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2020년 무역 환경 전망은?

세계 통상 질서가 개편되고 있다

정리 김정윤 기자 사진 박충렬

2019년 한 해 동안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확산과 미·중 무역 분쟁 등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대한민국 수출의 ‘마이너스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무역 환경이 어떻게 펼쳐질지 국제 통상 분야의 세 전문가에게 고견을 청했다.

좌측부터 최준영 전문위원(법무법인 율촌) / 최영준 교수(경희대학교 무역학과) / 강선주 교수(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 통상 질서 재편
  • 최준영 위원

    미국의 경우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나라도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

  • 강선주 교수

    중국의 부상으로 생긴 위기의식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든 무역규제,
    수출 통제 만들어

  • 최영준 교수

    과거에는 경제적 이익으로
    국가안보 자국법을 평가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

미국의 무역규제,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우대국 한국 제외 등 국가안보 관련 자국법이 결과적으로 각국을 수호했다고 평가하나?
최준영 위원

올해 여러 가지 통상 관련된 이슈들이 많았고, 대한민국은 1년 내내 연달아 전년 대비 교역량이 감소하는 드문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런 일들의 원인은 각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자국의 정치적인 압력이 국제 통상의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미국은 지역 간 장벽을 철폐하고 규제 완화를 강요해왔는데, 미국 내에서는 과연 이런 기조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었는가 질문을 많이 던졌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불리는 불황을 맞은 지역의 민심이 만든 결과물이 트럼프 대통령이고, 트럼프도 나름대로 보답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실행한 첫 번째 조치가 동맹국에 대한 과감한 관세 부과 정책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의도를 관철하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이런 식으로 성공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 같다.

강선주 교수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정치적 위기의식도 상당히 강한 것 같다. 대립관계에 있든, 협력관계에 있든 모든 국가가 중국의 부상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런 위기의식 때문에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서 무역규제, 수출 통제를 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독일의 부상이 유럽을 긴장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당시 국가 간 긴장관계 관리에 주도적 역할을 한 국가가 없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 후에는 이런 긴장관계를 미국이 제도적으로 관리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의 부상으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미국 스스로 그 룰 자체를 바꾸려 하고, 룰 자체로부터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보이니까 전 세계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출 통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이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보는가?
강선주 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방식의 선택에 유별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전체적으로 보면 트럼프 이전에도 문제의식은 쌓여오고 있었다. 다만 트럼프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액션을 취한 대통령이다. 아마 다른 대통령이 됐어도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최준영 위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오바마 정부 때부터 진행됐었다.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자유무역 체제 속에서 중국을 봉쇄하는 방식으로 갔다면, 트럼프는 반대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
미국이 혼자 패권을 가지고 있을 때와 중국이 패권 경쟁자로 부상한 이후에 가치의 기준이 바뀌었다. 미국이 패권을 독차지할 때는 서로 견제할 필요 없이 경제 효율성이 우선이었다. 이제는 경쟁자를 견제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다. 자국 안보와 통상은 개별적인 문제인데 이게 섞여버린 것이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 경제적 가치가 수단으로 이용되는 모양새다. 이런 국가안보 자국법이 이익이냐 아니냐는 평가도 어렵게 되었다. 예전에는 경제적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무역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안보에 도움이 되거나 자국의 외교적·정치적 위상이 좋아지면 된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만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

미 대선 이후에도 미·중 대결 구도 이어질 것
  • 최영준 교수

    RCEP이 잠정 타결되는 성과
    이뤘지만, 내년에도 양강 경쟁 구도의 흐름 바뀌지 않을 것

  • 강선주 교수

    2020년에 미국 대선이 있어 미·중
    무역 관계가 더 악화되진 않겠지만,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상황

  • 최준영 위원

    대선 결과에 따라 방법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기본 방향은 비슷할 것

미·중 무역 갈등이 해소되려면 험난한 과정이 남아 있고, WTO 체제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편으로는 메가 FTA 체결을 비롯해 다자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도 존재한다. 2020년 무역 환경에 새로운 변화가 불어올 것이라고 보나?
최영준 교수

