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함께 풀기

대담 원전 산업 전문가 3人 “韓 원전 강점은 정해진 예산 내 적기 시공… 체코 발판으로 ‘원전 유턴’ 유럽 정조준”
  • 심민관 기자
  • 체코 정부는 7월 17일(이하 현지시각) 한국의 ‘팀 코리아 컨소시엄(한국수력원자력·대우건설·두산 에너빌리티)’을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이하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체코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협상한 뒤 2025년 3월 최종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수주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따낸 대규모 원자력발전기 건설 사업으로, 예상 사업비만 4000억코루나(약 24조원)에 달한다. 특히 이번 성과는 한국 원전의 첫 유럽 수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82년 유럽형 원전을 도입했던 한국이 이제는 유럽에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이번 성과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목표 달성의 첫 단추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10일 나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문한 미국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을 만나 원전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지난해 9월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올해 4월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체코를 방문해 한국의 원전 경쟁력을 홍보했다. 


    애초 유럽연합(EU) 내 원전 건설 최강국으로 평가받는 프랑스가 유력했지만, 한국이 과거 원전 건설에서 약속한 공사 기간을 성실히 지켰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는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를 2009년까지 짓기로 했지만, 공사를 13년가량 지연한 적 있다. 체코 당국은 “이번 (신규 원전 건설) 입찰에서 한국이 프랑스보다 모든 평가 기준에서 우수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체코 원전 수주를 시작으로 폴란드·네덜란드·루마니아 등 향후 예정된 유럽 지역 원전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얻으려면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통상’이 노백식 한국원자력산업협회 부회장,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박수용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마케팅팀장 등 원전 전문가 3인에게 국내 원전 산업의 강점과 미래 발전 방향 등을 물었다.



    부산대 전기공학 학·석사, 전 한국수력원자력 해외사업본부장,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체코에서 한국이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어떤 강점이 작용한 건가. 

    노백식 한국원자력산업협회 부회장(이하 노백식)

    “이번 수주는 체코를 시작으로 유럽 시장에 한국 원전 수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풍부한 원전 건설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계획된 예산과 정해진 기간 내에 원하는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사막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UAE 바라카 원전 건설을 성공시키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입찰 경쟁에서 체코 정부가 한국의 이런 능력을 인정했다. 경쟁국 대비 저렴하게 원전을 건설하는 능력도 강점이다. 세계 원자력협회(WNA)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수행한 UAE 바라카 원전 건설은 KWe당 약 3600달러 (약 483만원) 수준인데 비해, 프랑스가 자국에서 건설하고 있는 플라망빌 3호기는 KWe당 8500달러 (약 1140만원) 수준에 달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원전 건설 전 단계에서 강력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어야만 발주사에서 요구하는 기능과 품질 수준의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고 설치할 수 있어 건설 공기(공사 기간)를 준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의 원전 이용 확대 정책이 원전 건설 사업의 해외 수주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이하 정동욱) “한국은 국제적으로 굉장히 신뢰성이 높은 나라다. 대외적으로 올라간 한국의 국격이 신뢰의 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간 유일한 나라다. 한국의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꾸준하게 원전 산업을 발전시키고 표준화된 원전 건설을 추진한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의 원전은 세계 최고로 안전하다는 점도 원전 세일즈에 도움이 됐다. 국내 원전은 대도시 근처에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원전을 더욱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했다. 물론 체코 정부가 신뢰만으로 한국을 선택한 건 아닐 것이다. 한국이 제시한 원전 건설 사업 계획이 경쟁국 대비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체코 정부의 판단도 있었다. 원전 공기 스케줄(일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부분에서 한국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경쟁국이었던 프랑스는 핀란드 원전 공기 일정을 13년이나 지연시켰다.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협력한 것도 강점이었다.”



    박수용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마케팅팀장(이하 박수용) “한국은 지속적인 원전 건설 경험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 경쟁력 및 적기 준공 능력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설계, 기자재 제작, 시공 및 시운전까지 원전 건설 전 단계에 걸쳐 강력한 공급망을 보유했고, 이를 기반으로 건설 공기 준수가 가능한 강점을 갖추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을 통해 한국의 건설 능력을 전 세계에 알렸고, 이러한 강점으로 인해 원전 도입 국가들이 한국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실제로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우선 협상대상자 선정 시 체코 정부는 한국이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공학 석사, 매사추세츠 공대 원자력공학 박사, 전 한수원 중앙연구원 처장,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원전 산업 선진국은 어디인가.

    노백식 “올해 5월 말 기준 주요 국가별 원전 운용 현황을 보면 미국이 94기로 제일 많고 그다음이 프랑스(56기), 중국(56기), 러시아(36기), 한국(26기), 인도(20기)순이었다. 미국은 진행 중인 원전 건설이 없고, 프랑스가 1기, 중국이 25기, 러시아가 4기, 한국이 4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다. 국가 별로 진행 중인 원전 건설이 많지 않은 국가는 전문 기술력과 공급망이 불안정할 수 있다. 이전에는 미국이 원전 산업의 선진국이었으나 그동안 원전 건설 사업이 장기간 중단돼 원전 공급망이 취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프랑스와 한국은 꾸준히 원전 건설을 추진함에 따라 원전 산업이 안정적인 수준으로 발전해 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국내외에서 진행중인 원전 건설 사업이 많다. 특히 중국은 현재 건설 중인 원전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이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체코 원전 수주전에 러시아와 중국이 제외됐다고. 

