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수출 코리아’에 어려운 해였다. 미·중 무역분쟁의 파고가 워낙 높았던 탓이다. 세계 교역이 위축되면서 전년도에 세웠던 수출 6,000억 달러 돌파의 금자탑이 무너졌다. 단기간 내 종전 수출 기록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우리 정부의 예상이다.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우리나라 무역액이 2017년 이후 3년 연속 1조 달러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1년 내내 월별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한 가운데 거둔 값진 성과다. 동남아시아 등 신남방 지역의 수출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은 건 수출 다변화 차원에서 의미 있었다.
2019년 세계무역이 뒷걸음질 쳤던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 때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해 그동안 체결했던 자국의 교역 협정을 일제히 재검토했다. 중국과의 통상 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으로 치달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보호주의 회귀는 각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18년 10월 중순 이후 1년 동안 새로 부과된 무역규제가 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관세와 세관 절차, 수출입 세금 등에서 새로운 규제가 100건을 넘어섰다. 2012년 10월 중순 이후의 1년 단위 기록 중 최고치다. 이런 규제로 1년 동안 총 7,470억 달러의 상품과 서비스가 악영향을 받았다는 게 WTO의 설명이다. 가장 타격을 받은 분야는 광물과 연료유, 기계류, 귀금속류 등으로 집계됐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면서 1995년 1월 출범한 WTO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분쟁해결기구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기구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WTO 내 상소기구에 불만을 갖고 있던 미국이 2016년 5월 이후 신임 위원의 선임 절차를 거부해온 게 가장 큰 배경이다. 원래 WTO 상소기구는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 3명이 재판관이 돼 하나의 안건을 심리하는 구조다. 후임 인선이 막힌 가운데 상소기구 위원 중 최근까지 남아 있던 2명의 임기마저 종료되자 아예 재판부를 구성할 수 없게 됐다.
2020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세계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도 본격적인 무역 전쟁에 나설 태세다. EU와의 교역에서 연간 150억~20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부터 EU가 불공정무역을 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작년에는 EU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보복 관세를 매기기도 했다. 미국이 EU와 본격적인 무역 전쟁에 나서면 세계 교역엔 또 다른 후폭풍이 불 전망이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보호무역주의 일변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세계 교역이 일시 후퇴하더라도 글로벌 자유화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다. 여러 나라가 보호무역주의에 맞대응할 카드로 ‘메가 FTA’를 시도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FTA 모범국이다. 자원 빈국인 우리로선 교역 확대에 사활이 걸려 있다. 수출이 한 해 내내 뒷걸음질한 2019년은 양적으로 FTA의 성과를 가장 많이 낸 해이기도 했다. 역설적이다. 2019년에만 한·영국 FTA 실질 타결, 한·러시아 FTA 서비스 투자 협상 개시, 태평양동맹(PA) 협상 개시 선언, 한·이스라엘 FTA 실질 타결, 한·중미 FTA 비준 및 발효, 한·인도네시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실질 타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타결 등이 이뤄졌다. FTA의 실질적인 타결 건수만 따져도 역대 가장 많은 네 건이나 됐다. 2018년 말엔 일본, 호주 등 11개국이 참여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이 발효됐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도 타결됐다. 최근에는 한·중·일 3국을 포함한 RCEP이 2020년 완전 타결을 앞두고 있다. 세계무역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무역 강국인 한국의 약점은 교역 대상이 미·중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다. 두 나라의 교역 갈등이 한국엔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신남방·신북방 지역 교역 확대 등 수출 다변화를 강력 추진해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2020년에는 필리핀과 터키, 인도, 멕시코, 이집트, 말레이시아 등과 FTA를 추진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다. 이 중 일부 국가와는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상태다. 러시아 중국 등과는 별도로 서비스 협상 단계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아세안, 중동, 태평양동맹 등과 메가 FTA를 실현시키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양극에 서 있는 두 개의 무역 기조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2020년 통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그리고 한국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 2020년 통상 전망에 대하여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