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사람이나 가축이 아닌 자체의 인공 동력이 바퀴에 전달되고, 다시 그 바퀴가 노면과 마찰하며 발생하는 반작용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교통수단. 바로 자동차(自動車)다. 자동차를 만들고, 타고, 팔고 또 사면서 생겨난 역사 속 자동차 무역 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최초의 휘발유 동력 자동차가 등장한 188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35년 전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상·하원 연설에서 “ ‘자동차를 발명한 미국’은 아무리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이 산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동차를 발명했다는 이 발언에 심기가 불편할 나라가 여럿이다.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독일이다. 사실 자동차를 처음 발명한 나라가 어디인지는 증기, 휘발유 등 동력원 해석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는데 아무튼 미국은 없다. 그렇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자동차의 대량생산 라인을 갖추고 대중차 보급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3륜 자동차를 최초로 제작한 것은 독일의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였다. 자동차 발명에 제일 빠른 속도를 자랑한 이는 포드도 페라리도 아닌 벤츠였던 셈이다. 이처럼 독일인의 피에는 자동차 DNA가 흐르는가 보다. 벤츠, 다임러와 더불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 역시 그러하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유전자가 또 다른 독일인 아돌프 히틀러에게도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큰 독재자였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지원과 포르쉐 박사의 천재성이 합작해 만든 게 바로 딱정벌레 모양으로 유명한 폭스바겐 비틀이다.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만들었다니 참 신기한 일화다.
자동차산업의 성패는 얼마나 만들고 얼마나 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산업혁명 대성공으로 최고의 제조 기반을 갖추고 으뜸가는 공업국이 된 영국과 그들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영국은 한때 롤스로이스, 벤틀리, 재규어 같은 명차들의 아버지로 이름을 날렸지만 2005년 로버가 파산하면서 자국 소유 자동차 회사가 전멸하고 말았다.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 두 가지가 바로 국내 규제와 국외 경쟁력 부족이다.
19세기 말, 독일, 프랑스 등이 자동차산업에 혈안이 돼 있을 시기 영국에서는 기관차량조례(Locomotive Act)라는 국내법이 발효됐다. 흔히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또는 적기조례로 알려진 그 법이다. 자동차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마차 수요가 감소하자 마부 등이 정치 세력을 로비해 도입했다.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드는 기수를 세워 속도를 최대 시속 6.4km로 제한하는 내용인데 겉으론 빠른 속도의 자동차로부터 보행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였으나 실제로는 기존 이익집단의 일자리와 수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에 불과했다. 1896년 폐지되어 법이 사라졌을 때는 최초로 자동차 상용화에 성공했던 영국의 자동차산업 경쟁력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일본은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정반대 사례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연료 소비가 큰 미국산 자동차의 수요층에 균열이 발생했고, 유럽연합(EU)산 자동차와 함께 연비 좋은 소형차를 앞세운 일본산 자동차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일본의 무차별 공습에 미국이 자랑하던 빅 3(포드, 크라이슬러, GM)는 파산 위기와 최대 적자에 직면했다. 1941년의 12월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비견할 만한 충격이었다. 그에 따라 미국은 일본과 협상을 통해, 일본 스스로 1981년부터 1983년까지 2년간 대미 자동차 수출을 연간 168만 대로 제한하는 이른바 ‘자율 수출 제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당시 대표적 대미 수출 기업이던 도요타는 수출 제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업의 경영 노선 변경으로 대응했다. ‘싸고 좋은 차’를 수출하던 것에서 ‘비싸고 좋은 차’를 수출하는 것으로 전략을 전환한 것이다. 이어 계속되는 미국의 통상 압박에 도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가 탄생한다. 수출 대수가 제한돼도 각 대수의 가격이 높아지면 기존의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렉서스라는 브랜드명의 기원에 대해 그 진위 여부를 알 순 없지만 ‘미국으로 호화로움을 수출하다(Luxury EXport to the United States)에서 나온 것이라는 유머러스한 추측도 있다. 지난해 3/4분기 미국 시장점유율에서 도요타는 2위에 자리했다.
자동차산업은 대표적 기간산업으로 한 나라의 산업화 수준을 보여준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만만찮다. 전 세계에서 차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극히 일부로 압축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의 ‘차(車)부심’은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다.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1990년대 한·미 자동차 교섭, 인도네시아 국민차 프로젝트와 관련된 WTO 분쟁, 한·미 FTA 협상 때마다 첨예하게 대립한 현안 등 갈등과 도전도 많았다. 이를 통한 내공으로 제2의 자동차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신남방 정책과 연계해 동남아를 정복한 일본 자동차와 경쟁하고,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232조 조치 가능성에도 적극 대응하는 등 우리에겐 새로운 과제가 많다. 전기 수소차 등 내연기관 패러다임의 변화, 자율주행이나 공유 자동차 등 기술의 업그레이드도 빠르다. 자동차 불모지로 여겨지던 중국의 지리자동차가 다임러 최대 주주로 자리매김하고 스웨덴 볼보를 인수하는 등 산업 내 지각변동도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 무역사 속 교훈이 마음에 와 닿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