RCEP이 잠정적으로 타결되면서 부상했지만, 그것이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어차피 미·중 양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RCEP이 메인스트림으로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최근 메가 FTA 중에서 TPP와 RCEP이 큰 이슈였는데, TPP는 미국이 주도하다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탈퇴했다. RCEP은 중국이 TPP를 견제하기 위해 시작했다. 원래는 TPP가 더 잘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좌초되고, 오히려 RCEP이 잠정 타결되는 성과를 이뤘다. 중국이 WTO 체제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자는 시도로 보인다. 내년에도 양강 경쟁 구도의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선주 교수

2019년보다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아질 것도 없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1월에 RCEP 협정문 타결이 이뤄지고, 2020년 1월에 미·중 양국이 무역 분쟁 1단계 협상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연시에 일어난 두 가지 큰 변화인데, 2019년까지 계속 고조되어온 긴장을 그 수준으로 묶어놓는 것이다. 2020년에 그것보다 나아지거나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2020년 11월에 미국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중국과 패권 경쟁에 나섰지만, 미국도 어느 정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성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중 무역관계를 더 악화 시킬 이유는 없다. 11월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당선될 경우 미국의 노선에 변화가 생길 수 있나?
최준영 위원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이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더 강했고, 4년 동안 상황을 보면서 미국 정치인들이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중서부 사람들의 소외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를 중국에 대한 대규모 관세로 해결하려 했고, 민주당도 기본 방향은 비슷할 것이다. 단지 좀 더 세련된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강선주 교수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미국 내에서 중국의 부상에 미국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최준영 위원님 말씀처럼 좀 더 세련되게 할지는 몰라도 업계 이익을 위해서 상황을 방치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최영준 교수

오바마 정부때부터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어떤 수단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지 기조는 별 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의 정책이 더 혹독할 수 있다. 트럼프는 협상이 즉흥적이라 구멍이 많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오랫동안 시스템적으로 잘해왔기 때문에, WTO 내에서 룰 메이킹을 다시 시도하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주도적으로 새로운 대안 찾아야
  • 최준영 위원

    ICT 산업이 경제를 리드하고 있어 2020년은 반도체가 좌우하는 상황이 될 것

  • 강선주 교수

    아시아 GVC(Global Value Chain)의 최종 목표를 생각하지 않으면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위험해질 수 있어

  • 최영준 교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중 패권 영향력이 약한 지역과 협력관계 형성해야

한국의 2020년 통상 상황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최준영 위원

당연히 대한민국에는 이 상황이 좋을 것이 없다. 한국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가장 개방적인 국가다. 내년은 반도체가 모두 좌우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2010년 이후에 대한민국은 ‘산유국화’됐다. ICT 산업이 세계경제를 리드하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반도체가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해 전 세계로 보내는 구조다.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면 수출 경기가 좋아지고, 수출 경기가 좋아지면 다른 쪽도 좋아질 것이다.
2010년 이후에 대한민국은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2010년 수준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성장의 한 축을 반도체가 이끌어왔는데 반도체 사이클이 한 번 꺾이다 보니 지금 나갈 방법을 못 찾고 있는 것이 2019년의 모습이었다. 2020년 상황이 나아진다고 하는데 정말 좋아질지, 기대 섞인 심리일지는 모르겠다.

최영준 교수

급진적으로 이야기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많이 줄이고 새로운 체제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한 경기 변화가 아니라 체제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신냉전체제와 같이 정치체제에서 양분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지금처럼 한국, 중국, 일본 삼각 편대로 이뤄진 산업의 연계성, 이 고리가 끊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체제 자체의 변화는 쉽지 않지만 분명히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시장은 중국이지만, 중국 시장이 언제 어떻게 막힐지 모른다. 일종의 편가르기 싸움인데, 편가르기 싸움에서는 어느 편에 서야 할지가 중요하다. 균형 외교 했다가 양쪽으로 뺨 맞는 것보다 한쪽을 확실히 선택하는 게 좋겠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세안 등 미·중 패권의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정치·경제적 중립 지역과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 빠지면 RCEP이 가장 좋은 대안이었는데, 아쉽게 됐다.

