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 경제는 인도를 중심으로 고속 성장 중이다. 인구는 19억6000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이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00달러에 불과하다. 대외 무역도 갈 길이 멀다. 같은 해 기준으로 수출은 약 5874억달러, 수입은 약 9550억달러로 만성적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는 2009년 8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1)에 서명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는 현재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스리랑카, 네팔, 부탄, 몰디브, 아프가니스탄 등과도 경제협력을 확대해 ‘서남아시아 통상 벨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전문가는 “서남아시아가 향후 세계 최대 경제권이 될 가능성이 커 한국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미·중 갈등으로 인한 경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남아시아 통상 벨트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월간 ‘통상’은 국내 전문가 3인에게 한·서남아시아 통상 벨트가 왜 중요한지, 이를 강화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등을 심층적으로 물었다.

한·서남아시아 통상 벨트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뭔가.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이하 안충영) “서남아시아는 글로벌 사우스를 대표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전략의 핵심 거점이자,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가 연대하는 해상 안보 벨트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모건스탠리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2027년까지 GDP 5조달러를 달성하면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인도는 2014년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와 ‘디지털 인디아(Digital India)’ 정책을 통해 파격적인 경제성장을 끌어내며, 오랫동안 폐쇄적이었던 서남아시아 경제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인도가 서비스와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 정책을 전환하면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이웃 나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노동집약적 산업인 의류와 봉제 등 분야에서 수출을 늘리는 한편, 경제특구를 조성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도 서남아시아가 한국에 중요한 이유다. 1인당 GDP가 2500달러에 불과한 20억 인구의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경우 소비와 투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프런티어 마켓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주로 어떤 산업 분야에서 협력이 활발한가.
조충제 KIEP 델리 사무소장·선임연구위원(이하 조충제) “인도에서는 전통적인 제조업은 물론 금융 및 서비스업 분야에서도 활발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가전·휴대폰·승용차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점유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와 가전 제조에 필요한 고품질 철강 제품 역시 한국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한국 기업은 인도 대기업과 합작을 통해 일관 제철소, 이차전지 소재,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에는 이미 한국의 주요 시중은행이 진출해 있으며, 한국 기업뿐 아니라 인도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적극 확대 중이다.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인도 자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거나 모바일 앱을 활용한 핀테크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는 국내 기업도 있다.”
권율 KIEP 국제개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이하 권율) “방글라데시는 기능성 섬유 등을 중심으로 현지 의류 산업의 고부가 가치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전력·도로·항공 등 공공 부문 주도의 인프라 확충 정책을 통해 건설 및 엔지니어링 기업의 진출 확대가 기대된다. 특히 한·방글라데시 EPA 협상 개시와 함께, 양국 간 포괄적 협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도 체결돼 한국 기업과 공급망 협력 기회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파키스탄은 한반도의 세 배가 넘는 넓은 국토에 천연가스와 구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와 휴대폰 등 주요 제조업을 유치하면서 한국 기업의 투자·진출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과 부품 산업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지 공급망을 통해 한국의 부품이나 자동차 수출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과 서남아시아 국가가 성공적으로 협력한 사례가 있다면 설명해달라.
조충제 “인도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차와 기아를 합쳐 연간 100만 대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실제로 그만큼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이 급감하면서, 인도가 해외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최대 생산 기지로 부상했다. 2024년 10월 현대차 인도법인은 인도 주식시장에 상장해 사상 최대 규모인 약 33억달러(약 4조5000억원)를 조달했다. 생산능력을 앞으로 더 확대해 현지로부터 수출도 늘리고, 전기차 생산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약 12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성전자 인도법인과 기업 가치로 약 150억달러를 평가받는 LG전자 인도법인은 이제 인도 가전 분야의 대표 기업이자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LG전자 인도법인은 올해 상반기 상장이 예정돼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영원무역이 섬유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1980년에 현지 진출해 노스페이스, 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의류 브랜드 제품을 생산한다. 연간 수출 규모가 12억달러에 달한다.”
