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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많은 산업군이 중국의 물량 공세에 위협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산업이 조선업이다. 2019년 우리나라 조선업의 세계 수주 점유율(CGT 기준⋅표준선 환산 톤수)은 31%로, 중국 (37%)보다 조금 낮았지만 크게 차이나진 않았다. 일본은 17%로, 한·중·일 3국이 세계시장의 85%를 점유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해운을 통한 공급망 불안 해소를 위해 대규모 발주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조선 시장은 새로운 호황기를 맞이했다. 새로운 호황기에서 한·중·일 3국의 수주 점유율 역시 크게 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독주다.
가격 내세운 ‘중국’ 세계 조선 시장에서 질주
중국은 ①저임금 ②중국발 철강 공급 과잉으로 인한 낮은 기자재 가격 ③가동 중단 조선소 재가 동 ④신규 투자 증가 등을 이유로 경쟁력이 올라갔고, 가격과 납기 측면에서도 우위를 보이며 대규모 수주를 이어 가고 있다. 대규모 물량 수주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해 선박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한층 더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반면 오랜 기간 구조조정을 겪으며 인력 부족 상황에 부닥친 한국은 생산능력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중국과 차별화가 가능한 고선가·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LPG(액화 석유가스) 운반선 등 가스 운반선 중심으로 선별적인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9월 누적 기준 국가별 수주 점유율을 보면 한국이 20%, 중국 67%, 일본 4%를 차지했다. 세부적인 수주 물량을 보면, 한국이 820만CGT, 중국 2820만CGT, 일본 180만CGT였다. 물론 한국의 수주량이 국내 조선사를 유지하는 데 충분한 규모여서 당장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선종별 점유율을 보면 중국의 위협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쟁사가 없어 보이던 LNG 운반선의 경우 중국의 글로벌 점유율이 45%까지 올라갔으며, LPG 운반선도 중국 점유율이 48%에 달한다. 한국의 LNG 운반선 점유율은 55%로 중국보다 높지만, 하락하고 있다.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은 이미 중국에 크게 따라 잡혔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중국 점유율은 88%, 유조선은 74%까지 올라왔다. 중국은 이 밖에도 벌크선(80%), 자동차 운반선(83%) 등 거의 모든 선종에서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벌크선은 저부가가치 선박이고 중국의 낮은 가격에 경쟁이 되지 않아 국내 조선사가 오랫동안 건조하지 않은 선종이다. 2023년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연구원이 조사한 선종별 가치 사슬 경쟁력에서 우리나라의 벌크선 경쟁력은 중국에 비해 크게 낮았다. 유조선의 경쟁력은 중국보다 조금 낮았고 컨테이너선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가스 운반 선만 중국에 우위를 보였다. 중국이 벌크선을 대량생산하면서 차츰 기술 경쟁력을 높이더니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에서 한국을 크게 추월했다. 지금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가스 운반선도 곧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
+ 세계 조선업 시장 주요국 점유율
조선 업계 감도는 中 견제 움직임
최근 중국 조선업 의존도 증가에 대한 우려가 주요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국의 조선·해양 산업 보호뿐 아니라 중국의 해양 영향력 확대에 따른 위협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운 물류 정보 보호 같은 안보적인 이유도 이러한 우려를 키웠다. 독일조선해양산업협회(VSM)는 2023년 연례 보고서에서 독일 선주의 중국 조선소 의존도가 너무 높아 위험하다고 언급했다. 올해 3월 전미 철강노조를 포함한 미국 내 5개 노조가 미국 정부에 중국 해운, 물류 및 조선업의 불공정 무역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적이 있다. 이들은 중국이 국유 기업을 통한 시장 장악으로 우방국과 미국의 조선 경쟁력이 약화했으며, 해상 물류 정보 탈취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8월 캐나다조선해양산업협회(CIMSA)는 자국 조선업 보호를 위해 중국에서 생산된 선박이 캐나다로 수입될 때 100% 부가세를 매기고 정부 기관이나 국영기업이 중국산 선박을 인수하거나 임대하는 것을 금지해 달라고 캐나다 정부에 요청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중국의 과도한 시장 점유에 대한 글로벌 견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의 해상 패권 확대를 막기 위해 우방국의 협력도 진행될 전망이다.
이렇게 된다면 중국을 제외하고 조선업 최고 역량을 보유한 한국이 반사적 수혜를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우방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협력 모델을 만들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슈퍼사이클이 있는 산업으로, 부침이 심한 조선업의 생태계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중국에 뒤지지 않기 위해선 높은 품질의 일반 상선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에서 저부가가치 선박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면, 우방국과 새로운 가치 사슬을 구성하는 전략이나 사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이나 로보틱스 기술을 이용해 극저 원가와 초단 납기를 가능하게 하는 생산 시스템 혁신도 시도해 볼 만하다. 다만, 이러한 모든 전략을 만드는 것은 기업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과 기관, 정부가 하나의 조직처럼 협력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