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인공지능(AI)과 5·6세대(G) 통신 등 최첨단 기술의 융합이 가져온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무역 확대 등 세계경제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직면한 미·중 전략적 경쟁 심화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통상 및 투자 전략을 큰 폭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내세운 미국 신행정부는 미국의 패권 유지에 장애가 되는 그 어떤 것도 쓸어버리고 말겠다는 태도로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재편하려고 한다. 급격한 관세율 인상이나 통상 협정 재조정 정도가 아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핵심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1)은 물론, 희토류 등 전략 광물 수급 관련 가치 사슬 재편까지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디지털·AI 국제 표준 및 규범 정립 등을 통한 디지털 무역 확대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및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공급망 자립과 안정화 △첨단 기술·AI 기반 신(新)산업 무역 확대 등의 방향으로 통상 정책을 획기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급진적 대내외 정책 변경은 한국으로 하여금 추진력과 속도 측면에서 한 차원 높은 대응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범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 정부는 범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미·중 간 균형 유지, AI 와 양자 컴퓨터 등 최첨단 기술 개발 가속화 등을 밀고 나가야 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인도, 일본 등과 부문별 협력 확대도 필요하다.
비슷한 통상 환경에 처한 한일
한국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와 공급망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미국 신행정부의 공격 타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중국이다. 앞으로 중국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미국 내 중국산 제품의 면세 기준 폐지, 첨단 기술 수출규제 강화 등 제재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중국과 미국이 한국의 제1·2위 교역국이란 사실이다. 미·중 디커플링 과정에서 한국은 재편될 공급망에 대한 적응과 미·중 간 균형잡기 등 난도 높은 숙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전자 제품, 부품·소재, 철강,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추가 관세는 한국산 제품의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특히 자동차, 철강, 가전 분야 기업의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 트럼프 정부의 강압적 통상 정책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일본은 미국과 무역에서 683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최대 무역 흑자 품목은 자동차다. 일본은 트럼프 정부 출범 전부터 대미(對美) 투자를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대미 경제 관계를 관리해 왔지만,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식 통상 정책이 가져올 악영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미·일 정상회담을 조기에 성사시키는 등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 급변에 기민하게 대응한 배경이다. 일본은 미국 경제에 대한 일본의 기여를 강조하고, 대미 ‘1조달러 투자 목표’ 및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통한 무역 흑자 축소, 국방비 증액 등 구체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의견 일치에 이르지 못했으며,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문제도 ‘투자’ 형태로 진행한다는 합의 정도에 그친 점 등은 과제로 남아 있다.
대미 통상 관계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과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뿐 아니라 미국 인근 국가인 멕시코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고, 상당 규모 대미 무역 흑자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 모두 미국으로부터 LNG 등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는 점도 같다. 단기적으로 한국은 미국 정부가 큰 관심을 두고 있는 LNG 수입 확대 문제,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과 파이프라인 부설 문제, 미국의 다자·소다자 체제 잔류 등 문제에서 일본과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장기적 방책으로 한국은 ‘한일 지역 경제 통합 프레임워크’ 수립을 주도해야 한다고 본다.

영남·규슈 손잡아야
한국의 영남과 일본의 규슈(九州)는 대마도를 사이에 두고 일의대수(一衣帶水·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 관계에 있다. 수도권에 밀려 쇠락하고 있는 영남과 오사카·도쿄권에 의해 이미 오래전 변방으로 밀려난 규슈를 엮어 부산과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경제 통합을 검토 및 추진해야 한다. 영남과 규슈는 면적(각각 3만2300㎢, 4만4500㎢), 인구(각각 1247만 명, 1395만 명), 경제력(각각 지역총생산(GRDP) 약 4800억달러, 약 4700억달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하다. 규슈의 중심 후쿠오카는 오사카보다 부산에 더 가깝고, 도쿄보다는 서울에 더 가깝다. 영남·규슈 경제통합은 소멸 도시로 전락 중인 부산과 울산 등을 재생시키고, 2026년 3월 착공 예정으로 경제성 등의 측면에서 논란 많은 가덕도신공항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영남과 규슈는 각기 영남, 규슈 지자체 연합을 결성한 뒤, 두 연합 간 상대 지역에 대한 제한 없는 여행과 취업·거주·비즈니스가 가능한 도해증(渡海證) 발급 문제, 2차로 영남·규슈 간 해·공로 확대,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통한 도로·철도 교통 확보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해야 할 것이다.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두 나라 국민은 승용차나 기차 등으로 한국의 최북단 강원도 고성이나 일본의 최남단 규슈의 가고시마, 최동북단 홋카이도 삿포로를 쉽게 방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협의 과정에서 두 나라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한일 관계는 자연스레 탄력받게 될 것이다.
- 1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
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 시설을 옮긴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온쇼어링(onshoring), 인쇼어링(inshoring), 백쇼어링(backshoring)도 비슷한 개념으로, 오프쇼어링(offshoring)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확산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리쇼어링이 최근 활성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