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깊이 보기 특별기고 강성용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남아시아, 통상·지역 전략 가능성과 역량에 대한 시험장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몰디브·부탄)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이 거주하는 지역이며, 세계은행 추산으로 2024년 6.4%의 경제성장을 이룬 지역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중차대한 지역이라는 사실에 말을 보탤 필요도 없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지역 전략’으로서 남아시아의 통상 전략을 왜 고민해야 하며, 통상의 맥락을 넘어 통상을 고민하기 위해 무엇을 염두에 두고 답을 찾아야 할지에 대한 핵심 이슈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남아시아는 대한민국이 가진 지역 전략의 역량을 선보이는 첫 발표의 장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제와 맥락에 대한 질문이 한꺼번에 던져지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며, 이 질문을 대하는 우리 태도와 역량에 주목하는 청중의 시선을 이겨 내야 한다. 그 발표의 첫 주제이자 가장 중요한 분야가 통상이 될 것인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청중 자리에만 있던 우리 시선을 발표자의 것으로 바꾸는 관점 전환부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나, 지역 전략은 국가 전략이 아니다. 통상 전략을 남아시아 단위로 모색한다는 것은 이 지역의 역사적·지리적 맥락에 맞추는 접근이며 동시에 남아시아 국가별 차별적 전략을 조합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남아시아의 현실은 국경을 넘어서는 세부 지역 연결망과 국경 내부의 단절이 얽힌 다층적 연결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패권국 인도가 선호하지 않는 다자 구도의 접근 가능성을 포석으로 확보하는 접근을 의미한다. 예로 방글라데시는 대한민국 공적개발원조(ODA)의 최대 수혜국인 반면 인도는 ‘원조’라는 단어 사용 자체가 금기인 국가인데, 이 둘 사이의 차이가 장벽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는 구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의 방위산업 분야를 고려할 때 중국만이 아닌 파키스탄 변수를 감안해야 하고, 조선업의 협력에서 인도양 그리고 몰디브와 스리랑카를 고려해야 한다.

둘, 경청해야 하지만 결국 마음을 읽어야 한다. 남아시아 국가, 특히 인도 대외 정책과 경제정책의 인지 부조화를 객관화해 파악해야 한다. 수사적인 의미의 ‘개방’과 ‘투자 유치’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아직도 경제구조가 내수 중심인 국가이며, 현장 공무원은 수입 대체 산업 육성의 관성에 젖어 있다. 인도는 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1)에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하지 않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대화에서 경청하는 것은 기본적인 자세이자, 예절이다. 하지만 대화에 성공하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통상 분야의 정치적 수사가 아닌 남아시아 각국의 현실적인 현장 필요를 읽어낼 역량이 필요하다. 남아시아 역내 국가가 지표상의 경제 발전에 일정 정도 성공했지만, 일자리 창출과 인플레이션 해결에 실패하면서 2024년 전후 정권 교체와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셋, 훌륭한 리더는 상대 리듬에 맞춰 가는 것이다. 일반적인 볼룸 댄스에서 리드 역할은 남성이 맡게 된다. 그렇다고 남성이 항상 춤을 더 잘 춘다는 뜻이 아니다. 리더의 역할 분담이 전통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남아시아 각국에 대해 리더 역할을 맡아야 하는 입장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무역 질서 구축에 더 익숙하고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입장이 어떤 분야에서 어떤 협력을 모색해 갈지 제안하는 과제를 떠안게 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경제동반자협정(EPA) 협상이 개시되고 인도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정이 논의되는 맥락에서, 우리는 기존의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난 현장 접근성을 모색하고, 상대국에 대한 체계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정보 수집과 해석 역량을 갖추는 장기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남아시아 지역 연구를 긴 호흡으로 지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하고, 국가적 싱크탱크를 구축할 필요가 절실한 맥락이 여기 있다.

넷, 사진은 정상에서 찍지만, 승부는 베이스캠프에서 갈린다. 남아시아 지역 패권국 인도를 향해 너무 단순하게 ‘미래의 시장’만을 외치는 단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도의 IT-BPM2) 외주 용역 산업을 활용한 인력 확보가 대한민국의 인공지능(AI) 시대 경쟁력을 결정할 요소가 될 수 있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인구 규모와 그 가운데 숨어 있을 최상급 인력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파트너로 우리가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다. 미국과 관계 설정에서 복잡한 맥락에 얽혀 있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국 주도 국제기구) 국가 가운데 인도의 위치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이란이나 미얀마 같은 우리가 지금 파악하거나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미래의 시장에 대한 진입로가 될 곳이 남아시아라는 사실도 이해하고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다섯, 거래에 바보는 없다. 말로만 ‘상생’을 외치면서 내 물건을 더 팔려는 식의 접근이 먹힐 것으로 생각한다면, 상대를 바보라고 전제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일이다. 진정성 있는 상생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거래 내용을 주도해 가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대기업이 인도에서 상장하고 또 상장을 준비하는 일의 함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진정한 ‘상생’이 이기는 거래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남아시아 각국은 한국과 산업구조가 지극히 상보적인, 세계에서 드문 나라다. 인도만 하더라도 제조업 비중이 작고 내수 비중이 큰, 수출 지향적 산업은 제조업이 아닌 IT-BPM 하청 산업이다.

여섯, 촉매는 많은 양을 투여하는 물질이 아니다. SAFTA(South Asian Free Trade Area) 같은 허울뿐인 구호는 차치하고라도, 한·남아시아지역협력기구(SAARC) 회원국 간 무역이 지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 미만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아시아 내부의 연결과 통상 관계 구축 면에서 우리는 촉매제 역할을 도모할 수 있다. 인도의 저개발 지역인 동부 해안 중심 연안 해운 강화만으로도 남아시아 국가의 물류 유통과 교역은 혁신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규모와 정치적 맥락 그리고 역사적인 경험이 우리를 남아시아에서 위협적이지 않으면서도 호혜적 미래를 모색할 파트너로서 유리한 위치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남아시아에서 물량 경쟁을 고민할 입장에 있지 않지만, 기회는 열려있다. 존재감의 부재는 또 다른 기회인 셈이다.

용어설명
  • 1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 총 15개국 간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 참여국별로 2022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순차적으로 발효됐다.

  • 2IT-BPM

    정보기술 및 업무 프로세스 관리(Information Technology and Business Process Management)의 약자. 업무 중 일부를 제3의 기업에 위탁해 경영 효율 극대화를 추구하는 산업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