업에 공동 투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아 관세를 면제 또는 할인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중 갈등이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돼버린 시대에 한·미·일 3국의 경제, 외교, 전략적 관계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가까운 이웃이자 경쟁국인 일본과 좋건 싫건 경제·안보 동맹의 한배를 탄 입장에서 일본의 상황과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통상’과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거의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 “두 나라는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며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브레머 회장은 글로벌 리스크(risk·위험) 예측 전문가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G 제로’1)이론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1년에는 신흥국을 대상으로 정치 리스크를 점수로 매겨 지수화한 정치 리스크 인덱스(GPRI·Global Political Risk Index)를 개발하기도 했다. 다음은 브레머 회장과 일문일답. 

    한국과 일본의 경제 상황을 각각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경제는 비상계엄 사태 장기화와 미국 신(新)행정부 출범으로 이중 타격을 입었다. 한국 경제 관료와 외국계 은행은 2025년 한국의 GDP(국내 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해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소비자신뢰지수가 낮아지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인한) 무역 역풍까지 거세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일본은 수십 년 동안 디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2년 동안 2%를 상회하는 완만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임금 인상률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해 집권 자민당의 정치적인 고민이 커졌다. 또한 엔화 약세로 인한 에너지와 식료품 수입 가격 상승이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수년간 초완화 통화정책을 이어온 일본은행(BOJ)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금리를 서서히 인상하고 있으며, 통화정책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의 근로자 임금은 지난해에도 예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식료품 가격 인상 등 영향으로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고 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2025년 봄철 임금 협상인 춘투(春鬪)에서 평균임금 인상률이 5.46%로 집계됐다는 1차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미국 신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정책으로 불확실성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어떤 분야에서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력할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양국 정부가 계속해서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하겠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 방면에서 협력할 수 있다. 트럼프가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언급한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사업에 공동 투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아 관세를 면제 또는 할인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도체 제조와 로봇공학,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상호 투자와 교역을 늘릴 필요도 있다. 두 나라를 오가는 관광객을 늘리는 것도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 나라는 미국 신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남아있는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춰 양자, 삼자(미국 포함) 안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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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로 붐비는 일본 도쿄의 신주쿠 거리.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매개로 한국과 일본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일까.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기보다는 공동 투자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프로젝트가 두 나라에 모두 큰 비용이 들고 리스크도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어떤 부분에서 다르게 보고 있을까.

    “한국과 일본을 거의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두 나라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며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이 자국 내 미군을 지원하고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은 미국의 주요 투자처이기도 하다. 무역에 있어서는 양국 모두 미국에 대규모 흑자를 내고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측근이 우려하고 있다. 향후 북한과 협상에서 합동 군사 훈련과 한반도 배치 미군 자산을 포함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지원이 협상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반면, 일본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줄일 가능성은 작다는 점 이 차이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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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트럼프의 미국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도 때로는 좋은 전략일 수 있을까.

    “두 나라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안보를 위해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양국의 매우 중요한 무역과 교역 파트너이기도 하다. 미국의 뜻에 반해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은 한·미·일 3국 협력과 양국을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세 면제를 위해 앞서 언급한 것(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향으로)처럼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지역 협력과 경제 관점에서 한·일·중 협력도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트럼프 정부에서 한·미·일 협력과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지.

    “한·일·중 3국 협력은 한·미·일 협력과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체제 사이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한·일·중 협력은 지난 20년간 지속되어 왔으며 주로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일본이 매우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북·미 관계가 가까운 미래에 한·미, 미·일, 한·미·일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휴전 합의 완료 후 북한으로 관심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2025년 하반기에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접촉 노력이 빈번해질 수 있다. 알렉스 웡 백악관 수석 국가안보부보좌관,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 차관, 케빈 김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등 미국 신행 정부의 많은 국가 안보 담당 관리가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김 위원장과 외교에 관여했다. 김 위원장은 2018~2019년보다 더 강력한 위치에서 협상에 임할 것이다. 러시아와 안보 동맹과 더 정교해진 무기 체계로 인해 비핵화 논의조차 꺼릴 것이다.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과 미사일 시험 유예를 대가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지원 대폭 축소를 요구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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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으로 인해 미국 내 소비자물가가 계속 상승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도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은데.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는 관세정책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미국 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둔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뜻이다. 4월 이후 본격적으로 개시할 협상에서 미국 신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거나 크게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중국에 대한 관세는 인하 가능성이 작다. 미국과 중국 간 ‘그랜드 바겐(큰 거래)’ 성사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3월 21일(이하 현지시각) 바하마에서 열린 경제 콘퍼런스 공개 연설에서 최근 단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중단기 기대치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기적인 물가 충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3월 19일 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현재 시작했으며, 이는 부분적으로 관세에 대한 반응으로 생각한다”면서도 관세의 물가 충격이 일시적일 것이란 전망이 기본 시나리오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에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적극적인 노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이 배울 점이 있다고 보는지.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외국 지도자 중 한 명임에 틀림없다. 트럼프와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골프 라운딩 등을 통해 자주 만났고, 듣기 좋은 소리도 잘했다. 트럼프와 개인 차원에서 교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건 한국의 정치 지도자도 배울 필요가 있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 국민이 뽑은 지도자로 존중했고, 매우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반면, 다른 많은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는 방식을 더 선호했다.”

    향후 한일, 한·미·일 협력의 주요 변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 위원장이 직접 외교를 재개할지 여부와 그렇게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더 광범위한 협상의 일환으로 김 위원장에게 어디까지 양보할 의향이 있는지가 매우 중대한 변수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지원이 줄어들면 한일 관계는 물론 미국과 3국 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다른 주요 변수는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에 대한 미국의 상호 관세와 부문별 관세가 한국과 일본에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적용될 지도 지켜봐야 한다.”

     +PLUS POINT 

    알래스카주 최북단에만 韓 10년 사용 가능한 LNG 매장 

    최북단 노스슬로프의 포인트톰슨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추출한 후 태평양과 접한 남쪽 니키스키 지역까지 수송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알래스카주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다. 노스슬로 프에만 한국이 약 10년간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가스를 수요지로 운반할 가스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포인트톰슨 가스전 개발을 위해서는 혹한을 뚫고 남부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1300㎞에 이르는 가스관을 깔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4일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알래스카주에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거대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면서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가 수조달러씩 투자하면서 우리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일본은 이미 적극적인 투자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2월에 미국을 방문해 사업 참여 의사를 전했다. 알래스카주 지역에 가스관이 깔리면 한국도 혜택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대규모 매장지인 미국 텍사스주에서 한국까지 LNG를 수송하려면 최소 3주가 걸린다. 알래스카주에 가스관이 깔리면 수송 기간을 1주일로 단축할 수 있다. 

    용어설명
    • 1G 제로

      ‘정치·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나 블록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브레머가 2010년 처음 주창해 글로벌 현실정치를 보여주는 용어로 정착했다. 브레머는 “미국은 글로벌 문제보다 국내 정치 분야에 사로잡히면서 세계를 지도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대신하는 세계를 이끌 대안도 없다. 그 같은 상태를 G 제로”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