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화려한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글·사진 김동주 여행작가, <세계일주가 아니었다면> 저자

누구나 환상을 품고 산다. 한 달 월급 하룻밤에 다 쓰기, 할리우드 스타가 되어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사진 찍기,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돌아가는 유명 요리사의 레스토랑에서 미식회 즐기기, 클럽에서 첫눈에 꽂힌 상대와 그날 결혼하기…. 1905년, 네바다주의 황무지에 세워진 라스베이거스는 바로 그런 욕망이 한데 모여 탄생한 곳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화려한 스트립 거리 야경
Welcome to Sin City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기 전에 사진 찍을 때 어떤 포즈를 취하면 좋을지 미리 고민해둘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비행기보다는 렌터카가 좋다. 그래야 지평선을 그리는 도로를 5시간 달린 뒤 ‘Welcome to Fabulous Las Vegas’ 간판과 마주치는 그 순간이 드라마틱해진다. 나 역시 아침 8시에 LA에서부터 차를 몰았지만, 막상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간판을 지나 스트립에 들어서니 그 화려한 외모에 시선을 빼앗기기보다 주눅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본 간판이 붙은 거대 호텔이 좌우로 빽빽하게 들어서고, 도로에는 신호등마다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는 슈퍼카들이 으르렁거린다. 어느 호텔에 들어서도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축구장만 한 카지노인데 여기에서부터 등급이 나뉜다. 여유 있는 미소로 딜러와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빈자리에 앉아 테이블 게임을 하는 사람과 대답 없는 기계 앞에 앉아 아무 의미도 없는 버튼을 눌러대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무료로 제공되는 콜라와 커피를 찾아 기웃거리는 사람…. 밥을 먹는 식당 테이블에도, 유리 천장으로 약간의 햇빛이 스며드는 테라스 벽에도, 위스키 바에도 게임 스크린이 달려 있으니 원죄의 도시(Sin City)답다. 하지만 명심하자. 이제 겨우 첫날일 뿐이다. 초심자의 행운을 믿는 것은 좋지만, 첫날부터 죄를 짓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조물주가 사는 도시

카지노에서 빠져나온 뒤부터는 단 1분도 쉬지 않고 스트립의 온갖 호텔들을 휘저었는데, 해가 지고 나서야 이 도시의 시작은 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막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면,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것이 함께 깨어난다. 오랜 시간 카리브해에서 모습을 감춘 해적선이 불을 뿜고, 우렁찬 대포 소리와 함께 벨라지오 호텔 분수가 춤을 춘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거리는 온통 황금빛 네온사인으로 물드는데,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다. 마치 태양을 마주 보는 것처럼 눈이 부시다. 더 기가 찬 것은 호텔 내부다. 나는 플라밍고 호텔에 묵었는데, 호텔 정원에는 볼리비아 4,000m 고원지대에서 고산병과 싸우며 마주쳤던 플라밍고가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니 플라밍고가 왜 여기서 나오나 싶지만 서커스 호텔에서는 매일 밤 서커스가 열리고, 리우 호텔에서는 카니발 쇼가 열리는 게 이곳이다. MGM 호텔 1층에는 거대한 사자 우리가, 미라지 호텔에는 30m는 족히 될 것 같은 거대한 수조가 있는데, 그 속에는 내가 홍해 바다에서 본 모든 생명체가 들어 있었다. 마침내 같은 호텔의 시크릿 가든(Siegfried & Roy’s Secret Garden)에서 홀로 고고하게 정글 안을 걷는 하얀 호랑이와 마주치자 지난 6개월간의 세계여행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의 21세기 버전을 꼽느다면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이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늘 돈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많다고 믿었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쓸데없이 거대하고 화려하게만 느껴지던 이 도시가 그때부터는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처럼 자신의 모든 욕망을 이 도시에 밀어넣었다. 그러면 다음 날, 거리 어디쯤에선가 ‘짠’ 하고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어느 날에는 알래스카 북극곰도 나타날지 모른다. 펭귄은 또 어떤가. 마침내 마야의 피라미드가 들어서고(이집트 피라미드는 이미 룩소르 호텔에 있다), 버튼을 누르면 나타나는 숨겨진 방 안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욕망을 밀어넣는다. 마치 조물주가 사는 것처럼.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
금강산도 식후경
플래닛 할리우드의 고든 램지 버거

휘황찬란한 호텔이 늘어선 스트립에는 전 세계 관광객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한 레스토랑도 즐비하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라스베이거스의 유일한 단점이다. 선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고든 램지, 훌리안 세라노, 장 조지, 볼프강 퍽 등 셰프의 이름만 들어도 내가 TV 쇼에 출연하는 건지, 식당을 고르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선택은 셰프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든 램지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에 서로 다른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5개나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헬스 키친(Hell’s Kitchen)은 손쉽게 제외할 수 있다. 적어도 6개월 전이 아니라면 어차피 예약이 불가능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비교적 빠르게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 중에 혼자서 갈 수 있을 만한 곳은 플래닛 할리우드에 있는 고든 램지 버거뿐이다. 오픈된 주방 벽면, 메뉴판, 테이블에 놓인 팸플릿에까지 새겨진 그의 이름과 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거를 집어 천천히 입으로 옮겼다. 입안에서 계속 트뤼프 향이 맴돌았다. 버거를 먹은 뒤에는 화려하기로 유명한 MGM 호텔의 마마 래빗 바(Mama Rabbit Bar), 바베츠 스테이크하우스(Bavett’s Steakhouse)의 위스키 바 등을 기웃거리며 눈요기를 했다. 혼자하는 여행이 싫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일은 베이거스에 묻힌다

나는 혼자서 조용히 이 도시의 밤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전망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숙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약간의 대기열을 거쳐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꺼운 유리벽으로 막힌 전망대에 올라서니 자정을 향해 가는 도시는 여전히 활발했다. 아니, 온 도시가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나는 엉뚱하게도 이 도시가 정전되면 어떨지가 궁금해졌다. 사막 위의 신기루 같은 도시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빛을 잃은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결국은 패배할 운명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소망하고 다시 꿈꾸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까?
라스베이거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역시 슬롯머신이었다. 공항에서 게이트로 가는 통로에서 누군가의 욕망을 삼키는 중이었다. 나는 시계를 슬쩍 쳐다본 후 빈 기계 앞에 앉았다. 기계는 고작 10분 만에 20달러를 먹어치웠다. 마침내 나도 원죄를 저지른 거다. 주변을 둘러보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짜든 진짜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세트장 위에 세우고야 마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사람들은 만월의 늑대가 되었다가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손등에 찍힌 입장 도장을 지우고 출구를 빠져나간다. 나는 얼른 일어나 그 대열에 합류했다. 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일은 베이거스에 묻고 말이다.

2019 CES에서 선보인 밴츠 사의 미래차
라스베이거스에서 주목해야 할 통상 이슈
소비자가전전시회
(Consumer Electronics Show)
2020. 1.7 ~ 1.10

미국가전협회(CEA: 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가 주관해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 제품 전시회.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가전박람회(IFA: Internationale Funkausstellung),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Mobile World Congress)와 더불어 ‘세계 3대 IT 전시회’로 꼽힌다. 2020년 CES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다수 참가해 현대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 LG의 식물재배기 등 신기술과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