권율 “방글라데시는 중점 협력국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원조 자금과 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한 현지 지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는 202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최대 수혜국이 됐다. 발전소, 대학병원, 공항 등 국내 기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고, 국내 대기업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증가하면서 관련 중소·중견기업의 동반 진출도 늘고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 정부도 방글라데시를 전략 국가로 지정하고 자국의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력·가스·도 로·상하수도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열악해 사업 진척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과 서남아시아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경제협력 협정이 한·서남아시아 통상 벨트 구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안충영 “한국은 2010년에 인도와 CEPA를 발효한 데 이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EPA를 체결하면, 거대한 경제협력 벨트가 형성된다. 그동안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ASEAN)2) 국가와 연계를 모색해 왔다. 이제 서남아시아 주요 국가와 EPA를 통해서 서남아시아 시장 진출이 용이해지며, 아세안 진출의 교두보를 확대할 수 있다. 서남아시아 통상 벨트는 중동과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서남아시아 경제권 소속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성공적인 협력 사례를 바로 옆 나라로 확산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를 서로 연계할 수 있다. 또한 서남아시아 경제성장을 위해 한국의 발전 경험을 접목할 수 있다.”
한·서남아시아 통상 벨트 구축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도전은.
안충영 “인도의 경우 오랫동안 강력한 지방분권주의를 시행해 왔고, 그 결과 지방정부마다 법인세 등 조세와 사업 인허가 절차에서 차이가 크다. 또한 관료의 부패가 여전하며, 복잡한 규제와 행정 절차가 문제를 일으킨다. 인도와 중국 간 국경 분쟁, 파키스탄의 전통적인 친중 정책도 정치 안보 관련 위험 요인이다.”
권율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정치적 불안이 가장 큰 문제다. 방글라데시는 2024년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사퇴와 얼마 전 무함마드 유누스의 과도정부 출범 이후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방글라데시는 내년에 유엔의 최빈개도국(LDC) 지위에서 벗어날 예정이어서 관세와 무역 관련 혜택 폐지 등 단기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장기인 경제성장 계획과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파키스탄은 대외 부채 급증으로 2023년 국가 부도 위기에 처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마무리되면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파키스탄 간 교역 규모는 2021년 약 19억달러에서 2024년에는 13억달러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추산된다. 양국 간 EPA가 타결되면 교역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조충제 “인도와 CEPA 개선 협상은 가능한 한 빠르게 타결해야 한다. 인도는 이미 영국, 유럽연합 (EU) 등 선진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으며, 트럼프 재집권으로 미국과 무역협정도 다시 논의 중이다. 인도의 관심을 끌고 협상 테이블로 적극 유도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도하는 한·아세안, 한·베트남 협력 기금과 비슷한 한·인도 협력 기금을 제안하고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 조선, 신재생에너지, 그린 수소 등 인도가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산업이나 기술 분야에서 개발 협력을 적극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과는 ‘더 주고 덜 받는’ 방식으로 협상을 추진하고 양국의 단기적 안정과 성장은 물론, 중장기적인 발전을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권율 “서남아시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일본의 ‘벵골만 산업 벨트 이니셔티브’ 등 주요국 개발 계획의 거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과 중국 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저소득층 주택 500만 가구 건설 등 다양한 호재로 인해 건설기계와 건축자재 등의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늘어난 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ODA도 확대해야 한다.”
서남아시아와 협력을 통해 한국에 어떤 기회가 생길까.
안충영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과 단순한 통상 확대를 넘어, 우리의 발전 전략을 공유하는 상호 윈-윈의 경제협력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권율 “최근 글로벌 복합 위기가 심화하고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확대됨에 따라 세계경제의 디커플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약화하고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면서, 국제무역 및 투자는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성장 잠재력과 시장 기반이 이를 완화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탕으로 한 권역별 공급망 현지화로 아세안과 연계해 분산된 생산 거점을 지역 공급망 차원에서 연결하고, 부품 조달, 기술 및 공정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국내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시장 대응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충제 “생존을 위해 통상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네팔·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 국가와 협력은 중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서남아시아는 중장기적으로 세계 최대 경제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아세안과 경제협력에 만족하지 말고 서남아시아로 더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 1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RCEP)
두 나라 또는 지역 간에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체결하는 다자간 또는 양자 간 협정이다. 주로 무역, 투자, 경제적 상호작용을 증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를 포함하며, 상품과 서비스 교역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 정부 조달, 경쟁 정책, 환경,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CEPA는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더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협력 방안을 제시하는 협정으로,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장기적으로 두 국가 간 경제적 발전과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 2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로, 1967년에 설립됐다. 주요 목표는 경제적 협력과 통합을 강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세안은 경제 공동체, 정치 안보 공동체, 사회·문화 공동체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같은 협정을 통해 무역과 투자 활성화를 촉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