    노백식 “두 국가는 원전 산업 선진국으로, 기술력과 가격 등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는 한국과 러시아, 중국 3개국이 사실상 경쟁 대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중국 견제 등으로 인해 체코가 국가 안보상 이유를 내세워 러시아와 중국을 후보에서 제외했다. 한국에 국운이 따른 것 같다.” 


    정동욱 “이번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특히 체코에서 운용 중인 원전 6기는 러시아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러시아가 빠지면서 한국이 기회를 잡은 것이다.”



    부산대 무역학, 전 두산에너빌리티 에너지정책 TF팀장, 전 원자력학회 이슈 및 소통위원회 위원, 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자력분과 위원

    체코 수주전에서 정부와 팀코리아 컨소시엄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노백식 “나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해외 사업본부장 시절 체코 수주전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2016년에 한국 컨소시엄이 입찰 예비 문서를 접수한 이후 한수원은 체코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펼쳤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체코 팀을 응원하기 위한 응원단을 만들어 체코 응원석을 가득 채웠다. 체코를 응원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체코인에게 방송 중계로 전달됐다. 한수원은 또 체코 두코바니 지역의 아이스하키팀(Horacka Slavia)을 2018년부터 후원하고 있다. 


    아이스하키는 체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두코바니 아이스하키 경기장 이름이 한수원의 영문 이름을 딴 KHNP(Korea Hydro & Nuclear Power) ARENA로 바뀌었고, 후원받은 아이스하키팀 선수들도 KHNP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 특히 이 팀이 지난 시즌, 우승하면서 체코인에게 한수원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한수원은 해외 봉사 활동도 체코에서 많이 실시했다. 체코 지역 발전을 위해 한국이 함께 노력한다는 점을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최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 직전에 원전이 지어지는 두코바니 지역주민협의회가 우리는 원전 파트너로 한국을 원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정동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뿐 아니라 대통령도 직접 나서 원전 세일즈 외교에 나섰을 정도로, 정부 차원에서 원전 산업을 바탕으로 체코와 산업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체코 측에도 이러한 기대 효과가 분명히 있겠지만 이런 의지가 상당히 좋은 메시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박수용 “두산에너빌리티는 체코 현지 기업이 기자재를 납품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체코 플젠시에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가 있다. 2009년에 우리가 인수한 체코 현지 업체로 원전에 들어가는 주요 기자재인 터빈을 만든다. 현재 체코에서 운용 중인 원전 6기에 두산스 코다파워에서 만든 터빈이 들어갔다. 이번에 우리 (팀코리아 컨소시엄)가 체코 원전 수주전에 입찰 할 때 한국이 체코 원전을 짓게 되면 터빈은 두산 스코다파워가 공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두산스코다파워는 체코 회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프랑스는 프랑스 또는 독일에 있는 터빈 업체를 쓰는데, 한국은 체코 현지에 있는 체코 업체를 쓰겠다고 공언한 것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체코에 이어 한국이 유럽에서 원전 건설을 추가 수주하면 체코 기업이 만든 터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이 밖에도 두산스코다파워를 통해 체코 현지에서 두산파트너십데이 행사를 개최하고, 300여 명의 체코 현지 산업계 인사를 초청하는 등 현지 교류를 확대하는 노력을 펼쳤다.”



    자료_‘통상’정리


    한국의 원전 부품 해외 의존도는.

    박수용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 해외사로부터 일괄 턴키 방식으로 원전을 도입했지만, 1980년대 정부의 원전 기술 자립 정책 수립을 추진했고, 원전 기자재 분야도 국산화를 완료해 원전 필수 부품을 자체 생산해 조달하고 있다. 오히려 원전 최강국이었던 미국이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없어 원전 공급망이 붕괴했고, 주요 기자재 제작을 한국 등 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원전 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정동욱 “원전 산업은 국가 산업으로 키워가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있어야 발전해 갈 수 있다. 반도체나 원전 같은 산업은 정부의 지원이 중요한 국가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 성공도 정부의 확고한 의지 덕분이다. 한국은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수주 경쟁 격화도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원전 산업 생태계가 잘 갖춰진 국가다. 중국은 한 해에만 10기의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생산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자국에 원전을 짓기도 바빠서 해외시장에 나갈 요인이 크지 않지만, 이후에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태양광이나 배터리의 경우 중국이 자국 내에서 공급이 과잉되자, 해외에 덤핑하듯이 팔지 않나. 원전도 미래에는 그렇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10년 후에도 국제 정세가 지금처럼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