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는 대안적인 공급망 허브이며 교역의 중심지다. 동시에 19억 명의 소비자와 노동자를 보유한 ‘인구 대국’이다. 다만 정치적 긴장 때문에 단일 시장으로 통합되기 어려워, 각국과 전략적이고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라크빈더 싱(Lakhvinder Singh) 박사와 하룬 샤리프(Haroon Sharif) 전 파키스탄 투자청장은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싱 박사는 인도 출신의 국제 관계 전문가로 성균관대에서 한국학을, 인도와 미국에서 국제정치와 무역정책을 연구했다.‘한·인도 전략적 파트너십의 아버지’로 불리며, 서울에 있는 아시아연구소(The Asia Institute)에서 안보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지난 25년간 양국 관계 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됐다. 샤리프 전 청장은 영국과 미국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전직 공직자다. 그는 경제 전문가로, 파키스탄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은행과 영국국제개발부 등에서도 활약했다. 싱 박사와 샤리프 전 청장은 한국과 서남아시아가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분야로 정보기술(IT), 자동차, 인프라·건설 산업을 꼽았다. 그러면서 미·중 갈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남아시아에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려면 정치적으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두 전문가와 일문일답.

지금까지 서남아시아와 한국의 경제협력 관계는 어땠나.
라크빈더 싱(이하 싱)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서남아시아 대부분 국가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지만, 당시 서남아시아는 내수 중심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한국도 국내 산업 발전에 집중했던 때라 경제적 교류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서남아시아의 경제 자유화, 특히 1991년 인도의 개혁이 전환점이 됐다. 삼성, LG, 현대 같은 한국 대기업이 서남아시아에서 입지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2009년 인도와 한국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은 양국 간 무역을 더욱 강화했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특히 섬유·의류·인프라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의 주요 투자처가 됐으며, 스리랑카와 네팔은 수력발전과 관광, 노동, 이동 부문에서 협력이 증가했다. 최근엔 ‘알타시아(Altasia·대안적 아시아 공급망)’1)가 주목받으면서 서남아시아는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2)과 미·중 갈등은 한국의 무역 다변화 필요성을 증가시켰고, 이에 따라 한국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경제동반자협정(EPA)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룬 샤리프(이하 샤리프) “지난 20년 동안 한국 기업은 첨단 기술과 우수한 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져 왔다. 현재 서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로 여기며, 양자 경제협력을 확대하기를 희망한다.”

무역이나 투자 관점에선 어떤 교류가 있었나.
싱 “먼저, 한국은 1969년 네팔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을 시작으로 1973년 인도, 방글라데시, 1977년 스리랑카, 1983년 파키스탄과 외교 관계를 확립했다. 인도는 1990년대 경제개혁 이후 한국 기업을 가장 먼저 유치한 국가다. 1996년 체결된 ‘무역 및 경제 협력 협정’은 양국 경제협력의 발판이 된 대표적인 협정이다. 2009년 인도와 한국 간 CEPA 체결은 양국의 무역 및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이를 통해 삼성, 현대, LG, 포스코 같은 한국 대기업이 인도 내 대규모 제조 및 연구개발(R&D) 시설을 설립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2019년 기아의 안드라프라데시 공장3) 설립은 한국이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한국 투자로 인한 의류 산업 성장이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1995년 영원무역이 방글라데시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설립한 것도 방글라데시를 세계적인 의류 수출국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 및 외 국인직접투자(FDI)를 통해 방글라데시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총 85억6000만달러(약 12조2922억원·ODA 70억달러·FDI 15억6000 만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키스탄의 경우, 한국이 수력발전과 인프라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한국남동발전의 패트린드 및 굴푸르 수력발전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한국수자원공사와 대림산업이 공동 투자한 10억달러(약 1조4360억원) 규모의 수력발전소 프로젝트는 파키스탄의 에너지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에 기여한 사례다. 네팔이 2008년 한국의 고용허가제(EPS)에 가입한 사례 역시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수천 명의 네팔 노동자가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으며, 연간 5억달러(약 7180억원) 이상이 네팔로 보내져,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1991년부터 스리랑카에서 교육, 보건, 기술 및 농촌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또 한국은 경제개발 협력기금(EDCF)을 통해 도로 개발, 수자원 공급,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포함한 다양한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으며, 2014년엔 스리랑카가 한국의 고용허가제(EPS)에 포함됐다.”
서남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주요 산업은 무엇인가.
싱 “IT와 소프트웨어다. 인도는 TCS, 인포시스(Infosys), 위프로(Wipro) 같은 기업이 세계적인 디지털 서비스 공급사로 자리 잡으며 IT 강국으로 부상했다. 제조업 중엔 섬유산업이 주요하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의류 수출국이며,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도 섬유 및 의류 산업에서 강점이 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산업도 서남아시아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고, 인도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방글라데시의 파드마 다리(Padma Bridge) 같은 주요 인프라 개발이 진행 중 인점에서 인프라·건설 분야도 중요한 산업이다.”
+ 서남아시아 국가의 산업 특징