최준영 위원

중국이 이렇게 바뀐 지 딱 40년이 됐다. 1979년 개혁개방정책을 시행했는데, 그 전에는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하다 갑자기 돌아선 것이다. 중국은 언제든 반대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한 모토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물적 토대 구축’이었다. 이번에 미국과 싸우면서 중국은 내부적으로 ‘왜 개혁개방을 하며 이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논의했을 것 같다. 중국이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가 우선시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황당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한 번 크게 돌아섰는데 두 번 못 돌아설 이유는 없지 않겠나.

강선주 교수

미국과 중국 사이의 디커플링을 기정사실화해야 할 것 같다. 다만 디커플링이 일어날 때 한국에게 유리할 것인가, 불리할 것인가는 판단해볼 문제다. ‘디커플링이 한국에 선택을 강요 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있다. 어떤 사람은 ‘미·중 무역 분쟁이 한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한국이 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대만이 미·중 무역 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본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발생하는 위험도 있지만 기회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해나가야 한다.
최 교수님이 노선은 분명히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어느 쪽으로 선택해야 할지 답은 이미 나오고 있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라고 했는데,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 GVC(Global Value Chain)의 최종 목표지가 어딘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최종 조립한 상품은 결국 미국과 유럽으로 간다. 미국과 중국이 디커플링 됐을 때 미국으로 못 가는 제품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준의 중국이 다 소화해낼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 위험성을 생각한다 하면 한국이 중국에 과도하게 의지해 GVC를 내버려두는 건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상당히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미·중 영향력 덜한 국가와 교역 강화해야
  • 최준영 위원

    국내 시장을 동남아에 적극적으로 개방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

  • 강선주 교수

    한국도 개도국 마인드를 버리고 선진국이 주도하는 WTO 규범 논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 최영준 교수

    안보의식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경제적 자유도를 높여 경제적 가치 극대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

국가안보 자국법 자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해달라.
최준영 위원

우리 시장을 동남아 등에 더 적극적으로 열면 좋겠다. 우리 시장에 접근성을 높여서 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서로가 윈윈하는 상황이 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중상주의가 강해서 ‘수출은 선이요, 수입은 악이다’ 같은 마인드가 있다.

최영준 교수

안보가 중요한 가치로 돌아왔는데 안보를 하지 말고 다 함께 살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별 영향력이 없다.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중이 싸울 때 우리는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가. 최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경제적 자유도를 높이는 것이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강선주 교수

한국은 빨리 개도국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한국이 개도국 마인드를 계속 유지하면 WTO 규범 논리에 잘 참여할 수 없다. 한국은 그런 규범이 필요한데도 스스로를 개도국이라고 규정하고 WTO 선진국 주도 담론에 한 발짝 물러서 있으려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국은 몸집이 커졌는데 마인드는 성장을 안 한 상황이다. 미·중의 디커플링이 시작되면서 중국이 미국 없이도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중국은 WTO 규범 개정 논의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중국처럼 그런 논의에 한 발짝 빠져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달의 마주 보기 단어 사전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국의 중서부와 북동부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로 미국 제조업의 호황을 구가했던 중심지였지만 제조업의 사양화 등으로 불황을 맞은 지역을 이르는 말.

GVC: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약자로 제품의 설계, 부품과 원재료의 조달, 생산, 유통, 판매 등의 기업 활동을 다수 국가와 지역에 배치하는 글로벌 분업 구조.

디커플링(Decoupling):동조화(Coupling)의 반대 개념으로 한 나라 또는 일정 국가의 경제가 인접한 다른 국가나 보편적인 세계경제의 흐름과는 달리 독자적인 경제 흐름을 보이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