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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이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탄소중립(Net Zero·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 정책에 따라 친환경 선박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과 선박 교체 주기가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박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의 올해 영업이익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3사가 쌓아둔 수주 잔고는 3년 치를 웃돈다. 여기다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국내 조선사 호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리스크도 많다. 국내에선 그간에도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인력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7년까지 조선 업종에는 1만3000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위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은 1, 2위 기업인 중국선박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이 합병을 앞두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탄생할 새 국영 조선사는 자산 규모만 4000억 위안에 달한다. 이는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의 네 배 수준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조선 업계는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할까. ‘통상’이 최근 한국인 최초로 미국 조선학회 ‘케니스 데이비드슨 메달’을 수상한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와 한화오션에서 상선 영업을 담당하는 강상돈 상무에게 한국조선업의 활로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내 조선업이 수주 호황을 맞았다. 올해 성과를 소개해 달라.
강상돈 한화오션 상무 (이하 강상돈) “연초부터 △액화천연가스 운반선(LNGC) 16척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 재기화 설비(LNG-FSRU) 1척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7척 △초대형 LPG 운반선(VLGC) 3척 △머스크(Maersk) 컨테이너선 6척 등 총 33척을 수주했다. 추가 수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박 종류가 다양한 점에서 알 수 있듯, 한곳으로 쏠린 시장이 아니고 여러 선종을 균형 있게 수주했다. 경쟁사들도 올해 전반적으로 수주 현황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는 배경은 무엇인가.
강상돈 “우선 조선업은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상대적으로 활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배는 수 주부터 인도까지 2~3년이 걸리는데, 불황기에 낮은 가격에 수주한 (수익성이 낮은) 물량을 털어내는 상황과 어느 정도 수익이 나는 배가 인도되기 시작하는 상황이 맞물려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 줄어든 인력을 보강했는데도 사람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일감이 많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이하 김용환)
“조선업은 사이클이 있다. 이 사이클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10년간의 불황으로 공급이 감소한 상태에서 몇 년 전부터 수요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 접어들어 공급자(조선사)가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다.”
리스크는 없나.
김용환 “대외 리스크로는 중국 경쟁사가 너무 강력하다는 문제가 있다. 대내 리스크로는 인력이 안 따라주는 문제가 있다. 또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다는 문제도 있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액부터 절대적으로 적고, 기술 투자 실효성이 떨어진다. 국내 제조기업은 일반적으로 매출액의 2.5~5.0%를 R&D에 투자하는데, 조선업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채 1%도 안 된다. 한국 굴뚝 산업이 전반적으로 투자에 인색한 경향이 있지만, 최근 친환경 선박과 디지털 선박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기업은 적극적으로 R&D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기술 격차를 확보하기 위해 지금의 두 배는 더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인력 수급과 관련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나.
강상돈 “인력난은 사실 업계의 오랜 문제다. 건설업 호황 때 인력이 그쪽으로 많이 빠졌다. 그러고 나서 건설업이 흔들리고 조선업 호황이 왔는데 기술자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다행히 규제를 풀어줘 외국인 노동자를 더 데려와 인력난을 해소해 나가는 중이다. 다만, 아직 외국인 노동자의 숙련도가 높지 않아 이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김용환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오래 머무르면서 한 직장을 오래 다녀 숙련도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근래 들어 외국인 노동자로부터 가족을 한국에 데려오겠다거나 임금을 올려 달라는 등의 요구가 나오는데, 사실은 그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요구이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요구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특구나 위락 시설 등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숙련도를 쌓기 어려운 이유 중엔 언어 문제도 상당히 큰데, 어떤 기업은 내부에 통역사만 40명 정도를 두고 있다고 한다.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는 고려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강상돈 “당국이 외국인 노동자 권리 보호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권리 보장과 근무 환경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거로 생각한다.
대외적으로 중국이라는 벽이 있다. 중국 조선업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배경은 무엇인가.
강상돈 “과거 중국 조선 업계는 작은 기업이 매우 많은 구조였다. 그런데 조선업 불황이 오자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정리하고 합병시키면서, 수는 줄었지만 기업 규모가 커졌다. 최근 몇 년 동안 선박 수요가 많아지자, 정부가 나서서 직접 조선업에 투자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기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 올해 컨테이너선 붐이 왔는데, 중국 조선사가 저가 공세를 펼쳐 수주 물량을 쓸어갔다. 컨테이너선은 예전엔 한국 기업이 30% 정도는 가져왔는데, 지금은 그 비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김용환 “과거 중국 조선소는 엄청난 숫자에 달했다. 한국처럼 초대형 조선소를 만들기보다는 각 지방에 작은 조선소를 많이 만든 것이다. 글로벌 조선 산업 호황기 생산능력을 보면 한국은 대략 1600만CGT(표준선 환산 톤수), 중국은 2600만 CGT에 달했다. 그러다 불황을 거치며 중국 조선소는 상당수의 조선소를 줄여 생산능력이 1400만 CGT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 중국에 초대형 독(dock·건조 설비)이 다수 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생산능력이 큰 폭으로 다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연간 1200만~1300만 CGT 규모인 한국의 생산능력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슈퍼사이클이 끝나고 불황이 오면 중국의 생산능력 제고가 오히려 위기가 되는 것 아닌가.