국가별 경제적 상황이 매우 다를 것 같다.
샤리프 “그렇다. 인도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6% 이상을 유지하며 지속적인 성장 궤도를 그리고 있다. 반면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는 안정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현재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서남아시아 국가와 경제협력은 지역 시장을 겨냥한 공동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기업이 투자 수익을 원활하게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래 산업인 인프라, 디지털 전환, 관광 분야에서는 어떤 수요와 기회가 있나.
샤리프 “먼저 인프라 개발은 개발도상국 인구가 많은 서남아시아의 최우선 과제다. 한국은 소형 수력 발전소, 기후변화 대응형 주택 및 농업 기술 개발에서 지속 가능한 기술 파트너십을 모색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서남아시아는 젊은 인구가 많고 사회 전반에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므로 관련 기술 교육, 기술 단지 조성, 기술 인력 개발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관광 분야의 경우, 서남아시아는 그간 지정학적 긴장 때문에 관광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 관광 수요는 매우 크다. 특히 파키스탄은 인구의 70%가 30세 미만으로, 여행 수요가 많다. 파키스탄은 중국,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인도와 도로로 연결되며, 불교 유적지는 동아시아 관광객에게 중요한 관심을 받고 있다. 호텔, 교통,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관광 개발이 경제협력의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서남아시아 통상 벨트는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가.
싱 “먼저 서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이자 노동시장 중 하나로, 인도가 주요 경제 엔진 역할을 하며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이 제조 및 농업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서남아시아는 중국 의존도를 줄일 대안적인 공급망 허브이며, 동시에 중동,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심지다. 서남아시아에는 인도양, 벵골만 등 주요 무역로가 있고, 스리랑카 콜롬보항(港), 방글라데시 차토그램항, 파키스탄 과다르항은 글로벌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한국 CEPA, 방글라데시·한국 및 파키스탄·한국 EPA가 체결되는 등 무역 장벽 완화도 진행 중이다.”

서남아시아 투자 시 유의할 점은.
샤리프 “서남아시아는 거의 20억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세계에서 가장 분열된 지역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서남아시아는 가까운 미래에도 단일 시장으로 통합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 더 유리하게 접근하기 위해 자국 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처럼 한국도 남아시아 국가와 공동 투자 모델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서남아시아가 직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싱 “첫째, 인도와 파키스탄 간 정치적 긴장으로 인해 서남아시아 지역 내 무역 비율은 5%에 불과하다. 25%인 아세안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둘째, 높은 관세와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무역 비용이 크다. 비효율적인 통관 절차는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셋째, 교통·물류 인프라가 낙후됐다. 방글라데시 차토그램항의 만성적 혼잡이 대표 사례다. 넷째, 대부분 국가가 저부가가치 산업에 의존하고 있어 전자, 반도체,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전환이 더디다. 또 미·중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요인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며, 마지막으로, 첨단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 교육과 숙련된 인력 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샤리프 “파키스탄은 중국과 경제협력이 긴밀하다. 파키스탄과 중국은 350억달러(약 50조2600억원) 규모의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을 개발해 파키스탄 과다르항을 중국과 연결했다. 반면, 인도는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서남아시아 지역 통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10년 동안 한국은 서남아시아 경제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싱 “한국은 산업 투자, 기술혁신, 공급망 협력에서 역할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 투자 분야에서 삼성, 현대, 기아, LG가 인도에 대규모 제조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에서도 전자, 자동차, 섬유 제조업이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부문에서는 한국의 인공지능(AI), 블록체인, 5세대(5G) 통신 기술이 서남아시아의 IT 및 금융 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인프라 개발 및 스마트시티 구축에서는 한국 기업이 지하철, 고속도로, 산업단지, 항만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1알타시아(Altasia)
‘대안(Alternative)’과 ‘아시아(Asia)’를 조합한 신조어.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벗어나, 아시아 내 다른 국가로 무역구조를 다변화하는 전략적 개념을 의미한다. 인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이 대표적이다.
- 2인도·태평양 전략
미국과 동맹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안보 질서 구축을 추진하는 전략.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인도 등이 핵심 국가다.
- 3안드라프라데시 공장
기아차가 2019년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아난타푸르에 설립한 자동차 생산 공장. 기아가 인도에 처음으로 세운 공장으로, 인도 시장 공략의 핵심 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