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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건조 단가, 46개월째 상승…슈퍼사이클 맞은 K-조선 친환경·고부가가치 선종 선별 수주, 정부 ‘K-조선 초격차 비전 2040’ 추진
함정 정비를 위해 9월 2일 오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입항한 ‘월리 시라’호가 안벽에 접근하는 모습. 한화오션

9월 2일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군수 지원함 ‘월리 시라(Wally Schirra)’호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3개월간 창 정비를 위해 입항했다. 배수량은 약 4만t급으로 전장 210m, 전폭 32.2m에 달하는 월리 시라호는 해상에서 탄약, 식량, 수리 부품, 연료 등을 전투함 등 다른 함정에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창 정비는 한화오션이 한국 조선 업계 최초로 미 해군 발주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한 데 따른 것이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의 MRO 사업을 위해 2024년 6월 한화시스템과 함께 1억달러(1370억원)를 투자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Philly)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해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한화오션의 월리 시라호 창 정비는 연 20조원 규모의 미 함정 MRO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된다. 1949년 미군 퇴역함을 구입해 해군 전력을 꾸린 우리나라가 75년 만에 미군 함정을 정비하는 나라로 올라섰다. 미 해군의 MRO 사업을 수행하게 된 것은 한국 조선 업계의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조선업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이하는 한국 조선 업계는 조선 단가 상승, 수주 잔량 증가라는 겹호재를 맞이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전문 기관인 클라 크슨리서치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신조선가지수(Newbuilding Price Index·선박 건조 단가) 는 189.96으로 2023년 9월(175.37) 대비 8% 오르며 4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2020년 9월 (126.61)과 비교하면 4년 만에 50% 오른 수준이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선가는 한 척에 2억6000만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 조선 업체의 수주 실적도 크게 개선 됐다. HD한국조선해양은 현재까지 총 165척(185억9000만달러)을 수주하면서 연간 수주 목표(135 억달러)의 137.7%를 달성했다. 한화오션은 지난 2 분기 기준 53억3000만달러(약 7조원) 상당의 선박을 수주하며 지난해 전체 수주액을 넘겼다. 삼성중공업은 현재까지 올해 목표의 56%인 총 24척 (54억달러)을 수주했다. K조선은 7월 말 기준 약 200조원에 달하는 3~4년치 안정적 일감(3911만 CGT)을 확보했다. 



이번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과거과 다른 점은 한국 조선 업체의 실적이 고부가가치 선종 위주 선별 수주의 결과라는 점이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은 LNG 운반선, 초대형 유조선(VLCC), 2만2000~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위주의 고가 선박 중심으로 수주를 하고 있다. 각 선종 가격은 8월 기준 LNG 운반선 2억6200만달러(3406억원), 초대형 유조선(VLCC) 1억2900만달러(1767억원), 초대형 컨테이너선 2억7300만달러(3740억원) 수준이다. 올해 전 세계 누적 선박 수주(4976만CGT·1733척)의 70%를 중국(3467만CGT·1222척)이 차지하고 한국의 수주 점유율은 18%(872만CGT·201척)에 불과하지만, 조선 업계에서는 저가 수주를 근절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중국 조선 업체가 수주한 선종은 규모가 작은 저부가가치 선박이 다수이기 때문에 한국 업체에 수주 유인이 없다”라고 조선 업체 관계자는 귀띔했다. 정부도 K조선 초격차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9월 11일 ‘조선·해양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 “조선 산업 현장의 가장 큰 어려움인 인력 부족,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애로 등을 개선하고, 액화수소 운반선 등 ‘10대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지난 7월 발표한 ‘K조선 초격차 비전 2040’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중립’ 목표는 한국 조선 업체에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탄소 중립 목표 이행을 위해 머스크 등 글로벌 해운사가 발주하는 메탄올 및 LNG·암모니아 연료 추진선 상당수를 한국 조선 업체가 수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신규 건조 발주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70척 중 42척을 한국 업체가 수주했다. 한국은 2024년부터는 LNG·암모니아 연료 추진선 수주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글로벌 톱10 해운사의 친환경 연료 추진선 연료별 발주 실적은 LNG가 60%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머스크 등 글로벌 상위권 해운사가 최대 30척의 LNG·암모니아 연료 추진선 발주를 앞두고 있어서, 중국과 기술 격차를 크게 벌린 한국 조선 업체에 과실이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