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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원전 최강국 과제, SMR 경쟁력 제고·기업 참여 필수
2023년 상업 운전을 개시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 3호기. 한국전력

체코 원자력발전(이하 원전) 사업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 코리아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EDF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으로써 한국의 원전 강국 위상은 재차 확인됐다. 한국이 원전 강국으로 부상한 기저에는 지난 40여 년간 3년마다 2기씩 원전을 건설해 오는 과정에서 구축된 고효율의 원전 산업 생태계 뿐만 아니라 그간 꾸준히 진행해온 원전 기술 개발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APR1400’이라는 한국 고유의 제 3세대 원전 개발이다. APR1400은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에서 전수받은 원전 설계를 다소 개량한 ‘OPR1000’ 모델에서 용량을 1000㎿(메가와트) 에서 1400㎿로 늘리고 안전 설비와 계측 제어 계통 혁신을 통해 안전성과 성능을 대폭 증진했다. 원전 기술 개발 과정에는 개념 창안과 설계 수행 뿐만 아니라 실험을 통한 성능 입증이 필수적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APR1400 개발 과정에서 ‘직접 안전 주입 설비’ ‘피동 유량 조절’ 장치 등 안전 설비 개념을 창안하고 실험을 수행해 2002년 표준 설계 인가 획득에 큰 기여를 했다. 체코에 제안한 APR1000은 APR1400 설계를 기반으로 하되 체코같이 규모가 작은 전력망을 고려해 용량을 줄이고, 노심 용융물 용기 내 가둠 설비, 이중 격납 건물 등 유럽 사용자 요건에 부합하는 안전 설비를 추가하여 안전성을 높이도록 개발한 후, 2011년 표준 설계 인가를 획득했다. 



APR1400의 후속 노형인 ‘APR+’는 피동 보조 급수 계통 등의 추가로 안전성을 더욱 향상할 뿐만 아니라, 용량을 1500㎿로 늘리고 모듈화 공법을 통해 건설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경제성까지도 향상한 한국의 최신형 대형 원전으로 2015년에 개발이 완료됐다. 원전 산업계는 원전 설계 개량과 더불어 핵연료 기술 개발도 병행해 냉각 성능이 좋고 내구성이 우수한 ‘HIPER16’이라는 개량 핵 연료도 개발했다. 이러한 일련의 원전 기술 개발 과정을 통해 한국은 경험을 풍부하게 축적한 유능한 엔지니어 뿐만 아니라 설계 해석 컴퓨터 코드 체계와 성능 검증용 실험 인프라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체코에서 일차적 성공에는 이렇게 미리 준비한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이란 토대가 있었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예산 내 적기 완공이나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인해 원전 강국으로서 위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나, 중국과 러시아까지 고려하면 한국이 원전 최강국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현재 대형 원전에 관해서는 서방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이 가격 경쟁력과 시공 능력이 우수하다고 할 수 있으나,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교하면 장담할 수 없다. 러시아는 튀르키예, 인도, 이집트, 방글라데시 등 여러 나라에서 39기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고, 중국은 자국에서만 30기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은 기술력과 자금 동원 능력을 활용해 유럽 이외 지역에 대거 진출해 있고, 중국은 자국 내 대량 건설 경험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차후 세계시장에서 러시아와 주도권을 다툴 것이다. 한국이 체코에서 성공에 안주하면 안될 이유다.



한국이 원전 최강국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원전 산업계의 경쟁력을 훨씬 더 높여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우선 유럽 택소노미 요건 중 하나인 ‘사고저 항성핵연료(ATF)’ 개발 가속화와 사용후핵연료 처분 계획 확립이 필요하다. ATF는 현재 시제품이 만들어져서 상용 원자로에서 시험적으로 연소되고 있다. 수년 뒤에는 연소 특성을 분석해 성능을 입증하거나 보완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계획 확립은 기존 원전의 안정적인 지속 가동 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계획의 기반이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원전 최강국 실현의 선결 요건으로서, 속히 제정돼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최신형 원전 모델인 APR+의 건설을 통해 원전 기술력을 한층 제고하고 원전 산업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수의 원전 증설이 추진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형 원전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1)로 옮겨갈 미래 세계 원전 시장에 대비해야 한다. 전통적인 ‘수냉각’ 방식 이외에 액체 금속이나 가스로 냉각하는 방식으로도 개발되고 있는 다양한 SMR은 높은 열을 무탄소로 공급함으로써 비전력 분야 탄소 중립에도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뉴스케일이 ‘VOYGR’이라는 수냉각 SMR 개발을 완료했고, 테라파워와 엑스-에너지는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각각 나트륨 액체 금속과 헬륨 가스 냉각형 SMR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개발 속도와 수준이 세계적으로 앞선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일찌감치 1997년 ‘SMART’ 라는 SMR 개발을 시작해 2012년 표준 설계 인가를 받았다. 용량이 100㎿인 SMART는 원자로, 증기 발생기, 펌프 등 주요 기기 모두가 원자로 용기 안에 배치된 일체형 원자로다. 대형 냉각 실패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해 대형 원전보다 훨씬 안전성이 높다. 다만 예상 발전 단가가 대형 원전보다 꽤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 개발이 추진 중인 ‘혁신형 SMR(i-SMR)’은 개별 모듈 용량을 170㎿로 상향하고 모듈 네 개를 모아 배치함으로써 경제성을 높이며, 혁신적인 피동 냉각 기능 등을 추가해 안전성도 증진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SMR 을 목표로 한다. i-SMR이 향후 국제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개발을 완료해 국내 건설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



비수냉각 SMR 분야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도하는 가스 냉각형 SMR의 민관 합작 사업을 최근 포스코E&C의 참여로 착수했다. 나트륨 냉각형 SMR 개발은 현대건설이 참여해 내년에 시작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원자로 개발이 정부 지원 연구비로만 진행돼 왔지만, 이제는 민간 기업도 동참해 개발 시너지가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신개념 선진 원자로 실증을 위한 설계와 실험적 검증, 부지 확보와 인허가 추진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 그리고 시간이 요구된다.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이에 부응한 기업의 적극적이고 일관성 있는 참여를 통한 선진 원자로의 선제적 개발과 실증이 미래 원전 최강국 실현에 가장 필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용어설명

  • * 소형모듈원자로 (SMR·Small Modular Reactor)(1)

    대형 원전의 핵심 장치를 하나로 합쳐 크기를 줄인 소형 원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비교적 낮고, 사고가 나도 피해가 제한적이라 ‘차세대 원전’으로 불린다. 대형 원전(1000~1400㎿)에 있던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등 주요 장치를 하나로 통합해 규모가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300㎿ 안팎)으로 줄어든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