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듣기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한 한국의 ‘통상 정책 로드맵’은 옳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Alicia García Herrero)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은 유럽 보다 핵심 원자재에 대한 전략적 협정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2024년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통상 정책 로드맵을 이같이 평가했다. 헤레로 이코노미스트는 스페인 중앙은행인 스페인 은행 국제경제 부문 책임자, 유럽중앙은행(ECB) 이사회 법률고문을 거친 아시아 경제 전문가로, 브뤼겔(Bruegel) 선임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25년 세계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으로 ‘대만해협 문제’ ‘수에즈운하1) 리스크’ ‘중국과 서방 간 갈등’ 등을 꼽았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세계무역 증가세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세계무역기구(WTO)는 2024년과 2025년 세계 상품 교역이 각각 2.7%, 3.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중동 지역 분쟁이 확대되면 해상 교통로가 꼬여 석유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협 중에는 대만과 중국 간 갈등의 중심에 있는 대만해협이 세계무역에서 비중이 가장 크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해상 무역의 20%가 대만해협을 지난다. 대만해협을 통과한 에너지, 전자제품, 광물 등 상품의 가치는 2022년 기준 2조4500억달러에 달했다. 다만 헤레로 이코노미스트는 WTO 전망치와 달리 “2025년에는 미국, 유럽, 중국 경제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4년 세계무역 증가율은 2023년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배경은.
“우선 2024년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였고, 유럽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에서 회복한 영향이다. 다만 무역 증가는 일부 인위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역 경로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중국 에서 생산된 상품이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보내진 후, 해당 국가에서 최종 조립된 후 수출되고 있다. 이는 실제로 가치 있는 무역이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다른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2022년 말 시작된 인공지능(AI) 혁명의 핵심에 있는 한국과 대만에서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2024년 세계경제의 가장 큰 이슈는 미국 대선이다. 선거 결과가 2025년 글로벌 무역 환경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는 세계무역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호무역주의2)가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고립주의 노선이 심화할 것이다.”
앞으로 통상 환경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은.
“2025년에도 대만해협 문제가 지속될 것이다. 중국은 올해도 국경절을 계기로 남중국해에서 군사 훈련에 몰두했다.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항행 방해로 인한) 수에즈운하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전쟁 가능성은 세계무역 여건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ECB가 2024년 금리 인하를 시작하면서 2025년에는 다른 국가도 대부분 금리를 낮출 것이다. 그러면 무역 자금조달 비용이 저렴해질 것이다.”
중국과 서방 간 갈등은 어떤가.
“특히 유럽연합(EU)와 중국 사이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EU는 중국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 문제로 무역 분쟁을 벌이고 있다. 관세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중국은 2024년 10월 17일 수입산 고배기량 내연기관차에 대한 관세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2023년 12월 1일 출범한 새로운 EU 집행위원회는 중국에 대한 경제 안보 문제에 있어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EU는 중국의 산업 정책이 변화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 역시 세계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급진 우파 정치 세력이 과거보다 더 강해지고 있다. 유럽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까.
“유럽에서는 급진 우파 정치 세력이 명확히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급진 우파 정치인의 경제정책은 아직 완전한 보호무역주의라고 보긴 어렵다. 이들은 여전히 EU의 단일 시장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 반중국 정서가 있긴 하지만, 이는 급진 우파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고 무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한국은 2024년 8월 경제동반자협정(EPA)을 포함해 더 긴밀한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통상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이 FTA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통상 정책 로드맵을 수립했다는 것은 WTO 체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협정이나 양자 협정만이 효과적인 통상정책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럽보다 핵심 원자재에 대한 전략적 협정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은 주요 배터리 생산국으로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언제든 무역보복을 당할 수 있는 만큼 핵심 원자재를 가장 큰 경쟁국 중국에 의존할 순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정책 방향은 옳다.”
2025년 세계무역을 전망한다면.
“2025년에는 미국, 유럽, 중국 경제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24년 급격하게 증가했던 반도체 수요도 어느 정도 안정화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24년만큼 전 세계 무역이 증가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용어설명
- * 1) 수에즈운하
길이 193㎞, 폭 345m, 수심 24m의 이집트 운하로, 1869년에 완공됐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세계의 주요 해상 운송경로 중 하나다.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약 10%가 통과하는 중요 교역 통로다.
* 2) 보호무역주의무역수지 개선, 국내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보호무역을 위해 정부가 실시하는 방법은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으로 대별된다. 관세장벽은 수입품에 대해 일정한 세금을 추가 부과하는 것으로, 국내시장에서 가격 상승을 가져와 직접적으로 수입을 억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비관세장벽은 관세 이외의 방법으로 수입을 억제하는 방법을 총칭한다. 수입 허가제, 수입 할당제, 수입 담보금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