김용환 “그럼에도 중국은 살아남을 것이다. 중국은 해운 산업이 매우 강력하고, 해군력도 크게 키우고 있기 때문에 자국선 발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출 위주이기 때문에 자국선 발주 비중이 10% 미만에 그치지만, 중국은 자국선만으로도 30~40%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조선사의 강점은 무엇인가.
김용환 “최대 강점은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형 조선사는 국영 기업이다. 이들은 금융, 영업, 기술 개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근래 들어서는 과거에 단점이었던 것을 장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은 과거 선박 설계, 연구, 생산 기업을 전부 분리했다. 그래서 이 과정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각 조선사가 자사에 필요한 연구, 설계 기능을 조금씩 갖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기업을 정부가 나서서 합병시키니, 각자 가지고 있던 역량이 하나로 뭉쳐져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R&D 투자도 매우 적극적이다. 친환경, 스마트 기술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중국의 LNG 선박 수주는 3~4년 전만 해도 한 척 수주가 힘들었으나, 이제는 전 세계 LNG 선박 시장점유율 30%를 향해 가고 있다.”
중국과 차별화되는 ‘K조선’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김용환 “인력이 우수하고 노련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두 번의 사이클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업 총수부터 시작해 전반적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있어 이 장점이 흐려질 우려도 있다. 젊은 리더들은 앞선 세대가 쌓아둔 질 좋은 데이터를 잘 활용해야 한다. 아직은 기술적으로도 한국 조선사가 우위에 있다. 선주들에게 한국 조선사는 ‘이곳에 맡기면 적어도 납기는 지킬 것’이라는 신뢰가 두텁다. 이 인식이 앞으로 10년은 더 갈 것이다. 다만, 중국 배에 대한 만족도도 점점 나아지고 있어, 이 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
+ 한중 조선해양학 저널 논문 게재 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강상돈 “사실 정부의 지원책은 중소기업에 집중된 경우가 많아 대기업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큰 지원을 받기는 어렵다. 그런데 산업 전반의 활기를 제고하기 위해선 외국인 노동자 비자 지원이 더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장기 체류가 좀 더 쉽도록 시스템이 보완되면 좋겠다.”
김용환 “비단 조선 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싱가포르의 경우 각각의 산업 현황에 맞게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제도도 달리 적용된다. 예를 들면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받고,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는 장기 체류를 좀 더 용이하게 하는 식이다. 제도적 지원 외에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자국 기업에 발주하는 등 레퍼런스를 쌓아 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조선업에 대한 정부 지원 전반에 만족하지만, 이 역할은 우리 정부가 해외 정부에 비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 조선사(국영기업) 와 경쟁은 사실상 중국 정부와 한국 사기업 간 경쟁과 같다. 중국은 조선사 금융 지원에 적극적이어서 과거 선주들 사이에선 ‘1달러만 있으면 중국에서 배를 만들 수 있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강상돈 “중국 정부와 한국 사기업 간 경쟁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중국 정부는 조선사에 금융과 선박 수주를 직접 지원해 지금 같은 경쟁력을 갖게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다. 올해 초, 미국에서 LNG 프로젝트 승인이 보류1)된 이후 LNG 시장이 침체하고 있다. 이럴 땐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와주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미진하다. 다만 특정 산업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우려하는 건 이해한다.”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김용환 “협력해야 한다. 각개전투할 때가 아니다. 물론 그간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 온 덕에 지금 같은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젠 전략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다. 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될 수는 없지 않나.”
강상돈 “현장에서 느끼는 건, 주요 입찰 프로젝트에 들어갔을 때 과거엔 한국에서 1등 하면 세계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1등 해도 중국 조선사에 밀릴 때가 있다. 한국 조선사가 R&D 분야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용어설명
- * 1) LNG 프로젝트 승인 보류
환경 단체 압력 등으로 미국 정부가 LNG 프로젝트 허가를 일시 중단하면서 LNG 선박 수주 시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LNG 선박은 인도까지 3~5년이 걸려 LNG 프로젝트 초기에 LNG 선박 수주를 진행한다. LNG 선박은 그간 한국 조선사가 거의 수주를 독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